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로 눈이 되어주다, <알파인 스키 가이드러너>
게시일
2018.03.17.
조회수
2801
담당부서
홍보담당관(044-203-2050)
담당자
이성은


목소리로 눈이 되어주다, <알파인 스키 가이드러너>


「한 번쯤은 두 눈을 감고 친구의 손만을 잡은 채 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친구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 말을 반복하곤 한다.

“야, 잘 가고 있는 거지?”

“앞에 뭐 없는 거 맞지?”

결국 그렇게 몇 발짝도 못 가 눈을 뜨고 만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하지만 아직 올림픽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3월 9일,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개최되기 때문. 동계올림픽의 15가지 종목 중 알파인 스키,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스키, 아이스하키, 스노보드, 컬링 등 6가지 종목이 동계패럴림픽에서 진행된다.

이 중 시각장애 선수가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은 무엇일까? 사실 어떤 종목이든 시각장애 선수가 참가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시각장애 선수가 출전하는 운동 종목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각장애 선수들은 이번 패럴림픽에 알파인 스키,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스키 세 종목에 참가할 수 있다. 바로 그들의 눈이 되어주는 ‘가이드러너’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경희 선수

[▲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경희 선수 ©권예원]


이번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전주자로 참가하는 알파인 스키 가이드러너 이경희 선수를 직접 만나보았다. 어엿한 14년 차 알파인 스키 선수이기도 한 이경희 선수는 알파인 스키 가이드러너로는 3년째 활동하고 있다. 이경희 선수에게 패럴림픽이란, 가이드러너란 어떤 의미일까.


*전주자: 거리·활강·대회전의 3경기에서 경기개시에 앞서 슬로프의 정비 상태와 경기 진행의 지장 유무를 살피는 기술자


Q. 이번 평창 동계패럴림픽에는 전주자로만 참가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는 최사라 선수가 아직 어려서 이번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는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대신 전주자로서 시범 경기를 뛰는 것으로 참가하게 되었어요. 이번 패럴림픽 개막식 때는 최사라 선수와, 최사라 선수의 쌍둥이 자매 최길라 선수가 기수단으로 참여하게 돼 리허설도 함께해야 해서 바쁘게 준비할 것 같아요.

 

 

가이드러너에 대해 설명하는 이경희 선수

[▲ 가이드러너에 대해 설명하는 이경희 선수 ©권예원]


Q. 많은 분들이 알파인 스키 시각장애 부문과 가이드러너에 대해서 잘 모르고 계실 텐데요. 가이드러너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가이드러너는 시각장애인 알파인 스키 선수를 위해 길을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이 덕분에 알파인 스키 시각장애 부문은 유일하게 한 슬로프에서 두 명의 선수가 내려올 수 있죠. 이어폰을 통해 음성신호를 주고받으며 한 몸인 것처럼 서로 리듬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요.

 

 

이어폰을 착용한 최사라 선수(좌)와 이경희 선수(우

[▲ 이어폰을 착용한 최사라 선수(좌)와 이경희 선수(우) ©이경희 선수]


Q. 음성신호는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선수들 취향에 따라 가이드러너만 신호를 주는 경우도 있고, 두 선수가 신호를 서로 주고받기도 해요. 주로 턴을 해야 하는 순간, 지형변화, 눈 상태, 위기상황 등을 얘기해주죠. 이 때 사용하는 용어가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에요. 말하기 편하고 알아듣기 쉽고 빠르게 얘기할 수 있는 용어로 정하죠. 그냥 우리만의 신호를 만들면 돼요.(웃음) 보통은 턴을 끝내야 한다는 의미의 ‘업’, 턴을 시작하라는 의미의 ‘다운’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긴 해요. 회전과 대회전은 턴을 하는 구간의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음성신호로 그 길이를 알려주기도 해요. 길게 ‘하나, 둘, 셋, 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짧고 빠르게 ‘하나, 둘, 셋, 업’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훈련 중인 이경희 선수와 최사라 선수

[▲ 훈련 중인 이경희 선수와 최사라 선수 ©이경희 선수]


Q. 거리조절부터 속도조절까지 훈련해야 할 게 정말 많을 것 같아요. 시각장애 선수와 가이드러너의 호흡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텐데, 어떤 훈련들을 주로 하나요?

