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로 살고자 했던 천재 작가의 치열한 흔적을 보다_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박이소 : 기록과 기억>
게시일
2018.09.16.
조회수
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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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아무개’로 살고자 했던 천재 작가의 치열한 흔적을 보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박이소 : 기록과 기억>


아무 모(某), ‘아무개’ 또는 ‘아무’라는 의미를 가진 이 한자는 이름이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 주로 쓰인다. 이름이 있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신을 아무개로 칭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BAHC YISO 박이소 기록과 기억 MEMOS AND MEMORIES 전시 <박이소 : 기록과 기억> 포스터

[▲전시 <박이소 : 기록과 기억>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그러나 20대의 청년 박철호는 자신의 이름을 뒤로 한 채 스스로를 ‘박모’라고 칭하며 아무개를 자처했다. 훗날 박모는 ‘박이소’로 다시 태어난다.

박철호, 박모, 박이소. 생전 많은 이름으로 활동한 박이소는 한국의 개념미술가이자 설치미술가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현대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교육자, 평론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박이소는 2004년 부산비엔날레 출품작을 준비하던 도중, 47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전시장 입구

[▲전시장 입구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7월 26일부터 12월 26일까지 박이소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박이소 회고전 <박이소 : 기록과 기억>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소속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현대 미술작품의 수집, 보존, 전시와 이와 관련한 조사, 학술연구를 수행하며 국제 교류 및 국민의 미술 문화 향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전시가 개최되는 과천관은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이며, 이외에 분관으로 서울관과 덕수궁관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작품의 수장 보관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올해 12월 충청북도 청주시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완공될 예정이다.

 

 

작가 생전의 인터뷰 내용을 기록한 스크랩 자료

[▲작가 생전의 인터뷰 내용을 기록한 스크랩 자료ⓒ이지영]

 

작가가 직접 편집하고 수집한 재즈 라이브러리 

[▲작가가 직접 편집하고 수집한 재즈 라이브러리ⓒ이지영]

 

빌리 조엘의 ‘어니스티(Honesty)’를 ‘정직성’으로 번안한 가사 

[▲빌리 조엘의 ‘어니스티(Honesty)’를 ‘정직성’으로 번안한 가사ⓒ이지영]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1984년부터 갑작스럽게 사망한 2004년까지 약 20년간의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작고 10주기를 맞았던 2014년에 작가의 유족이 다량 기증한 아카이브와 대표작을 중심으로, 21권의 작가노트 및 교육자로도 활동했던 그의 교육자료, 기사 스크랩 자료와 재즈 애호가였던 작가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 재즈 라이브러리에까지 이르는 수많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동선에 따라 작가의 작품을 배치해 변천을 확인할 수 있다.

[▲ 동선에 따라 작가의 작품을 배치해 변천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먼저 가로 축에서는 작가가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이어지는 20여 년의 시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작가의 작품 변천을 한 눈에 보며 동시에 그가 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술 던진 의문을 확인할 수 있다.

 

 

‘추수감사절 이후 박모의 단식’ 퍼포먼스 사진 
[▲‘추수감사절 이후 박모의 단식’ 퍼포먼스 사진ⓒ이지영]


전시의 시작점에는 검정색 솥을 목에 걸고 뉴욕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는 박이소 작가의 흑백사진이 있다. 박이소 작가 1984년 미국 유학 중 추수감사절 후 4일간 단식 퍼포먼스를 벌이며 자신이 만든 검정색 솥을 끌고 브루클린 다리를 건넜다. 예술도 생계유지의 일환이라는 작가의 고민이 녹아있는 퍼포먼스였다.

 

 

마이너 인저리

[▲마이너 인저리ⓒ국립현대미술관]


‘아무개’를 자처한 박이소 작가는 백인 주류의 미술계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공간 ‘마이너 인저리’를 만들어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간판은 하얀색 락카로 휘갈긴 것으로 대신했다. 이 또한 박이소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온 치열한 흔적이다.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이지영]


우리 전통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고민도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일명 ‘바보 서예’는 어설프게 전통을 흉내 내는 일에 대한 냉소의 표현이었다. 작가는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을 통해 외국인에게 한글은 신비로워 보일 수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어설프게 전통을 흉내 낸 그림으로 보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는 행복해요’ 아카이브

[▲‘우리는 행복해요’ 아카이브ⓒ국립현대미술관]


박이소 작가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박모’라는 예명을 낯설고 소박하다는 뜻을 가진 박이소로 변경한다. 이후 작가, 교육자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박이소 작가는 북한 체제 선전물을 보고 영감을 받은 ‘우리는 행복해요’의 아이디어 스케치와 지시문을 남기던 도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주황색 바탕에 단순히 일곱 글자만 쓰여져 있는 이 작품은 선전 문구 속 ‘행복’이라는 단어에서 과연 ‘우리는 정말 행복한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든다.

 

 

작가노트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세로축

[▲작가노트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세로축ⓒ이지영]

 

작가의 작가노트 

[▲작가의 작가노트ⓒ국립현대미술관]

 

엘시디(LCD)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작가노트 

[▲엘시디(LCD)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작가노트ⓒ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하는 세로축에서는 20년간의 작가노트를 핵심으로, 아카이브와 작품이 이를 또 다시 감싸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임대근 학예연구관은 “작품의 씨앗을 의미하는 작가노트를 드로잉을 포함한 아카이브로 한 겹 감싸고 마지막으로 실제 작품이 그 모두를 감싸는 구성을 하였는데, 이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열매를 맺는 과정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번 <박이소 : 기록과 기억> 전시에서는 박이소가 ‘천재’ 작가라는 수식어 뒤에서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졌나를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의 씨앗이라고 비유되는 작가노트는 왜 예술을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 대한 연속체다. 결국 그의 ‘기록과 기억’은 관객들로 하여금 예술과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재구성하게 하는 매개체인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13기 이지영 기자 quxou@naver.com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주거환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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