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3 <시(詩)> 삶의 피고 짐을 그리다
게시일
2019.01.29.
조회수
1630
담당부서
디지털소통팀(044-203-2050)
담당자
이성은

국립극단 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3 <시(詩)>

삶의 피고 짐을 그리다


‘우리 소리’를 타고 흐르는 시(詩)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국립극장의 하늘극장에선,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판소리꾼의 울림에 올라타 원색의 조명 아래 무대를 가득 메운다. 언어로서의 ‘시’와 노래로서의 ‘판소리’는 모두 ‘운문’을 담고 있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지만, 아직은 생소한 만남이다. 이런 대담한 도전을 내보인 국립창극단의 세 번째 신창극시리즈 <시(詩)>는 우리에게 어떤 ‘절묘함’을 맛보게 할까?



신창극시리즈 <시(詩)> 포스터 

[▲신창극시리즈 <시(詩)> 포스터 ⓒ국립극장]


2012년 김성녀 예술감독 부임을 주축으로 ‘일신우일신(一新又一新)’(날이 갈수록 새로워짐)이란 목표 아래, 국립창극단은 멈춰 서지 않고 항상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왔다. 이러한 국립창극단의 끊임없는 변화를 향한 도전 중 하나가 바로 신(新)창극시리즈다. 국립창극단은 2018년 2월, 동화 빨간망토를 동시대 여성의 시각으로 다시 쓴 <소녀가>를 시작으로, 제임스 팁트리 원작 소설 ‘마지막으로 할 만한 어느 멋진 일’을 각색한 공상과학소설 창극 <우주소리>에 이어, 2019년 1월 <시(詩)>를 무대에 올린다.



<소녀가 />  <우주소리 />

[▲신창극시리즈 <소녀가>(좌), <우주소리>(우) 포스터 ⓒ국립극장]


신창극시리즈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극을 주축으로 하되, 소재, 방식, 공간 등 작품의 요소들은 함께 작품을 꾸려나가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맡긴다. 현대 관객들의 수요는 ‘자유롭고 다양한 창극’일 것이란 판단 하에 기획된 것이다. 특히나 젊은 예술가들이 창극이라는 유연한 테두리 안에서 보다 색다른 도전과 상상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동시대의 감성을 흡수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우리 소리’의 만남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 Baldomero Pestana/Instituto Cervantes]


<시(詩)>의 연출가 박지혜는 소설을 토대로 극을 쓰면서 늘 죽은 작가와 공동 창작 한다고 여긴다. 이번 박지혜 연출가가 손을 잡은 작가의 이름은 파블로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의 시인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다. 우리에겐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영화 <일 포스티노>로 잘 알려져 있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는 신창극시리즈와 같이 하나의 틀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의 시는 일상적인 사물을,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과 죽음, 현실을 담아내기도 한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 무대 속 주인공들 

[▲공연의 마지막 장면, 무대 속 주인공들 ⓒ국립극장]


파티가 끝난 장소. 네 사람이 머물러 있다. 잠들어 있다.

네 사람이 각기 다른 속도로 깨어나고 다시 잠든다.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다.

어느 한쪽이 꿈이고 어느 한쪽이 꿈이 아닌지 알 수 없다.

누군가에게 작별을 고하지만, 이내 사랑을 주고 싶은 대상과 장소를 찾는다.

네 사람 각자가 찾아낸 것은 인간의 소유와 집착을 가져온다.

집착은 전쟁을 초래한다. 전쟁은 상실과 슬픔을 만든다.

하지만 네 사람은 슬픔의 깊숙한 곳에서 다시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노래한다.

네 사람은 서로를 위로한다. 평화로운 일상이 된 것 같다. 깨어나고 다시 잠드는 것처럼 태어나고 죽는 것은 반복된다.

- <창극 <시(詩)>의 줄거리, 프로그램북 중에서 -


이런 다면적인 네루다의 시 중에서도 박지혜 연출가는 ‘생의 순간을 담고 있는 시들’을 선택해 창극으로 엮었다. 탄생에서 소멸까지, 삶이 피고 지는 과정을 담아낸 창극 <시(詩)>는 우리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두드린다.