생활 자체가 훈련인 것 같아요. 스키 훈련과 체력 관리를 가장 많이 하긴 하지만, 가이드러너와 선수의 호흡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저희는 호흡을 맞추는 것에 더 중점을 두거든요.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눠요. 같이 한 시간은 3~4년이지만 거의 10년 선수생활 같이 한 것처럼 친해졌어요. 제가 시각장애인이 되어보는 훈련도 했어요. 눈을 가리고 스키를 타는데 정말 무섭더라고요. 제 선수가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가이드러너가 되어줘”

 

 

최사라 선수(좌)와 이경희 선수(우)

[▲ 최사라 선수(좌)와 이경희 선수(우) ©이경희 선수]


Q. 경기 동료를 넘어서서 인생의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겠네요. 최사라 선수와의 재밌는 일화를 얘기해주세요.

최사라 선수는 홍채에 문제가 있어 빛 조절이 안 되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변색렌즈 안경을 쓰고 다녀요. 훈련 중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비바람이 칠 때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안경 덕분에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선수 뒤로 가서 말했죠. “나의 가이드가 되어줘.”라고요.(웃음)


Q. 호흡을 맞추는 것이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은데, 갑자기 한 명이 출전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스키를 탈 때 장비가 없으면 탈 수 없듯이, 둘 중 한 선수라도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면 다른 선수도 출전하지 못해요. 대신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훈련 중에 가이드를 서로 바꾸어 연습하기도 해요.

 

 

양재림 선수(좌)와 이경희 선수(우)

[▲ 양재림 선수(좌)와 이경희 선수(우) ©이경희 선수]


Q. 이번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양재림 선수와도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고 들었어요.

양재림 선수도 가이드를 바꾸어 연습하면서 만나게 됐는데, 저에겐 정말 고마운 언니이자 선배에요. 조언도 많이 해주고, 외국을 다녀오면 항상 제 선물을 사다줘요. 너무 많이 받아서 하나하나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에요.

아, 최사라 선수한테도 정말 고마운 선물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한 번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향수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다녀왔었나 봐요. 제가 좋아하는 자몽 향으로 향수를 만들어서 주더라고요. 그 선물이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가장 고맙고 감동적이었어요.


Q. 지금까지 가이드러너로 활동하면서 느낀 가이드러너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어린 선수를 만나서 그럴 수도 있는데, 이 선수가 저로 인해서 많이 바뀌어갈 때 그리고 그걸 고마워할 때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한 번은 최사라 선수 어머니께서 “이경희 선수를 만나서 사라가 많이 바뀌었어요. 정말 감사해요.”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웃음) 선수들끼리 우애가 깊어지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질문에 응하는 이경희 선수

[▲ 질문에 응하는 이경희 선수 ©권예원]


Q. 이경희 선수에게 가이드러너란 어떤 의미인가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선수생활을 계속 해왔었는데,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서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됐어요. 그런데 저는 계속 스키를 타고 싶었거든요. 경제적 부담은 어느 정도 줄이면서 스키를 계속 탈 수 있는 방법이 가이드러너였죠. 제 동생도 장애가 있거든요. 그래서 장애인 스포츠에 관심도 있었고, 잘 할 자신도 있었어요. 그렇게 가이드러너를 지원하게 되었죠. 가이드러너는 제게 그런 의미에요. 제2의 인생.


Q. 끝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알파인 스키 종목 자체가 이번 올림픽 때도 중계가 많이 안 됐을 정도로 비인기 종목이긴 한데, 장애인 선수들의 올림픽인 패럴림픽은 좀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정말 대단한 도전을 하는 선수들이거든요. 시각장애뿐만 아니라 소아마비, 절단장애를 가지고 있는 선수 등 많은 선수들이 있는데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많아요.

패럴림픽 경기장 관중들이 박수를 정말 많이 쳐주는데, 그 중에서 우리나라 관중은 많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웠어요.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패럴림픽이 열린 만큼 한 번쯤 경기 꼭 관람하고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느끼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이경희 선수와의 만남은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의 슬로건인 ‘하나 된 열정’을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 깊숙이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이드 선수만이 시각장애인 선수의 눈이 되어주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두 선수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였다.


오로지 소리에만 의존하여 결승선까지 달려가는 알파인 스키 시각장애 국가대표 선수들. 그만큼 경기장은 공공방송, 제설장비 소음 하나 없이 매우 조용하게 진행된다. 이번 평창 동계패럴림픽의 알파인 스키 경기 현장에 직접 찾아가 다함께 숨죽이고 그들의 호흡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13기 권예원 기자 dpdnjs4570@hanmail.net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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