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언어의 불완전함을 채우다 <소설가 백수린 인터뷰>
게시일
2020.02.11.
조회수
1259
담당부서
디지털소통팀(044-203-2053)
담당자
정수림

소설, 언어의 불완전함을 채우다

<소설가 백수린 인터뷰>



한국 신진 작가들의 문학을 알게 해 준 작품, 「시간의 궤적」


젊은 소설가가 쓴 작품을 읽으면, 그 작가의 젊음과 그 젊음으로부터 비롯된 개성, 감각이 작품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소설가의 젊음은 작품 속에서 때로는 대담함과 도전 정신으로, 때로는 섬세함과 잔잔함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젊음이 가진 다양한 ‘얼굴’이 신진 작가들의 소설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기자로 하여금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계절 별로 소개하는 소설집 「소설, 보다」, 매년 발표되는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과 같은 책을 꾸준히 읽게 한, 그리고 새로운, 변화하는 한국 문학에 처음 관심을 갖게 한 소설은 백수린 작가의 「시간의 궤적」이라는 단편이다. 작년 봄 읽은 「시간의 궤적」을 시작으로 단편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소설집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등 백수린 작가의 글을 꾸준히 찾아 읽게 되었고, 언젠가 작가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아끼는 팬으로서, 그리고 한국의 젊은 문학이 가진 매력을 알리고자 하는 기자로서 백수린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백수린
[▲ 소설가 백수린 Ⓒ신나라]

작가님의 작품 중 「시간의 궤적」은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읽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편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파리의 밤거리, 술집 등 이국적인 배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설의 재료가 되는 소재 또는 배경에 관한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의 소재는 일상 속에서 얻는 편입니다. 친구들과 얘기를 하거나, 길을 걷다가 평소와는 다른 것, 어긋남이 눈에 띌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제 관심을 끌더라고요. 그런 흥미로운 어긋남을 포착하면, ‘이게 왜 내 마음을 끌었을까’ 고민하다가 소설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긋남이라고 하면 ‘내가 생각했던 정상적인 상태나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기대했던, 혹은 익숙하게 느꼈던 어떤 상태에서 벗어난 것을 말해요. ‘어긋남’을 느끼는 경우의 예는 제 작품 중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를 쓰게 된 계기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한데요. 제가 매일 지나다니던 길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곳에 있던 집이 공사 중인 것을 보게 되었어요. 어제까진 멀쩡히 서 있던 집인데, 오늘 갑자기 바뀐 집의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더라구요. 그렇게 평소와는 약간 어긋난 상태를 보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깁니다.

감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 작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상의 변화 등을 짧은 이야기를 통해 강렬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작가님의 소설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단편을 쓰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소설을 쓸 때 감정선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편이에요. 제 소설에 거창한 갈등, 아주 극적인 장면은 없습니다. 그런데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임에도, 내면에서 매우 복잡한 사건을 일으킵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이 이런 내면의 사건이다 보니 독자들이 감정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퇴고할 때에도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글을 수정합니다.


이미지 전달에도 신경쓰는데요. 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장면이든 문자로 그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문자로 표현한 것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영화나 그림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한 이미지가 각인되었으면 합니다.

「시간의 궤적」이라는 단편 속 등장인물들은 거리의 남자들이 모욕적인 말, 욕을 해대도 개의치 않고 아름다운 도시 풍경을 거닐잖아요. 이 부분이 특히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소설은 언어를 통해 전달하는 예술 장르이지만, 소설의 언어라는 것은 일상의 언어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언어로는 일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자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하지만, 그 단어만으로는 충분히 전달할 수 없는 것, 사람들이 알아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죠. 저는 그런 것들을 소설로써 표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통해 어떤 장면을 보여주면, 독자들은 그 장면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제가 전달하려 하는 것에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소설이 제공하는 이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말씀해주신 파리의 밤 풍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들이 제 소설 속 배경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타인이 되어 볼 수 있도록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서어서문학과 불어불문학을 공부하고 있는데요. 전공 때문인지 언어가 한계에 부딪힐 때, 언어로 완벽한 소통이 되지 않을 때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자주 느낍니다. 따라서 언어를 매개로 하기는 하지만 언어 그 자체는 아닌, ‘소설’이라는 다른 통로를 통해 감정이나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시도가 매우 유의미하다고 생각됩니다.


외국어를 오래 공부하다 보면 아무래도 언어 문제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모국어, 그리고 각 외국어가 가진 한계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요. 프랑스어로 표현되는 것이 스페인어로는 표현되지 않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어요. 한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세 언어를 섞어야만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경우도 존재하죠.

요즘 작가님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설을 통해 표현해보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요? 작품에 담고 싶은 것이 아니더라도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 또는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궁금합니다.

