룽산으로의 귀환

룽산으로의 귀환

저/역자
조너선 D. 스펜스/이준갑
출판사
이산
출판일
2010.07.08
총페이지
348쪽
추천자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도서안내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인 조너선 D. 스펜스는 『강희제』 등 일련의 중국사 저작으로 한국 내에도 독자층을 갖고 있는 학자다. 『룽산으로의 귀환』은 장다이(張岱)라는 한족(漢族) 출신의 지식인을 통해 명·청 교체기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명조(明朝)의 체제에 맞춰져 있는 시간이 장다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는데, 이 시간은 1644년 명조의 멸망과 함께 끝나고 말았다”는 프롤로그는 장다이의 인생이 평범하지 않을 것이란 예감을 준다.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의 명가 출신이었던 장다이는 몇 번의 향시(鄕試)에서 떨어진 후 사실상 과거를 포기하고 차(茶)·서화 감상, 거문고·연극연출 등의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긴다. 그러나 명조가 몰락하면서 그도 시대의 격변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한때 만주족의 청에 대항하려고도 했으나 남명(南明) 정권의 작태를 목도하고는 고향인 사오싱의 룽산(龍山)으로 돌아가 배고픔에 시달리며 저술에 몰두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도암몽억(陶庵夢億)』이란 수필집이었다. 그러나 장다이는 “나라가 없어지고 집안이 망하고 돌아갈 곳이 없어진” 뒤에 자결하기로 결심했다가 “『석궤서(石匱書)』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했다고 말한 대로 명나라의 역사서 『석궤서』와 『석궤서후집(石匱書後集)』의 집필에 남은 인생을 걸었다. 석궤는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쓸 때 사료들을 보관했던 장소를 뜻한다는 점에서 사마천을 역할 모델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장다이는 『석궤서』를 다섯 번이나 고치고 아홉 번이나 오류를 바로 잡는다. 『석궤서』 서문에서 장다이는 “역사란 정작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쓰지 않고, 써서는 안 될 사람들이 쓰는 그런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따지고 보면 시대를 아파하는 지식인치고 역사서 쓸 자격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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