대학생기자단
- 게시일
- 2012.01.20.
- 조회수
- 5896
-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02-3704-9044)
- 담당자
- 이유진
가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나도 모르게 푹 빠져서 끝까지 보게 되는 방송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자연 다큐멘터리 방송을 볼 때 그러한데요. 실제로 보기 힘든 광경일뿐더러 보면 볼수록 신기한 장면들이 많아서 어렸을 때부터 채널을 돌리다 자연 다큐멘터리 방송이 나오면 넋을 놓고 끝까지 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방송을 보고난 뒤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드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바로 ‘도대체 저렇게 신기하고, 무서운 장면들을 누가, 어떻게 찍은 걸까?’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그 누구보다 만능이어야 하는 사람, 안재민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을 만나봤습니다.
안재민
한국독립PD협회 소속인 안재민 감독은 촬영 감독이면서 동시에 연출PD이기도 하다. <최후의 툰드라>(2010), <최후의 바다 태평양>(2011), <오래된 인력거>(2011) 등을 촬영하였으며 DSLR을 이용한 영상촬영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다.
촬영 욕심나는 그곳, 오지
Q. 안녕하세요. 안재민 감독님께서 촬영하신 영상들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특히 SBS에서 방영됐던 <최후의 툰드라>와 <최후의 바다 태평양> 잘 봤는데요. 오지에서 촬영하는 것이 힘들진 않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지 촬영이라고 하면 숙식이 힘들까봐 걱정하시는데요. 오지도 다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숙식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지 촬영에서 힘든 점은 준비과정이에요. 오지다 보니까 장비 수급이 쉽지가 않거든요. 수중 촬영을 하려면 공기통이 필요한데 공기통은 비행기에 안 실어줘요. 배로 옮기려면 12시간, 심하게는 24시간까지 걸리고요. 100kg 넘는 지미집(zimizib ; 크레인 같은 구조 끝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아래에서 리모컨으로 촬영을 조정하는 무인 카메라 크레인)같은 경우에는 더 심각하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어떤 장비를 써야 영상이 잘 나오는지 뻔히 아는데 장비 수급하기가 힘들어서 장비를 포기해야할 때 가장 아쉽고 힘들죠.
Q. 저도 숙식이 가장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먹는 것은 오히려 좋은 점도 있어요. <최후의 바다 태평양>에서 사람 얼굴만한 대왕조개를 잡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 대왕조개를 열어보면 완자 크기가 스테이크보다 더 큽니다. 한국에서는 한 마리에 10만원을 넘어가는 킹크랩도 매일 먹고요. 오히려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숙식은 아무래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촬영이죠.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완자 먹고 다음날 스텝들 전부 배탈 나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킹크랩도 너무 많이 먹으니까 나중에는 손에서 게살냄새가 안 빠져서 고생했죠.
Q. 그래도 한 프로그램을 찍기 위한 촬영 기간이 대부분 1년 가까이 되던데요. 1년 동안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촬영기간이 1년이라고 해서 1년 내내 머무르는 것은 아니죠. 1년 동안 한국과 촬영지를 계속 왔다갔다해요. 장비라는 것이 항상 개·보수가 필요하거든요. 촬영지로 한번 들어가면 한 달반, 두 달 정도를 머무르면서 촬영하는데요. 이동이 잦다보니까 장비 한 개라도 잃어버릴까봐 그런 점이 불안하죠. 계속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겁니다.
Q. 오지에서 촬영한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네요. 하지만 물론 좋은 점도 있겠죠?
오지에서 촬영하면서 좋은 점은 이거에요. 다른 사람들은 쉽게 가보지 못한 곳을 가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장면을 직접 보고, 원주민들과 직접 만나서 함께 지내보고, 그들의 문화를 직접 체험해보고 이런 점이 좋은 점이죠. 이런 점을 즐기지 못한다면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이 될 수 없을 겁니다.
Q. 저도 어렸을 때부터 TV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가장 신기했던 점이 바로 그거에요.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들은 저 신기한 장면들을 직접 눈으로 봤겠구나.’생각했거든요. 특히 수중촬영이 가장 신기했어요. 그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물고기도 찍고, 고래도 찍고 하다보면 무섭진 않나요?
수중촬영은 저보다는 김동식 감독이 많이 하고 유명하죠. 저는 주로 수중에서 인물을 찍고 동물은 김동식 감독이 찍거든요. 수중촬영 정말 힘들어요. 정말 많이 다치거든요. 상어한테 살짝만 긁혀도 살 다 터지고, 고름 나오고, 반점 남고 정말 끔찍하죠. 게다가 원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급하게 물에 들어가는 경우가 생겨요. 위험하게 촬영하면 절대 안 되는데 일단 촬영하는 거죠. 찍을 때는 몰라요. 찍고 나서 ‘우와~ 내가 이걸 어떻게 찍었지?’싶은 거죠. 헬기촬영이나 낭떠러지 촬영도 다 똑같아요. 일단 촬영하고 나서 놀라죠.
