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의 세계화를 꿈꾸는 손대현 장인을 만나다.
게시일
2011.06.02.
조회수
1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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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이유진

나전칠기의 세계화를 꿈꾸는 손대현 장인을 만나다.

지난 목요일, 백상예술대상 보셨나요? <시크릿가든>의 현빈이 드라마 부분 대상을 수상해서 화제를 모았는데요. 지난 겨울 우리를 설레게 했던 국민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명대사 혹시 기억하시나요? “이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옷이 아니야.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옷이란 말이지.” 하지만 현빈도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우리나라에도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나전칠기공계를 만들고 있는 장인이 있다는 것이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나전칠기 명장 손대현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오색영롱한 자개 빛에 오롯이 마음을 뺏기다


나전칠기는 어떻게 만드는 건가요?

나전은 칠기에 나전으로 장식했다는 것을 뜻하고요. 칠기는 옻칠이 된 작품을 뜻합니다. 신라시대에 금테칠기라고 해서 금으로 문양을 만들기도 했어요. 또 금속을 이용해서 만들 수도 있는데 나전을 이용해서 만든 게 바로 나전칠기죠.


나전은 전복껍질로 만든다고 들었거든요. 그 외에도 다른 재료가 있나요?

나전 재료는 크게 2가지로 나눠요. 전복껍질로 만든 것과 소라껍질로 만든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소라껍질은 빛깔이 맑고 투명한 것이 특징이고요. 반면 전복껍질은 무지갯빛처럼 오색영롱한 빛깔을 내죠. 나전칠기를 기법 상으로 구분하자면 주름질기법과 끊음질기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주름질기법은 실톱 등을 이용해 문양을 오리는 기법을 말하고요. 끊음질기법은 전복껍질을 얇게 선으로 잘라 문양대로 칼로 끊는 작업이라 그렇게 이름 붙여졌습니다.


나전을 이용해 작업하시는 손대현 선생님

▲ 나전을 이용해 작업하시는 손대현 선생님 ⓒ 손대현


선생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나전칠기를 배우게 되셨나요?

제가 어려서 무역회사에 심부름을 하러 다녔어요. 그 회사가 있는 건물 2층에 칠기공방이 있어서 자주 구경다녔거든요. 완성된 작품이 포장되는 것을 보니 자개빛깔이 굉장히 아름답게 보이더라고요. 그 때부터 칠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사장님께 말씀드린 뒤 시작하게 됐죠.


그 때가 언제쯤인가요?

64년도(14살 무렵)일 거예요. 무척 오래됐죠? (웃음) 일을 시작한 후 나전칠기 분야에 명인 3분이 계시다는 얘기를 듣게 됐죠. 김봉영 선생님, 김태휘 선생님, 그리고 민종태 선생님. 기왕 일을 하려면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민종태 선생님을 찾아뵈러 갔었죠. 사실 처음에는 뵙지도 못했습니다. 여러 번 다니다 보니까 선생님 아래에 있으신 분과 안면을 트게 됐죠. 제가 자주 찾아와서 인사도 하고 그랬으니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분으로부터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일을 할 수 있을 거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죠. 그렇게 민 선생님 공방에 들어가게 됐답니다.


 손대현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수곡 공방 내부

▲ 손대현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수곡 공방 내부 ⓒ 박미래


민종태 선생님 아래에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요?

선생님께서는 일본 수출을 많이 하셨어요. 하루는 일본 바이어가 와서 ‘차 도구’를 부탁하며 오동잎이 그려진 일본전통문양을 가지고 왔었어요. 그걸 보시고 선생님께선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시더라고요. 선생님께서 “일본 문양을 똑같이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우리 문양을 구상해서 할 수 있게 한다면 하고 아님 안하겠다.”고 말씀하셨죠. 선생님 말씀을 듣고 그 일본분이 맡기고 가시더라고요. 얼마 후 샘플이 나와서 일본 바이어 분이 다시 공방에 오셨어요. 그 분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저는 구석에 서있었죠. 그 때 선생님께서 ‘차 도구’를 그 분에게 보여드리니, 그 분께서 의자에서 탁 일어나시더니 무릎을 꿇고 고개 숙인 채 두 손으로 공손히 ‘차 도구’를 받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굉장히 감동받았었죠. 선생님께서 제게 늘 당부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우리가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우리 문화와 숨결이 담겨 있는 것을 해외에 선보여야 한다.” 외국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그들의 문양을 가지고 작업했다가는 우리 것이 없어진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선생님을 통해 전 우리 전통 문화와 문양이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죠.



전통문양의 현대화가 세계화의 밑거름


해외의 다른 문양들과 비교해봤을 때 우리 전통문양만이 갖고 있는 매력은 뭘까요?

우리 전통 문양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죠. 예를 들어 어떤 집에 가보면 대물림해서 쓰는 물건이 있잖아요? 그런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전통 문양이 많이 담겨 있어요. 민화들도 마찬가지고요. 이제 저희는 그 중에서 전통문양의 소재를 찾아 재해석한 뒤 새로운 문양을 만드는 거죠. 그렇다고 예전과는 전혀 다른 문양을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없죠. 왜냐하면 뿌리는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 문양들이 현대에 맞게 발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선생님께서 보관 중인 여러 가지 전통 문양

▲ 선생님께서 보관 중인 여러 가지 전통 문양 ⓒ 박미래


선생님께서는 몇 가지 종류의 전통 문양을 갖고 계시나요?