 

소설을 통해 표현해보고 싶은 주제는 ‘죽음’, ‘노년’이에요. 아직 제 소설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쓰는 작품들에는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반영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소설집이나 다음 장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설로 표현해보고 싶은 것 이외의 경우 환경 문제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호주 산불로 인한 코알라의 죽음과 코알라 치료 지원 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강아지를 직접 키우고 있기도 해서, 동물 복지 문제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갑니다.

‘죽음’, ‘노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나이가 들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스스로 ‘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젊지는 않은 나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부모님 연세도 있고요.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이러한 주제가 더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생명은 유한한데 ‘이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이 집중되는 주제는 바뀌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만 미래에는 또 다른 주제에 대해 고민하게 될 수도 있고요.

작가님은 글을 쓰며 어려움을 느낄 때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아직 확실한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기복은 항상 찾아오는데, 그저 감기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예전에는 글이 잘 안 써진다는 느낌이 초조함으로 이어졌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이건 감기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이 잘 안 써질 때에도 아예 쓰는 것을 그만두지는 않고, 단 한두 문장이라도 써보려 애쓰는 편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잘 쓰이기를 기다려 보는 거죠.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글쓰기 작업을 떠나보는 것도 언젠가 한 번은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아무튼 확고한 정답이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백수린
[▲ 소설가 백수린 Ⓒ신나라]

최근에 읽은 책 중 작가님의 마음에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작품, 20대 독자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을 추천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근에 정소현 선생님의 「품위 있는 삶」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노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인데, ‘노년’이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 때문에 더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정소현 선생님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 왔기 때문에 신작도 찾아 읽게 되었는데, 마침 관심 있는 주제와 관련된 작품이라 더 인상 깊었습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도 기억에 남습니다.

20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자 하는 책도 이 작품입니다. 한국 사회는 타인의 처지를 헤아릴 여유를 갖기 힘든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사회에 만연한 혐오, 차별에 대해 미리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름’을 차별, 혐오하지 않는 삶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독자로서 백수린 작가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주로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 어떤 방식으로 읽으시는지(본인만의 특별한 독서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게으른 독자인 것 같습니다. 글을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그런지, 책을 아주 많이 읽는 것도 아닙니다. 문학을 주로 읽긴 하지만, 다양한 책을 읽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예전에 어떤 시인으로부터 그만의 독특한 독서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읽고 싶은 부분을 펴서 읽다가 다른 책을 읽기도 하면서,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독서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독서를 할 때 강박을 느끼고 싶지 않아 그런 방식으로 책을 읽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말을 듣고, 한 권의 책을 시작하면 그 책을 끝낼 때까지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았던 이전의 방식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한 작품을 읽던 중, 다른 책에 관심이 생기면 그 글을 읽다가 다시 원래 읽던 책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여러 작품을 좀 더 긴 시간을 들여 동시에 읽고 있는 거죠. 한 권의 책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을 덜 느끼면서도, ‘글 읽는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고자 선택한 방법입니다. 책을 읽는 건 제 직업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저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니까요. 여러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여러 책을 동시에, 조금씩 만나보는 것이죠.

작가님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문장 또는 표현이 있다면 이유와 함께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에 썼던 문장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대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등장인물이 있는데, 그녀가 자신이 왜 무대 디자이너가 되었는지 설명하는 대목에서 ‘부서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뿐이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것을 사랑하거나, 이해하는 행위의 본질에 대한 문장이라 생각하고 썼습니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사랑해봤자 서로 상처를 입히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봤자 끝내 오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끊임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고,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행위가 결국엔 부숴야할 줄 알면서도, 무대를 짓는 일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소설을 쓰는 행위도 이와 비슷한데요. 소설을 쓰는 도중에는 이걸 완성해 봤자 독자에게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나 형펀 없는 작품을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소설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려 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작업인 건 아닌지 회의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때때로는 그렇게 되는 건 필연적인 일 같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소설을 쓰는 거죠.

‘부술 것을 알지만 끊임없이 무대를 짓는다는 것’은 우리 삶의 본질적인 성격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저는 삶이 ‘허무와 혐오를 이기면서 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들여 지은 무대가 부숴지는 것을 거듭 보면서도 그 위에 계속 새로운 무대를 지어 올리는 일처럼요.


허무, 혐오,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지속되는 것


사람들은 각자 삶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는 사람마다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이며, 어떤 사람과 대화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이 마음속에 어떤 정의를 품고 살아가는지 알기 어렵다. 평소에 정말 좋아하던 소설가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삶에 대해 직접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은 긴 여운, 소중한 추억을 남길 거라는 확신이 든다.

작가 백수린은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순간을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 생생하게 포착해낸다. 그의 작품이 한 편의 사진 앨범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도 그가 우리에게 보여줄 장면, 그의 작품이 느끼게 해 줄 감각, 그것이 들려줄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문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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