▲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급할 때는 일단 촬영하고 후에 스스로 놀란다 ⓒ 안재민
Q. 정말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은 겁도 없어야겠네요. 그럼 원주민들 촬영은 수중촬영이나 동물촬영만큼 어렵지 않겠네요?
아니죠. 사람이 제일 어려워요. 일단 많은 원주민들 중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 프로그램에 가장 적합한 사람인지 찾는 것부터 어렵죠. 찾았다하더라도 우리와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들이 많고요. 특히 약속에 대한 개념이 굉장히 다르거든요. 촬영을 위해서 ‘언제, 어디서 만나자’라고 약속을 하면 그 시간, 장소에 있어야 하는데 이걸 정말 안 지켜요. 그러다보면 자꾸 촬영은 지연되고 스텝들은 신경이 날카로워 지는 거죠. 막상 촬영에 들어가도 오지는 부족 생활을 하다보니까 이동도 쉽지가 않고요. 촬영하다가 다른 부족 구역에 들어가게 되면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거든요. 원주민들과의 관계가 촬영에 굉장히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문화가 다르다보니까 문제가 많이 생기죠.
Q. 그렇군요. 촬영하다보면 원주민들이 특별히 찍지 못하게 막는 경우는 없나요?
굉장히 많아서 힘들죠. 그들의 전통에는 항상 Taboo(금기)가 있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설득해도 찍기 힘들어요. <최후의 바다 태평양>의 경우 원래 결혼 준비과정도 찍었었는데 방송에는 못 나갔어요. 그 이유가 신부가 누군지 미리 공개하면 안 되는 Taboo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겨우 설득해서 예비신부를 소개받아서 촬영을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진짜 신부가 따로 있더라고요. 헛고생한 거죠.
가장 마지막에 죽는 자, 촬영감독
Q. 저는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은 마치 탐험가 같아서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네요. 이렇게 힘든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이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 어려서부터 TV랑 영화를 좋아했죠. 처음에 촬영 감독이 되어서는 정말 이것저것 많이 찍어봤어요. 안 찍어본 장르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찍다보니까 ‘이런 걸 찍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게 다큐멘터리였어요. <포지션 어몽 더 스타스>(2011)라고 레오나르드 레텔 햄리히(Leonard Retel Hehmrich)감독의 작품이 있거든요. 이걸 보면 정말 진정성이 있어요. 12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한 가족을 촬영하면서 3번의 다큐 영화를 만들었거든요. <태양의 눈>(2001), <달의 형상>(2004) 그리고 마지막 작품이 <포지션 어몽 더 스타스>(2011)에요. 이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싱글샷 시네마의 창시자로 유명한데 개인적으로 저는 스토리텔링 부분을 많이 배웠죠. 다큐가 국제적으로 성공을 하려면 스토리가 확실해야 해요. 그런 스토리는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공부하면서 그것을 장악해야만 나오거든요. 정말 멋있는 감독이죠.
Q. 영화, 드라마와는 다른 다큐멘터리가의 진정성에 매력을 느끼신 것 같네요. 그렇다면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이 영화, 드라마 촬영감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큐멘터리 감독이 원하는 촬영감독은 앵글에서 진정성과 따스함이 보이는 사람이에요. 사람과 세상을 자신만의 생각과 함께 얼마나 따듯하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하죠. 비관적인 내용을 찍더라도 그것을 따듯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또 자신의 시각도 확실하게 서있어야 하고요. 예를 들어서 ‘나는 이거는 못 찍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의 시각과 철학이 확실하게 서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거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피사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에요. 다큐 촬영 감독이 피사체에 동화되어 버린다면 원래 찍고자 했던 시각을 잃어버릴 수 있거든요.
▲ <최후의 바다 태평양>에서 원주민 인터뷰 중인 모습 ⓒ 안재민
또 굉장히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해요. 저는 장비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큐 촬영감독이라면 사회 현상에 대해 항상 관심과 공부가 필요하죠. 사회현상, 문화인류학, 상식 등등 내가 찍고자하는 영상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해요. 촬영은 한 시간이면 다 가르쳐줄 수 있고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내용인 거죠.
Q.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은 그냥 찍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거네요?
