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안내
이문열의 『리투아니아 여인』은 리투아니아 여인의 이야기면서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리투아니아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김혜련’이라는 뮤지컬 음악 감독을 중심으로 그녀의 모계(母系)가 겪은 디아스포라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는 하다. 소련 제국주의 팽창 정책의 희생물이 되어 독립국보다는 속방이나 점령지로 더 많은 세월을 보낸 리투아니아의 과거와 현재 속에서 한국과 미국을 오락가락하며 겪는 정체성의 불협화음이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21세기에 ‘피’와 ‘땅’, 즉 혈통이나 국적에서 정체성을 찾는 일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일인지 비판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은 국제성이나 문화적 다양성, 다국적성, 혼합성 등이 조화와 절충, 종합의 미덕이 아니라 무의미한 혼재나 착종, 병렬, 중첩 등이 되기 쉬운 현실을 직시하면서 기존의 디아스포라소설이나 다문화소설이 지닌 관념성과 이데올로기성에서 탈피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나의 조국은 음악이고 내 동족은 내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266쪽)이라는 김혜련의 최종 선택을 통해, 그녀의 조국이 리투아니아도, 미국도, 한국도 아닌, ‘예술’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여기서 이 소설은 디아스포라소설이나 연애소설뿐만 아니라 예술가소설로 거듭 태어난다. 1인 망명 정부로서 예술 그 자체가 모국어인 문화적 노마드들에게 바쳐지는 선언이자 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