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니와 애니

패니와 애니

저/역자
D. H. 로런스/백낙청 외
출판사
창비
출판일
null.
총페이지
356쪽
추천자
김미현(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도서안내

D. H. 로런스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대부분 <채털리 부인의 사랑>일 것이다. 평판작이 대표작이 아닌 경우를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로런스는 <아들과 연인>이라는 뛰어난 작품 이외에도 <무지개>, <연애하는 여인들>등의 장편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性)을 다룬 문학은 대표작이 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채털리부인의 사랑>은 대개의 원작 있는 영화화가 왜곡 혹은 변형되기 쉽듯이 ‘에로영화’로 접한 경험이 강해서 원작의 진면목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번에 새로 3편이 추가 번역되면서 재출간된 로런스의 대표단편집 <패니와 애니>를 읽으면 로런스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다. 로런스는 탄광촌의 노동 계급 출신답게 정통적 사실주의에 입각해 계급의식을 문제 삼지만, 날것 그대로의 사회적 계급 갈등이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의식 저층까지 파고든 근원적 한계로서 타자와의 갈등을 더 중시한다. 대표 단편인 ‘국화 냄새’를 보면, 낭만적인 향기가 아니라 절망적인 일상을 대변하면서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연결되는 상징물로 국화 냄새가 기능하고 있다. 탄광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그 시신을 보면서 느끼는 절대 고독감과 허무감은 출생 배경이 다른 부부 간의 갈등으로 읽힐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죽음 앞에서 확인되는 절대적인 고독감, 성적인 매혹과 심리적인 환멸 사이의 갈등이 더 문제적이다. 표제작인 ‘패니와 애니’에서 대립되는 두 여성인물의 이름이 대변하듯이, 로런스는 귀족/평민, 고상함/천박함, 숙명/의지, 몸/정신 등에서의 갈등을 대위법적인 인물로 배치한다. 그리고 그런 갈등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쉽게 치우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한계를 열린 사고로 형상화한다. 겸허하고도 냉혹한 작가의식이다. 그래서 로런스는 ‘낮’과 ‘밤’의 대립이 아니라 ‘정오’와 ‘자정’의 만남을 중시한다. 작가 자체가 낮과 밤의 ‘사이’에 서 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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