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투의 유혹

번역투의 유혹

저/역자
오경순
출판사
이학사
출판일
2010.07.31
총페이지
272쪽
추천자
손수호(국민일보 논설위원)

도서안내

현대사회는 언어의 경연장이다. 글로벌 환경에서 언어를 둘러싼 국적의 힘은 많이 약화됐다. 그보다는 언어 스스로의 매력이 경쟁력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언어는 활용성을 바탕으로 언중의 선택과 버림을 받는다. 언어의 위상은 다양한 변주를 보인다. 내국어를 대체하는 외국어, 외국어를 보완하는 내국어의 움직임이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알아둘 것이 하나 있다. 모국어의 지위가 내셔널리즘으로 보호받던 시대는 지났지만 나랏말의 구성만큼은 제대로 알고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자어, 영어, 일본어가 우리의 언어생활을 한층 풍요롭게 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모국어의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외국어 활용도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은 우리 생활에 들어온 외국어 가운데 일본말의 침투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를테면 한자어로 알려진 ‘一石二鳥’는 영어 속담 ‘to kill two birds with one stone’를 일본 학자가 사자성어로 만든 것이다. 무심코 쓰는 단어나 문장이 일본식 문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은 수차례 반복됐지만 여전히 정수리를 맞은 듯 아프다. 현역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학위를 취득한 저자의 신분이 그렇듯 책의 구성이 체계적이고 용례가 다채롭다. 글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어휘의 유혹과 표현의 유혹. 저자는 먼저 ‘몸적으로, 마음적으로’와 같은 단어의 억지 조합의 난센스를 지적하면서 일본식 조어인 ‘∼적(的)’의 사용을 줄이라고 권한다. 오랜 관행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느냐고? 저자는 당장 ‘∼적’을 아예 빼어버리거나, ‘∼적’ 대신 ‘의’나 ‘에서’와 같은 조사를 쓰면 된다고 말한다. ‘학술적 가치’는 ‘학술 가치’로, ‘보수적인 색채’는 ‘보수 색채’로, ‘구체적 설명’은 ‘자세한 설명’으로, ‘일시적으로’는 ‘한 때’로, ‘신화적 존재’는 ‘신화 같은 존재’로, ‘교육자적 자질’은 ‘교육자다운 자질’로. 놀랍지 않은가. 일본어 격조사 ‘の’의 남용도 우려한다. ‘우리의 나라’보다는 ‘우리나라’가, ‘우리의 선생님’보다는 ‘우리 선생님’이 자연스럽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독립선언문부터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를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바꿀 수 있다. ‘만남의 광장’은 ‘만나는 광장’이 좋다. 이밖에 ‘∼임에도 불구하고’는 그냥 ‘∼에도’로, ‘하고 있다’는 ‘한다’로, ‘아버지로부터의 편지’는 ‘아버지로부터 편지’로 쓰는 것이 일본말 번역투의 잔재를 털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생활에 굳어진 ‘부부’는 ‘내외’로, ‘가족’은 ‘식구’로 쓰는 것이 옳다. 이 책은 번역투의 만연화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하고, 이런 번역투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까지 제시하는 점이 돋보인다. 글을 쓰거나, 외국어를 우리글로 옮기거나, 우리말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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