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단
- 게시일
- 2011.10.27.
- 조회수
- 7452
-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02-3704-9044)
- 담당자
- 이유진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를 기억하시나요? 이 영화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조선왕조실록’을 전통 한지로 복원하는 과정을 담았는데요.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의 우수성과 함께 제작 과정에 들어가는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는 영화랍니다. 많은 관객 분들이 "한지 제작에 저렇게 많은 손길과 재료가 필요한 줄 처음 알았고 신기하다"라고 많이들 말씀을 하셨는데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우리에게도 직접 '달빛'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 임권택 감독의 전통한지를 다룬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한지장 이수자에게 직접 배우는 한지 만들기 체험
선릉역에 위치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마련된 이 행사는 우리 전통문화에 관한 상설전시관람과 함께 전통한지를 직접 제작해보는 체험, 장인과의 공개대화로 이루어졌습니다. 한지체험강사로는 경기도 지정문화재 한지장 이수자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 117호 한지장 장용훈 보유자의 맏아들인 장성우 선생님이 자리해주셨답니다.
"일반 종이가 그냥 커피였다면, 전통한지는 T.O.P야"
한지를 만들어보기 전에 장성우 선생님께서는 전통한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는데요. '닥종이'로 불리는 전통한지는 보존성과 기능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셨습니다. 뛰어난 보존성과 질기고 높은 백색도, 친환경성이라는 점에서 어느 종이와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또한 전통한지는 투박해 보이지만 만지면 부드럽고 탄력이 좋으며, 가벼우며 빛깔이 곱다는 점도 알려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개량한지와의 차이점이 뭔가요?"라는 참가자의 질문이 나왔는데요. 선생님의 답변을 비교하기 쉽게 표로 정리해서 알려드릴게요.
이 표를 다 보고나면 '황촉규'가 뭐지?'라는 생각이 드실 텐데요. 쉽게 '들풀 뿌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황촉규는 엉킨 섬유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역할을 한답니다. 또한 닥나무 재료가 가라앉는 것을 막아준다고 하네요. 이 외에도 한지는 두 장을 겹쳐서 만드는데 이 황촉규 뿌리에서 나오는 점액이 두 장을 서로 붙여주면서 다른 종이와는 달라붙지 않게 해준답니다. 참, 신기하죠? 개량한지와는 달리 전통한지는 제작과정에서 인위적인 화학약품과 기계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뛰어난 지질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자, 그럼 전통한지를 만들러 고고싱!
까다로운 제작과정을 거친 고급종이, 전통한지
한지는 가볍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광택을 가진 아름다운 종이입니다. 반면 그 제작과정은 한지의 외형만을 보고는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까다롭다고 합니다. 우선 한지의 주재료인 닥나무를 채취하여 껍질을 벗깁니다. 그리고 껍질을 벗긴 속대를 삶아 부드럽게 해주는데요. 이 과정에서 그냥 끓는 물에 삶으면 절대 익지 않기 때문에 끓는점을 높여주는 잿물에 삶아줘야 합니다. 또한 과거에 어머니들이 설거지나 빨래를 할 때 자주 쓰던 잿물은 천연 표백제의 역할도 한답니다.
또 한명의 참가자가 "잿물과 양잿물의 차이점은 뭔가요?"라고 질문을 합니다. 양잿물은 이름 그대로 '서양의 잿물'을 뜻하는데요. 양잿물은 타고 남은 재를 섞은 물이 아니라 화학약품인 수산화나트륨을 섞은 물로 한지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종이를 약하게 만든다고 선생님이 명쾌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 가볍고 고운 빛깔의 한지, 제작과정은 거칠고 힘들답니다!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잿물에 삶은 후 물에 속대를 씻어주고 잡티를 고릅니다. 이것은 나무껍질로 제작하기 때문에 매끄러운 표면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 다음엔 정돈된 껍질을 두들긴 후 물에 풀어 섞어줍니다. 잘 풀어서 섬유의 최소단위로 만들어야 좋은 종이가 나온다는 사실! 물에 섞인 황촉규가 종이를 매끄럽고 엉키게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이후의 과정은 참가자 모두가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남과 다른 나만의 한지 만들어보자!
드디어 체험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이 미리 닥나무를 풀어놓은 물에서 참가자들이 차례대로 한지를 뜨기 시작했는데요. 먼저 판을 앞뒤로 움직여 한지를 뜨고 이어서 좌우로 움직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앞뒤로 뜨는 건 종이의 뼈대를 만들어주는 것이고 옆으로 뜨는 건 살을 올려 두께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셨어요.
