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단
- 게시일
- 201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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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여성 이성자 <탄생 100주년 기념, 이성자 :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관에서 개최된 <신여성 도착하다>전을 시작으로, 한국 여성미술가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탄생 100주년 기념;이성자-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을 기획하였다. 이 전시는 3월 22일부터 7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된다.
[▲전시포스터 ⓒ 국립현대미술관]
‘화가이자 근대기 여성, 이성자’
전시 기획자인 박미화 학예연구관은 이성자 작가를 어떤 남성 작가보다 작가 정신이 투철하며 자신을 극복한 여성이라고 칭한다. 그는 졸업 후 아버지께 대학진학을 허락받지 못하자 단식을 시작할 만큼 의지가 확고한 여성이었다. 결국 그는 1930년대 초 일본의 짓센여자전문학교 가정과에 입학했고, 당시 젊은 여성으로서는 근대적 환경을 많이 접했다. 이후 그녀는 유럽의 회화를 접하며 개인 활동을 이어갔고, 네 명의 아들과 함께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과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 후 아예 고국을 떠나 혈혈단신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애초에는 의상 자격증을 따고 잠깐 있다 올 생각이었지만, 추상화 교수 앙리 고에츠의 화실 조교로 시작해 프랑스에서 작가로서 인정받았다.
그녀의 삶을 표면적으로만 보면 승승장구한 상류계층 여성의 순탄한 일대기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불어 한 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단한 의지 하나로 초행을 개척했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 온 이후에도 어머니로서 자식 생각을 놓지 못해 1960년대 그녀의 작품의 한 땀 한 땀이 깃든 붓의 결은 가족과 고국에 대한 놓을 수 없는 그리움을 보여준다. 그녀의 삶은 굳은 살 그 자체였다.
‘탄생 100주년 기념 :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이번 전시는 이성자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 전체를 연결 지어 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전시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1950년대 조형탐색기 - 1960년대 여성과 대지 - 1970년대 음과 양 - 1980년대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로 구분된다.
1950년대 조형탐색기의 이성자는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로 파리 화단에서 비평가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세잔의 구축 형식 등 프랑스 화단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철저하게 자의식이 강했다. 따라서 당시 추상화를 그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앞서 나가는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추상화 형식의 그림을 그린 후 떠오르는 소재에 대한 제목을 붙였으며, 당대 사조였던 차가운 추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정서를 담는 따뜻한 추상으로 나아가는 등 자신만의 개성을 유지했다. 또한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의 나뭇가지처럼 어릴 적 흙을 만지고 자랐던 창녕과 광양의 정서를 잊지 않고 작품에 드러냈다. 이는 다음 세대인 1960년대 여성과 대지에도 드러난다.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 1956, 캔버스에 유채 ⓒ 송효진]
[▲이성자 회고록 중 창녕과 일본 유학 이야기 ⓒ 송효진]
1960년대 여성과 대지에서는 여성으로서 이성자의 자의식과 삶을 볼 수 있다. 그녀는 4번의 출산 경험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과 자식을 잇게 해 준 한국 땅에 대한 그리움 등의 요인으로 여성성의 시작을 대지로 보았다. “한번 붓질을 하면 아이들이 밥 한 숟가락을 더 먹을 것이다.” 1968년도까지 여성과 대지 시기는 이성자 화가의 전성기였다. 시공간을 초월해 가장 기본적 조형 요소인 점, 선, 면을 통해 꼼꼼한 붓의 질감을 살려냄으로써 조국의 땅과 그 곳에 있는 가족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 여성으로서의 자긍심을 추상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그 중 <오작교>는 15년 만에 그녀가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한글로 제목을 붙인 작품이다.
