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되는 공간, ‘한국 시의 집’으로의 산책
게시일
2010.07.11.
조회수
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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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담당관(02-3704-9048)
담당자
조수빈

 시(詩)를 잃어가는 시대...

지난 5월, 영화감독 이창동은 시를 잃어가는 시대에 시를 이야기한, 영화 ‘시(時)’를 관객에게 선보였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탄탄한 스토리를 인정받았지만 흥행에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개봉한 지 한 달 후에나 20만 명을 겨우 넘은 정도였으니, 명백히 이창동 감독의 첫 흥행 실패작이었다. 영화 사이트마다 최고의 평점을 자랑하며 소위 ‘잘 만든 영화’임을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라는 ‘이 시대의 지는 별’에 관객들은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다. 추측하건대 내용 좋고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도 선뜻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날의 많은 사람들에게 ‘시’라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좀 따분하고 어려운 것, 교과서에서나 배우는 재미없는 것’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국문학도인 기자가 서정주의 시집을 들고 다닐 때면, 으레 따분한 시선들이 책에 꽂히곤 했다. 아니면 조금 신기한 듯 이방인을 보는 눈빛 정도? 이미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시’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여전히 시를 사랑한다!



시인이 되는 공간, 한국 시의 집으로의 산책


그러나 시인, 혹은 시인 지망생이 넘쳐나고 있는 것 또한 대한민국의 현 모습이다. 수많은 시인들의 시집이 출판되고, 해마다 열리는 ‘신춘문예’에 몰리는 시인 지망생만도 수만 명에 이른다. 시 전문지의 수도 매우 많다. 대중적인 사랑이 식었다고 해서 이 사회에 ‘시’가 사라져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에 대한 시인들의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뜨겁다. 이러한 ‘시’에 대한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공간이 한 곳 있다.



시인이 되는 공간, 한국 시의 집으로의 산책


혜화동 로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국 시의 집 ? 현대시박물관’은 지난 2008년 11월 1일 개관한 국내 최초의 현대시 박물관이다. 이곳은 문학평론가이자 경희대 교수인 김재홍(61) 교수가 자신의 집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그의 40년이 넘는 시 연구 인생을 담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한국 현대시의 출발이라 하는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발표 날로부터 딱 100년 되는 날 개관한 박물관이라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1908년 11월 1일에 발표되었다) 


이곳은 앞서 말한 대로 김 교수의 사택을 개조한 박물관이어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박물관이 아닌 아담하고 정겨운 집을 놀러온 듯 착각을 느끼게 했다. 옹기종기 자리한 소박한 소품들과 따뜻한 색상의 넓은 평상, 그리고 나무들의 시원함까지… 확실할 순 없지만 ‘시’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박물관의 의미를 뛰어 넘어 말 그대로 ‘시가 있는 집’과 같았다. 시를 보고 배우는 의미가 아닌 ‘느낄 수 있는’ 그런 곳.


현대 시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박물관!


현대 시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박물관


아담한 크기의 박물관이지만, 이곳에는 현대시에 관련해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전시물들이 마련되어 있다. 박물관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액자들은 현대시 100년 주요시인 100인의 초상화와 함께 대표 시가 자리하고 있다. 김소월, 이상, 이육사, 윤동주 등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시 구절이 떠오르는 시인들을 눈앞에서 만나는 듯, 생생한 초상화를 보며 시를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만해 생애 도자화실’이라 이름 붙은 한 방에는 ‘만해 한용운’ 시인의 대표 시「님의 침묵」을 김천정 화백이 도자기에 그려 넣은 인상적인 도자화를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시 100주년기념 박물관답게 김소월, 정지용, 노천명 시인 등의 희귀 시집 및 주요 시 전집 등이 300여 권이 넘게 마련되어 있어, 오랜 세월 속 우리 현대시의 자취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현대 시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박물관


이뿐만 아니라 좁은 계단을 이용하여 주요 시인들의 육필 원고를 전시한 ‘시의 숲’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육필 원고들은 시인들의 당시 열정과 고뇌와 또, 많은 감정의 흔적들을 느끼게 해준다. 펜으로 흘겨 쓴 글씨, 누렇게 바랜 원고지는 그 어느 시집을 읽을 때보다 시의 의미에 빠져들게 만드는 신비한 힘을 가진 것 같다.