다큐멘터리는 뉴스가 아니에요. 뉴스는 사실을 찍어서 방송하지만 다큐는 분명한 시각이 있습니다. 연출자의 의도가 있고 제작 방향이 있는 거죠. 최근 인기였던 다큐멘터리 영화 <아르마딜로> 경우도 3년 동안 전쟁지역에 파견한 군대를 쭉 따라다니면서 촬영을 했잖아요. 전쟁이라는 상황이나 촬영된 인물들은 모두 사실이지만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연출자의 시각인거에요. 전쟁 미화로 갈 것이냐, 반전으로 갈 것이냐는 연출자의 시각인거죠. 그 시각에 따라서 촬영감독은 앵글, 구도를 적절하게 잡아야죠.
Q. 그럼 최근 <최후의 바다 태평양>에서의 시각은 무엇이었나요?
태평양은 서구 열강의 식민정책으로 인해서 굉장히 많은 부분이 나뉘어져버렸어요. 그들의 고유문화나 문명도 종교가 들어오면서 많이 사라졌죠. 그런데 이 사실을 원주민들은 아픈 역사로 기억하지만 서구 열강은 그들이 태평양을 문명화해주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원주민 여성들이 가슴을 드러내놓고 춤을 추는 것이 서구 열강과 종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저 전통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문명화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원주민들이 많아진 거죠. 이런 모습들을 통해서 우리는 미개와 문명의 기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자는 것이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태평양 원주민들은 예전부터 공동체 문화였거든요. 그런데 자본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면서 공동체가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원래 다 함께 먹고, 입을 것을 구해서 똑같이 분배해서 살았었는데 자본이 들어오면서 이런 공동체 문화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거죠. 사실은 이게 포커스에요. 하지만 이런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촬영하기 힘들죠. 그런데 TV다큐는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어요. 시청률을 고려하다보니까 연출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거죠. 53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기도 하고요.
Q. 정말 원주민들의 ‘가슴 노출’에 대해서 시청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방송했다는 시청자들의 의견도 많았었죠?
저희도 촬영하면서 항상 고민을 해요. ‘이게 방송에 나갈 수 있을까?’라고 자문해야하는 그림이 있죠. 가슴 노출도 그랬어요. 많이 고민이 됐죠. 하지만 원주민들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 나는 나의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이게 왜 문제가 되지?” 이 말을 들으니까 무엇이 미개이고, 무엇이 문명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누구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니까요.
Q.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까 다큐 촬영감독은 정말 그 누구보다 만능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지식도 많아야 하고, 용기도 있어야 하고, 체력도 필요하고. 정말 쉽지 않은 직업이네요.
그렇죠. 정말 만능이에요. 지식, 담대함, 체력 또 납땜, 저항체크와 같은 기계 다루는 능력도 필요하죠. 한마디로 오지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거죠. 심지어 연출자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연출까지 해야 돼요. 연출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생각을 100%까지는 아니어도 많이 공유해야한다는 거죠. 우스갯소리로 만약 죽을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카메라 감독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 상황을 다 촬영한 후에 죽어야한다고 얘기하거든요. 그만큼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 현장에서는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인거죠.
진정성을 담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 다큐멘터리
Q. 제가 상상했던 것처럼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은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앞으로 안재민 감독님은 어떤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으신가요?
저는 무조건 휴먼 다큐멘터리에요. 휴먼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사람에 대한 내용이 아니고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거죠. 사람을 통해서 자연을 보고, 동물을 보고, 문화를 보고, 전통을 보고 등등. <오래된 인력거>도 마찬가지에요. 인력거를 통해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보는 거고, 민족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저는 소속이 대한독립피디협회인데요. 대한독립피디협회에서는 오랫동안 다큐멘터리의 기본 정신에 맞는 다큐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어요. 오랫동안 알아봐주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배 곪으면서 열심히 하다보니까 이제 성과도 많이 나오고 있죠. <워낭소리> 흥행을 시작으로 박봉남 감독의 <아이언 크로우즈>, 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 그리고 이번에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까지. 모두 좋은 성과를 내고 있어서 너무 기뻐요.
▲ 독립피디들의 노력으로 현재 우리나라 다큐멘터리들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 안재민
카메라를 지고 다니는 탐험가
제가 상상했던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의 이미지는 탐험가였습니다. 그냥 가기도 힘든 오지, 산, 바다 속, 협곡 등을 무거운 카메라를 지고도 거침없이 뚫고 가는 멋있는 분들이었죠. 제가 만나본 안재민 감독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거침없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촬영감독의 이미지는 정말 작은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아마 지금도 지구 곳곳을 탐험하며 세상을 담고 계실 감독님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많이 굶주렸던 만큼 우리나라 다큐멘터리가 더욱 성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