#2. ‘판소리’를 더욱 선명하게


창극 <시(詩)>에서 만큼은 창극 중 ‘판소리’가 중심이 된다. 창극에서 ‘판소리’가 중심이 된다니,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창극에서 배우들은 하나의 기승전결 구조를 갖춘 서사를 이끌어 나가야 하기에 ‘소리하는 배우’로서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판소리’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수단으로서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박지혜 연출가 

[▲박지혜 연출가 ⓒ국립극장]


이에 아쉬움을 느낀 박지혜 연출가는 창극 배우가 무대 위에서 소리꾼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있고, 관객들이 창극에서 음악으로서 판소리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사와 연극적인 표현들을 최대한 벗겨내고 배우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을 구상한 끝에, ‘시’ 자체가 창극이 되는 공연을 국립창극단에 제안했다고 한다.



빨간 조명 아래 장단을 치며 소리하는 유태평양 배우 

[▲빨간 조명 아래 장단을 치며 소리하는 유태평양 배우 ⓒ국립극장]


창극 <시(詩)>의 배우들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특별한 대사와 몸짓을 그려내지 않는다. 오로지 창과 아니리*로 이루어진 무대 속에서 조용하게, 그러나 섬세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아니리: 판소리 사설에서 음률이나 장단에 의하지 않고 일상적 어조의 말로 하는 부분. (한국민속문학사전)


#3. ‘빈 공간’으로 채워진 무대


“식사, 디너 재킷, 드레스 코트, 모닝코트, 관복, 댄스, 칵테일 파티는 언제나 지옥이라네. 집이 도피처지만, 약탈자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어, 우리는 포위공격을 박차고 나가 보온병과 코냑과 책을 들고 산이나 해안으로 달아나지, 모래 위에 누워 검은 섬 수마트라와 수중 화산 크라카토아를 바라본다네, 우린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네.”

- 파블로 네루다, 애덤 펜스타인의 ‘파블로 네루다’ 中 -



창극 <시(詩) /> 무대 디자인 

[▲창극 <시(詩)> 무대 디자인 ⓒ여신동]


창극 <시(詩)>의 원형 무대는 새하얀 벽, 하얀 탁자, 하얀 소파 등으로 대부분 채워지며, 전체적으로 ‘텅 빈’ 공간이란 인상을 남긴다. 술병이 즐비한 탁자와 시간이 극이 진행될수록 엉망이 되는 무대는 파블로 네루다가 묘사한 ‘파티가 끝난 파티장’의 공허함을 더욱 닮아간다.


이러한 공간에 남은 건 소리꾼의 울림과 빨강, 파랑, 보라빛 원색의 조명들, 그리고 새하얀 벽에 새겨지는 네 명의 그림자다.



풍선을 건네받는 장서윤 배우(좌)와 양종욱 배우(우) 

[▲풍선을 건네받는 장서윤 배우(좌)와 양종욱 배우(우) ⓒ국립극장]


이미 수많은 이야기들이 스쳐 간, 열렬한 파티가 끝난 이후의 파티장은 각종 소품으로 널브러진 무대와 그림자로 ‘이야기’들이 남긴 ‘잔상’을 표현해 탄생-사랑-전쟁-이별-소멸로 흘러가는 생의 모습들을 포착하며, 작품의 주제를 더욱 선명히 하고 있다.


창극 <시(詩)>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먹고 마시고 잠들고 다시 깨어남의 반복. 소란 후의 끝없는 정적. 그러나 배우들의 소리에 최대한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무대와 연출로, 어느새 우리들의 신경은 온통 배우들의 소리를 타고 흐르는 시의 조각들을 맞추고 있다. 



국립극장의 하늘극장 

[▲국립극장의 하늘극장 ⓒ국립극장]


국립창극단은 1962년 창단 이래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음악극 창극(唱劇)을 선보이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공기관 국립극단 전속 예술단체다. 특히나 기존 ‘창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오늘날의 다양한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국립창극단의 ‘일신우일신(一新又一新)’의 태도를 가장 만끽할 수 있는 공연이야말로 신(新)창극시리즈가 아닐까?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치는 오늘 국립창극단의 시(詩)를 찾아가보자.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13기 김혜원 기자 alpaca02@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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