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단
- 게시일
-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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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044-203-2050)
- 담당자
- 이성은
동학농민혁명, 애국·애족 정신의 발자취를 좇다
_전시<동학농민혁명, 지도 위에서 만나다>
3월 13일, 제11회 국무회의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하 시행령)」이 의결되어 3월 20일부터 시행 중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은 기존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2017년 12월 19일에 개정됨에 따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사항’, ‘위원회의 운영 및 사무처리 위탁에 관한 사항’ 등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과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시행령 개정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위원회는 특별법이 제정된 2004년에 국무총리 소속으로 편성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유족 등록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지난 2009년 유족 등록 업무가 종료된 이후부터 이번 시행령의 개정 전까지 위원회의 운영은 중지된 상태였다. 이번 개정을 통해 위원회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소속으로 다시 편성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유족 등록 업무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한편, 위원회의 운영과 사무 처리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특수법인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하 기념재단)이 담당한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기념재단에서는 지금?
기념재단은 지난 2010년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특수법인을 인가받아 설립됐다. 현재 이곳에서는 특별법 제8조(기념사업)에 따라 참여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 및 국가기념일 제정 등 각종 기념사업, 추모사업 및 조사·학술·연구사업,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운영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이번 특별법 개정으로 기념사업의 부문이 추가돼, 향후 더욱 활발한 유족 명예 회복 활동 과 기념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그의 일환으로 이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도 다양한 기획전시를 계획하고 있으며, 현재는 <동학농민혁명, 지도 위에서 만나다>라는 제목의 기획전시를 4월 29일까지 진행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을 지도에서 만나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지영]
[▲<동학농민혁명, 지도 위에서 만나다> 포스터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동학농민혁명, 지도 위에서 만나다>는 지도라는 시각적 매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고증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기획됐다. 특히, 1870년대부터 대륙침략을 위해 지도 제작 준비에 들어간 일본의 야욕을 재조명한 데서 기존의 전시와의 차별성을 가진다.
[▲전시장 입구ⓒ이지영]
[▲전시장 내 조형물ⓒ이지영]
<동학농민혁명, 지도 위에서 만나다>에서는 조선 후기 세도정치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탐관오리의 수탈과 학정에 저항하고자 의로운 깃발을 든 동학농민군이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일본 배척의 기치를 들고 다시 일어나는 전개과정을 지도를 통해 표현했다. 전시는 크게 4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 ‘동학농민군, 의로운 깃발을 들다’ⓒ이지영]
[▲지도로 표현된 동학 창도와 고부농민봉기 전개과정ⓒ이지영]
[▲사발통문ⓒ이지영]
먼저 1부 ‘동학농민군, 의로운 깃발을 들다’에서는 동학 창도를 시작으로, 고부농민봉기, 3월 봉기 등 반봉건적 성격을 띠는 1차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전개과정과 농민군의 경로를 지도로 나타낸다. 동학농민혁명의 대표적인 유물인 ‘사발통문’은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들이 모여 작성한 통신문으로,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관계자의 이름을 사발 모양으로 쓴 통문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당시 탄압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사발통문 외에는 농민들이 남긴 기록 자료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일청전투화보ⓒ이지영]
1894년에 구보타 베이센이 동경에서 발행한 ‘일청전투화보’이다. 구보타는 일본인 서양화가로, 총 10권의 화보집을 통해 청일전쟁 상황을 그림으로 묘사했다. 이 화보집 제1편의 첫 장에는 초토사* 홍계훈의 출병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홍계훈은 3월 봉기 당시, 조선 정부에서 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임명한 양호초토사**다.
3월 봉기의 모습이 화보집의 첫 장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은 일본 또한 청일전쟁이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초토사: 조선시대 변란이 일어난 지방에 파견한 임시 무관직
**양호초토사: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전라 병사 홍계훈에게 주었던 임시 벼슬
[▲2부 ‘일본, 숨겨진 야욕을 드러내다’ⓒ이지영]
[▲19세기 말부터 일본에서 다양하게 제작된 한반도 지도ⓒ이지영]
이어지는 2부 ‘일본, 숨겨진 야욕을 드러내다’에서는 1894년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청일전쟁의 경과를 살펴보는 한편, 일본이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제작한 다양한 지도를 볼 수 있다. 일본은 전쟁 준비의 첫 번째 절차로, 한반도를 임의로 측량해 지도를 제작했다. 오른쪽 상단의 지도는 동경지학협회에서 1894년에 제작한 ‘조선전도’다. 동경지학협회는 일본의 황족과 주한일본공사, 이토 히로부미 등 조선 침략을 주도했던 일본의 고위급 인사로 구성돼있던 조직이다. 이들이 제작한 조선전도를 통해, 고위급 인사가 적극적으로 투입돼 대륙침략의 준비를 해왔음이 밝혀진다.
[▲3부 ‘동학농민군, 척 왜의 기치를 올리다’ⓒ이지영]
3부 ‘동학농민군, 척왜의 기치를 올리다’에서는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삼고자 조선을 침략한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다시 일어난 동학농민군의 이동경로와 진압 경로를 보여준다. 3월 봉기 이후 정부와 농민군이 전주 화약을 맺으며 화의했음에도 일본군이 철수하지 않고,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하자 동학농민군은 일본 배척의 기치를 올리며 다시 결집했다. 이전의 3월 봉기에서는 충청도 지역의 동학 조직인 ‘북접’은 참여하지 않았으나, 9월 봉기에서는 전라도 지역의 남접군과 충청도 지역의 북접군이 논산에 집결해 전투를 벌였다.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토벌로를 나타낸 지도ⓒ이지영]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일본군과 관군에 처절하게 토벌당하고 동학농민혁명이 막을 내리게 된다.
[▲4부 ‘동학농민혁명, 지도 위에 살아나다’ⓒ이지영]
마지막 4부 ‘동학농민혁명, 지도 위에서 살아나다’에서는 2부에서 전시 된 ‘조선전도’를 바탕으로 동학농민군이 활동한 것으로 확인된 지역을 표시하는 한편,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이 2016년 촛불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전개과정을 나타냈다.
기념재단 정명광 학예연구원은 “동학농민혁명을 지도 위에 나타냄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움직임임을 알리고자 했다.”라며 “동학농민혁명은 프랑스 혁명에 비견될 애국·애족 정신을 기반으로 한 전국적인 혁명”이라고 전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는 2018년 상반기 기획전시로, 오는 5월 12일부터 ‘서양인의 시선으로 본 동학농민혁명’을 전시 할 계획이다. 국내 자료가 아닌 서양인이 기록한 자료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을 민중의 반란으로만 인식했던 당대 국내 인식과는 상반된 서양인의 시각을 보여주며 새로운 인식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전망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 곳, 옛 황토현전적지에 자리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방문해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함께 좇아보는 것은 어떨까.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관람시간:
하절기(3~10월): 09:00~19:00 / 입장시간 09:00~18:30
동절기(11~2월): 09:00~18:00 / 입장시간 09:00~17:30
·관람료: 무료
·전시해설 안내 신청: 관람 희망일 1개월 전부터 5일 전까지 가능
(내·외국인 5인 이상)
누리집 신청: http://www.1894.or.kr
전화 신청: 063-536-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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