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단
- 게시일
- 2010.04.23.
- 조회수
- 5570
-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02-3704-9048)
- 담당자
- 조수빈
인간에게 있어서 물은 매우 중요한 필수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오랜 선사시대부터 인간들은 물을 찾아 이동했고, 그곳에서 정착하여 생활을 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한강은 우리가 살기 적합한 곳이었고, 그럼으로써 문명의 꽃을 피울 수가 있었다. 또한 한강은 한반도의 중부를 가로질러 황해로 유입되는 강으로 이동에 있어서, 특히 군사력 증강에 용이한 위치이기도 했다. 이렇듯 한강은 문명지로 또는 군사적 요충지로 예부터 사람들이 생활하고 문화를 꽃피웠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에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위치해있는 아름다운 문화 유적지를 차례대로 살펴보며 그들의 흔적들을 느껴보자.
1. 아차산성
아차산성은 광진구 광장동 아차산 위에 쌓은 산성이다. 석축으로 쌓은 이 성은 산 능선을 따라 이어졌는데, 길이는 약 1.1km이며, 내부면적은 82644.63㎡이다. 일명 아단성, 광진성으로 불리며 백제, 고구려, 신라 3국이 차지하기 위해 혈투를 벌였던 곳이다. 백제가 이 곳을 차지하고 있던 시대에는 한강 남안의 풍납토성과 그 옆의 몽촌토성과 함께 도읍터를 지키던 강북 제일의 요새였다.
2. 암사동 선사 주거지
서울 한강 유역 중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뚜렷한 곳으로 약 6000년 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빗살무늬 토기, 무문토기,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오랜 옛날부터 바위절이라 불리워진 남서쪽의 강동구 암사동 139-2번지를 위시해 25필지, 8,260㎡ 규모의 이곳에는 아홉채의 신석기 시대 움집이 원래 모양으로 꾸며져 있다.
3. 풍납토성
풍납동 한강변의 백제의 토성으로 바람드리성, 또는 배암드리성이라고도 한다. 둘레가 4km인 이 토성은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996년에 실시한 발굴조사 때 선사시대 말기에서 삼국시대에 걸친 토기가 적지 않게 출토되어 먼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생활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4. 몽촌토성
몽촌토성은 올림픽 공원 내의 백제의 토성이다. 풍납토성 동남쪽 인근의 몽촌토성은 그 형태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있다. 둘레가 2.3km 가량 되는 몽촌토성은 타원형으로 이루어진 자연 야산을 이용하여 그 위에 진흙으로 성벽을 쌓고 둘레에는 방어용 개천인 해자를 비롯해 목책과 망루가 설치되었던 토성이다. 성 안에서는 백제 초기의 건축물과 관련된 생활도구들이 발굴되었다.
5.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
돌마리로 불리우던 곳에 백제 초기 돌무지무덤과 널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한강변 고대 유적지의 하나로 말끔히 복원된 4세기 전후의 적석총과 고분군을 중심으로 주변 5,000㎡이 사적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그 중 제3호, 제4호 돌무지무덤이 사적 제243호로 지정되어 있다.
6. 봉은사
봉은사는 강남구 삼성동 73번지에 자리한 서울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봉은사는 고려 때 지어진 절로 처음에는 견성사라 불리워지다가 연산군 4년(1486) 성종의 능인 선릉의 원찰로 되면서 봉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보우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1551년 선종의 최고 사찰로 지정되면서 그 이듬해 이곳에서 선종승과를 보았다. 이때 승과에 급제한 인물로는 뒷날 임진왜란 때 승병의 총수가 되어 국난 극복에 크게 이바지한 서산대사 등이 있다.
7. 살곶이 다리
살곶이 다리는 조선시대 성종 때 놓여진 행당동에서 뚝섬을 연결하는 돌다리이다. 이 다리는 조선시대에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큰 석교였다. 조선 세종 때의 상왕(임금의 부친)인 태종이 자양동 한강변의 낙천정에 기거하였으므로 임금 행차가 잦아져 이 시기에 놓기 시작하였으며 성종 때 완공하였다. 지금 남아있는 다리는 1970년대에 보수한 것으로 폭 6m, 길이 76m가 된다.
8. 사육신묘
사육신묘는 동작구 노량진동 185-2번지의 한강을 굽어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있다. 1455년 수양대군이 조카이던 단종을 내쫓고 임금이 되자 여섯 신하가 목숨을 걸고 이를 반대하다 끝내 참수를 당하였는데 이들이 사육신이다. 서울시는 1978년에 이들의 충성된 마음을 기리기 위해 성역으로 지정하여 공원으로 꾸몄다.
9. 공민왕 신당
공민왕 신당은 고려말 공민왕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와우산 동남쪽 기슭 창전동 산 2번지의 오래된 느티나무에 둘러싸인 이 신당 안에는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 최영 장군의 영정과 왕자, 공주, 옹주의 화상이 있다. 재위 중 공민왕은 이곳에 있던 정자에 머물면서 한강을 바라보며 시와 그림으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고 한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직후 광흥창을 지을 때 이곳에 사는 한 노인에게 공민왕이 현몽하여 지을 것을 명했다고 한다.
10. 행주산성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3대첩지의 하나로 국난 극복의 정기가 서린 산성이다. 권율장군이 3천명의 병력으로 10배나 많은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적이 쳐들어오자 성안의 부녀자들이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날라 승전고를 울리게 하여 ‘행주치마’라는 명칭이 유래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의 조화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적들과 소통할 수 있다. 옛 선조들의 삶과 그들이 꿈꾸던 이상 등의 숨결을 차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옛 선조들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인공물이 조화될 수 있도록 건축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는 현대 사회에 이르러 발전을 핑계로 무분별한 자연훼손을 반성하고, 자연환경에 대한 고민을 하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 것이다. 오늘 하루, 밖으로 나가 한강의 문화재들을 보고 이들과 소통하며 배움을 받아보는 하루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글/이창원(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