[▲<내가 아는 어머니>, 1962, 캔버스에 유채 ⓒ 송효진]
[▲<오작교>, 1965, 캔버스에 유채 ⓒ 송효진]
작가의 판화 작업은 이러한 땅에 대한 애착을 기반으로, ‘자연’을 매개로 한 작품 세계의 확장을 보여준다. 땅에 대한 관심은 나무, 산, 바다, 하늘 등으로 넓혀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각의 목판 형식을 비판하며 직접 버드나무를 잘라 나무둥치의 단면에 이미지를 찍어내는 방식을 통해 작가만의 개성을 유지하였다. 또한 판화의 조각칼 자국처럼 유화의 질감을 표현하는 등 작품 방식 간의 유기적 연결도 고려하였다.
[▲목각 판화 ⓒ 송효진]
1970년대 음과 양 시기의 작가는 프랑스와 한국에서 거둔 ‘여성과 대지’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땅을 떠나려는’ 욕구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작품 세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여성과 대지의 동기이던 친어머니의 타계와 함께, 프랑스 화단의 오리엔탈리즘* 정서와 한국 화단의 재불 작가라는 타자화가 이러한 변화의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그녀는 미국 여행을 떠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현란한 불빛, 도시 속 무수한 선의 겹쳐짐을 통해 ‘중복’이라는 새 주제에 눈을 뜬다. 또한 음과 양이 합쳐지는 가능성의 원을 통해 유기적이며 상생하는 이상 도시를 그렸다. ‘음과 양’ 시기는 대립적 요소의 조화라는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생긴 시기였다. <샘물의 신비>처럼 나무판을 이용한 기계적 문양의 조화는 미쉘 뷔토르에게 시를 헌정 받을 만큼 프랑스 화단에서 인정을 받았다.
* 오리엔탈리즘: 동서양에 대한 이분법적인 구별을 통해 서양 중심으로 동양을 타자화하는 왜곡된 인식과 태도
[▲<중복, 수액의 전달자>, 1971, 캔버스에 아크릴릭 ⓒ 송효진]
[▲<샘물의 신비>, 1977, 종이에 목판, 6곡 병풍 ⓒ 송효진]
자연과 기계, 전통과 문명, 남성과 여성, 나아가 대지와 우주까지 화합하는 세계는 1980년대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기에도 드러난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은 작가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횡단하며 극지에서 내려다 본 길을 나타낸다. 낮과 밤의 풍경인 빨강과 파랑의 조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단층에서 영감을 받은 기하학 문양까지 작가는 대립적 요소의 만남이라는 주제의식을 끊임없이 변화, 발전시켜 나갔다. 그녀의 2008년 9월 마지막 작품 <9월의 도시>는 마치 그녀가 땅을 넘어서 모든 요소가 화합한 초월적 우주로의 회귀를 꿈꾸는 듯 한 모습을 보여준다.
[▲<투레트의 밤 8월 2, 79>, 1979, 캔버스에 아크릴릭 ⓒ 송효진]
[▲<9월의 도시>, 2008, 캔버스에 아크릴릭 ⓒ 송효진]
‘이방인이라서, 여성이라서 간과된 대가’
이성자 작가는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 박미화 학예연구관은 작가가 자신의 특별한 경험에서 보편적 진리를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프랑스와 한국 모두에서 인정받는 동시에 외부인 혹은 타자의 취급을 당했다. 여성과 대지 연작에서 그녀의 추상화로서의 선구(先驅)성과 작품에 내포된 그리움이라는 의미 또한 간과되었다. 홍익대학교 김이순 교수의 전시 평론에 따르면, 여성 주의적 관점에서 여성을 땅, 대지와 연계하는 사고나, 모성을 여성의 본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된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성자 작가는 모성을 여성만의 특권이자 여성적 힘의 원천으로 보았으며, 창조적인 능력을 제공하는 원동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이방인이자 여성이지만 이를 포함한 자신의 모든 사설을 ‘합쳐짐’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대가다. 따라서 <신여성 도착하다>전을 시작으로 다음 세대 이성자 작가, 그 다음 현존 작가 이정진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여성 미술가 집중 재조명은 미술계를 비롯한 한국 문화계의 젠더에 대한 논의 또한 발전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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