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단
- 게시일
-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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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은
일상을 뒤집는 형제 <파킹찬스 PARKing CHANce 2010-2018>
지난 2월 영국에서 반가운 소식이 왔다. 2016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한국 영화 ‘아가씨’가 영국의 권위 있는 영화제 영국아카데미영화상(BAFTA)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를 통해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던 것까지 떠올린다면 그가 얼마나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인지에 대해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독립적 저작물을 제작하기 위한 소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면 무엇을 말하기 위함일까.
영화감독 박찬욱과 현대미술가 박찬경 형제는 탈장르의 작품 활동을 목표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는데, 그 이름이 ‘파킹찬스’다. 성씨 박(Park)과 돌림자 찬(Chan)의 음운에서 따온 언어유희에서 착안한 명칭 ‘파킹찬스(PARKing CHANce)’는 서울에서 쉽게 얻기 힘든 ‘주차기회’처럼 흙 속 진주와 같은 작품 활동을 하리라는 그들의 포부를 담고 있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김정서]
지난 해 토마스 사라세노 작가의 ‘행성 그 사이의 우리’를 소개하며 대중과 평단을 단번에 사로잡은 바 있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전시기획 ACC포커스가 ‘파킹찬스’의 작품세계 포착에 나선다. ‘파킹찬스 PARKing CHANce 2010-2018’라는 이름 아래 진행 중인 이번 전시는 3월 9일부터 7월 8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 이루어진다. 영화와 현대미술이라는 일상적인 업무에서 벗어난 형제의 새로운 일상이 관객을 찾는다.
일상 속에 잊혀 있던 휴전선 건너의 이야기
[▲ 작품 ‘격세지감’ ⓒ김정서]
[▲ 작품 ‘격세지감’이 상영되는 극장 ⓒ김정서]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작품 ‘격세지감’은 박찬욱 감독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를 오마쥬한 작품으로, 전시장 내 마련된 작은 극장에서 상영되는 형식을 취한다. 판문점을 스케치한 3차원 영상에 ‘공동경비구역 JSA’의 삽입음을 사실적으로 덧입힌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비무장지대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단순히 영화에 대한 기억에서 머물지 않는다.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통용되었던 분단에 대한 안타까움, 북한과의 회담이 진행되는 등 양자 간의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했던 당시의 남북 상황. 그 당시엔 ‘현재’였던 그 감정들은 작품에 박제된 ‘과거’일 뿐이다. 결국 한 때를 풍미했던 영화도, 한 때에 공통된 감정도 그저 하나의 ‘격세지감’으로 남게 된 것이다.
[▲ 작품 ‘반신반의’가 상영되는 극장 앞 ⓒ김정서]
과거의 ‘격세지감’을 묻던 파킹찬스는 이에 조응하는 현재의 ‘반신반의’를 말한다. 전시장에는 딱 두 개의 극장을 마련해놓았는데, 각각 ‘격세지감’과 ‘반신반의’가 상영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의뢰로 제작되었다는 작품 ‘반신반의’는 2018년의 남북 관계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 작품 ‘반신반의’가 촬영된 세트장 ⓒ김정서]
공작활동을 위해 양국을 오가는 간첩들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일을 수행하나 그들 개개인은 하나의 일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최소한의 인간적 감정도 소거된 전략적 도구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왜 그들은 상대와의 인연에 정을 붙일 수 없고, 상대와의 기억을 폄하해야 하는가. 대립적인 관계를 유지해야한다는 시대정신 때문에 상대에게 막연한 ‘반신반의’ 밖에 덧붙이지 못하는 우리들, 이것은 체제가 낳은 또 다른 폐해일 것이다. ‘격세지감’을 지나 2018년에 새로이 남북 관계를 구현한 파킹찬스의 ‘반신반의’는 그에 대해 되묻고 있는 것이다.
일상 속에 숨겨져 있던 우연히 빚어내는 그림
[▲ 풍경 연작 ⓒ김정서]
우리가 즐겨먹는 과일 바나나는 사실 귀여운 돌고래의 친척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연일지라도 말이다. 내게 바나나가 우연히 돌고래처럼 보였다한들, 바나나의 본질이 실은 돌고래가 아니라는 것은 누가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파킹찬스는 ‘바나나 속 돌고래’와 같은 이면들을 찾기 위해 그들의 초상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에서 소품으로 등장했던 무생물은 물론이거니와 배경에만 머물던 풍경까지 말이다.
[▲ 미술관 연작 ⓒ김정서]
미술관 연작은 파킹찬스가 주목한 ‘사물의 독자성’이 더욱 명확히 드러내고 있고 있다. 미술관에 들어선 관객들은 사진을 찍은 채 플래시를 터뜨리지 말 것을 요구받는다. 이에 파킹찬스는 셔터스피드를 낮추고 사진을 찍어냈다. 결과물은 춤이라도 추듯 어지러이 움직이는 사진의 이미지들만 남았을 뿐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사진 잘못 찍었다’라며 삭제 버튼을 누를 이 사진을 파킹찬스는 ‘미술관 연작’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에 올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미술관에서는 관객도 건물도 전시품 못잖게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작품들이 너무 큰 부담을 진 호객꾼처럼 처량해 보인다.”
<파킹찬스 PARKing CHANce 2010-2018> 中 미술관 연작
미술관의 전시품들은 관객과 관계없는 대과거의 산물처럼 여겨지지만 그들의 존재는 관객의 해석으로만 이루어질 것이다. 마치 잘못 찍혔다 생각되는 이 사진이 어쩌면 작품 내의 숨겨진 생동성의 포착일지도 모르는 것처럼.
일상을 뒤집은 그들, 우리의 일상에 질문을 던지다
[▲ <파킹찬스 PARKing CHANce 2010-2018> 전시장 전경 ⓒ김정서]
우리가 평소 잊고 지내던 휴전선 너머의 이들을 생각하는 일이나 평소에 접하는 무생물이나 미술관을 달리 보는 일 모두 우리 일상을 새롭게 채집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매일매일 접하는 일상의 새로운 이면, ‘파킹찬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빌려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일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얻기 힘든 주차기회와도 같은 우연적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던 파킹찬스의 전시는, 날마다 찾아볼 수 없는 기회가 되어 우릴 찾아왔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지금 바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파킹찬스 PARKing CHANce 2010-2018>
장소: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5관
기간: 2018. 3. 9. (금) - 7. 8. (일)
시간: 화요일-금요일 오전 10:00 – 오후 6:00, 수요일 및 토요일 오전 10:00 – 오후 3:00 월요일 휴관
관람등급: 모든 연령
가격: 통합관람권 3000원 – 5000원
* 장내 극장상영 [격세지감] & [반신반의]
[격세지감] 상영시간 17분, 10:30부터 30분 간격으로
[반신반의] 상영시간 31분, 10:10부터 50분 간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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