현대 시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박물관


육필 원고로 가득한 이 계단을 지나 2층을 둘러보면 유명 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시화를 만날 수 있다. 이용악 시인의 ‘낡은 집’과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특히나 멋진 시화로 눈길을 끄는데, 시의 분위기와 감정을 굉장히 잘 표현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작은 공간을 이용한 주요 시인들의 초상사진 전시를 볼 수 있다. 저마다의 개성을 간직한 시인들의 모습을 흑백 처리한 많은 사진들은 초상사진의 의미를 넘어 굉장히 멋진 공간을 연출해냈다. 특히나 이 초상사진 중에는 현재 활동 중인 시인들의 사진도 있어, 현대시의 맥을 잇고 있는 2010년의 시 문학계 인사를 간접적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


시를 보고 배우는 곳이 아닌, 시를 느끼는 곳!


시를 보고 배우는 곳이 아닌, 시를 느끼는 곳


‘현대시박물관’을 겨우 하루 잠깐 둘러보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꽤나 인상 깊었다. 물론 시에 대해 약간이나마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기자라 이 공간의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을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이곳은 시를 보고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시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공간이란 점이다. 또한 시에 대한 시인들의 열정으로 마련된 공간이며 현대시 100년을 이끌어 온 수많은 시인들의 발자취와 그들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란 것이다. 취재의 목적으로 이곳에 들렀던 기자 역시 잠시 넓은 탁자 앞에 앉아 괜히 수첩에 낙서도 하고 슬쩍 짤막한 시도 지어보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눈앞에 보이는 이상 시인의 시도 조용히 읊어보았다. 시에 대해 모르는 게 많지만 그냥 그 순간만큼은 나도 시인인 냥 시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김정초 운영 실장


이곳을 관리하는 김정초 운영 실장(51)은 ‘시에 관심이 없는 젊은이들도 이곳에 와서 시의 감동을 많이 느끼고 간다. 나중에 친구를 데려오기도 한다’면서 ‘이 공간에 들르는 젊은이들을 보며 시를 잃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아직 희망이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덧붙여 ‘시에는 시인들의 고운 정서와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들어있다’며 ‘이 공간을 통해 시가 갖고 있는 의미들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고 작은 바람을 얘기했다.


시 박물관으로의 산책, 잠깐 시인이 되어보자!


시 박물관으로의 산책, 잠깐 시인이 되어보자


우리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잠깐 영화를 볼까 친구와 수다를 떨까 고민을 하며 휴식 시간을 마련하곤 한다. 그럴 때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대학로 거리를 조금 벗어나, 현대시박물관에 서 아담한 휴식을 즐기는 것은 어떨까? 시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시에 대해 잘 몰라도 괜찮다. 이곳에서 시인들의 시를 배우고 알아갈 필요는 없다. 단지 널따란 평상에 앉아 이곳의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을 보고 가도 괜찮다. 어려운 말이지는 모르지만, 분명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 한편의 시가 느껴지는 시간일 것이다. 도심 속 작고 아담한 한옥에서 느끼는 여유로운 시간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시인의 마음을 잠시 깨워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관람시간

: 매주 화 · 목 13 : 30 ~ 18 : 00 / 토요일 예약시 가능


+ 찾아가는 길

: 대학로 혜화동 로터리 → 과학고 쪽 30m → 명륜교회 쪽으로 좌회전 70m → 아남아파트 201동 경비실 앞 위치   


글,사진/문정선(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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