셀 수 없이 많죠. 그 중에서 저는 십장생, 당초문양을 주로 사용해요. 당초 문양은 넝쿨무늬를 뜻하는데요. 이집트 쪽 카펫이 대부분 넝쿨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그 쪽 넝쿨 문양과 당초문양은 엄연히 맛이 다르거든요. 그건 바로 뿌리와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에요. 저 같은 경우 옛날 당초문양을 모티브로 해서 새로운 문양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는데요. 특히 나비당초문양을 좋아합니다.


나비 모란 당초문 구절판(좌)과 모란당초 서류함(우)

▲ 나비 모란 당초문 구절판(좌)과 모란당초 서류함(우) ⓒ 박미래


나전칠기 장식을 다른 분야에 접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방한했을 때 전자액자를 의뢰를 받았었어요. 누르면 사진이 모니터로 지나가는 액자였는데, 나전문양을 액자장식으로 꾸미는 작업이었죠. 저는 모란당초 문양으로 해서 옻칠을 해 갖다 드렸는데요. 그 때 최첨단 제품에 우리의 전통문양을 가미해서 제작하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최근 BMW에서 의뢰가 들어와 작업했을 때도 모란당초문양을 썼어요. 처음엔 BMW측에서 심플하고 현대적인 문양을 의뢰했었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이것을 오랫동안 만들어 온 장인이고, 나전이라는 것 자체가 화려한 것이 특징이니 저한테 맡겨 달라.”고 말씀드렸죠. 그 때 추천했던 여러 전통 문양 중에 모란당초문양이 선택된 거죠. 나중에 다들 결과물을 보자마자 굉장히 만족스러워 하시더라고요. (웃음)


BMW 7시리즈 코리안 아트 에디션에 장식된 손대현 선생님의 나전칠기 장식

▲ BMW 7시리즈 코리안 아트 에디션에 장식된 손대현 선생님의 나전칠기 장식 ⓒ 손대현


결국 우리 것이 세계로 나가면 세계적인 것이 되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현대적인 것에만 초점을 둔다면 우리 바탕이 없어지고 말아요. 즉 우리의 구심점이, 정체성이 사라진다는 거죠. 전 우리 문양을 재해석하면 충분히 심플하고 현대적인 문양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중국은 도자기, 일본은 옻칠. 한국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우리 임금님들이 썼던 병풍 있잖아요. 봉우리 5개가 있는. 그런 문양을 나전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에 문갑에다 그 문양을 놨었죠. 그 작품이 바로 ‘일월오악도 문갑’인데요.


신비로움마저 느껴지는 일월오악도 문갑

▲ 신비로움마저 느껴지는 일월오악도 문갑 ⓒ 손대현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해서 국무총리 상을 받았었죠. 그것도 우리의 문양을 어떻게 하면 나전으로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나온 작품이거든요. 나전도 색깔이 여러 가지가 많아요. 자연에서 나는 것이기 때문에 녹색을 띄는 것도 있고, 분홍빛 나는 것도 있고. 희고 맑은 빛을 내는 것도 물론 있어요. 이렇게 자연에서 나오는 천연 재료를 선택해서 문양화하면 아름다운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현재 ‘한국 문화의 집’으로 옻칠 강의를 하러 나가시는데 어떤가요?

‘한국문화의 집’에서 하는 옻칠 수업은 굉장히 보람 있어요. 20대부터 70대까지 말 그대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수업을 들으러 오세요. 처음엔 옻칠이 워낙 생소한 작업이라 다들 어려워하시죠. 또 작업을 하다 보면 옻이 올라 가렵고 하거든요. 근데 다들 그걸 이겨내시고 해마다 전시를 하고 있죠. ‘옻빛전’이라고 하는데, 매해 발전되고 있고 작품들 수준이 점차 좋아지고 있는 걸 보면 매우 뿌듯하죠.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전 우리 나전칠기가 정말 세계적이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고려 시대 때 만들어진 나전칠기 문양을 보면 상당히 섬세하고 아름다워요. 그 작품들이 일본, 유럽 쪽으로 나가서 각자 그 나라 문화재로 소장되어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 작품들이 없다는 점이 바로 문제인 거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작품들이 그 시대에 활발하게 교역이 돼서 해외로 수출되었단 말이에요. 그렇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몇 년 전 제가 동경예술대학에서 전시하면서 세미나할 때 우리나라 전통 나전칠기 제작기법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 때 스페인 박물관 담당자가 오더니 우리 작품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옻칠하면 당연히 일본인 줄만 알았는데 한국의 나전칠기가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와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었죠. 이처럼 우리 나전칠기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발전되었다면 다른 나라들과 활발하게 교역했을 텐데 말이죠. 사실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나전칠기는 큰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세계시장에 어떻게 나전칠기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기회를 찾고 있어요. BMW와 함께한 작업도 그 일환이고요. 좀 더 제도적인 부분들이 보완돼서 좋은 작품들이 해외에 선보일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그런 부분이 아쉬움이 커요.


손대현 선생님

 

손대현 선생님께서는 현재 월요일엔 서울대학교 공예학과 전통옻칠 수업을 하러 가시고, 화요일과 목요일엔 한국문화의 집에 옻칠 수업을 하러 가십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단지 본인만 그 능력을 갖고 있기 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옻칠의 매력을 느끼게 하고픈 손대현 선생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에 무지했던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바람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고 아끼다보면 자연스레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한류열풍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 날이 하루 빨리 다가오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박미래 대학생기자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mira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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