김밥 발처럼 생긴 나무 발위에 닥나무 섬유가 적당히 엉키게 되면 들어 올려 흡착판위에 올립니다. 이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해 흡착판 위에 두 장의 한지를 얹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한지는 두 장을 겹쳐서 만드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죠. 한지를 뜰 때 앞, 뒤 두께가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에 두 장을 반대로 겹쳐 일정한 두께를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흡착기를 가동시켜 두 장의 한지의 수분을 모두 빨아들입니다. 이 날은 빠른 진행을 위해 특별히 기계를 사용한 것이고요. 전통방식은 흡착기로 탈수하는 게 아니라 한지를 200장 정도를 쌓아서 위에서 압력을 주어 탈수를 한다고 해요.
한지를 만드는 과정이 여기서 끝? 노우! 한지는 마르기 전에 오래 두들기고 치댈수록 섬유의 조직이 바뀌어 질기고 단단한 천처럼 된다고 해요. "가죽처럼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참가자들의 손이 쉴 틈 없이 움직였습니다.
천처럼 두꺼운 한지를 만든 후에 얇은 한지를 떠보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얇게 한지를 뜬 후 손으로 치대지 않고 바로 열판에 발라 열건조 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양손에 두 종류의 한지를 들고 굉장히 뿌듯해했답니다.
I n t e r v i e w
“한지에는 선조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있답니다.”
한지체험강사 장성우 선생님
4대째 가업을 이어오셨는데 사명감이 대단하실 것 같아요.
아마 모든 자제들이 사명감으로 처음 일을 시작하진 않을 거예요.(웃음) 연로하신 부모님이 고된 일을 하시는 게 안타까워서 도와드리다가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 제가 ‘이 일이 내일이다’라고 느낀 건 10년 정도밖에 안됐어요. 사람은 항상 편안함을 추구하잖아요. 저 역시도 편안함을 추구할 수 있지만 ‘내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종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한지에 몸과 마음을 바치며 살고 있습니다.
제작자로서 어느 경우에 한지의 우수함을 가장 느끼시는지요?
저는 한지를 직접 뜨기 때문에 우수성을 익히 잘 알고 느끼지만, 가장 객관적인 증거는 유물인 것 같아요. 100~150년 전에 만들어진 우리의 책은 지금도 펴볼 수 있을 정도로 보존이 훌륭하지만 양지의 경우는 20-30년만 되어도 찢어지고 보기가 힘들어요. 한지가 다른 종이에 비해 월등하게 뛰어난 이유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섬유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은 닥나무로 종이만 만들지만 과거에는 농가에서 밧줄대용으로도 썼어요. 그만큼 질기다는 거죠. 대표적인 유물로써 보통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백지묵서’가 남아있는데요. 종이가 험난한 세월을 견딜 수 있던 것은 우수한 재료 덕분이라 생각해요. 그것을 이용해 만들었던 선조들도 굉장히 지혜로웠고요. 하나 더, 조선왕조실록도 있어요. 프랑스 수장고에 방치되어 악조건 하에 오랜 시간 있었지만 굉장히 잘 버텼죠.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을 보면 한지의 모든 구성 요소를 갖추기가 까다로운 것 같아요. 재료뿐만 아니라 장인의 마음가짐까지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될 것 같던데요.
저도 그 영화에 일부 참여했었어요. 임권택 감독님과 만나서 이야기도 했고요. 영화를 보면 제작 과정을 속여서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요. 사실 그렇게 하기가 쉬워요. 기본적인 제작 프로세스는 동일하기 때문에 크게 눈에 띄지 않고 단가를 낮출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가 많은 격동기를 겪을 때 한지산업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급변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재료가 들어오게 되죠. 양잿물의 경우에는 미군이 들여왔는데요, 표백이 훌륭하고 단가가 낮다는 이유로 이 물로 한지를 약 30-40년간 만들게 되었요. 이 시간이 한 세대잖아요. 한지산업의 한 세대가 중간에 끊겼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지금 전통한지를 재현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영화를 보면 최종적으로 물을 찾아가지 않습니까? 종이는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끝난다고 볼 수 있어요. 한지 100장 만드는데 물이 3톤이 넘게 들어가요. 물의 중요성은 영화에서도 강조를 했고 실제로도 중요해요. 한 가지 바라는 점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한지장인들 중에 돈만 쫓아가는 사람이 많구나’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별로 그런 분도 많지 않으시고요. (웃음)
이제까지 쉬울 줄 알았던 한지 뜨기가 직접 해보니까 생각 외로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란 걸 알았어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전통기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좋은 기회였는데요. 전수자 분도 이 활동을 다니면서 좋은 점을 느끼시나요?
저도 물론 좋은 점을 느끼고 이 활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한지를 만드는 곳이 대부분 지방에 위치한 것도 있고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잖아요. 우리 고유의 문화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우리가 머리로 기억하는 것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몸으로 기억하는 것은 절대 잊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런 체험이 굉장히 필요한 거예요. 단지 시연만 보여주는 행사는 ‘이건 이렇게 하는 건데 너희는 하지 마라’는 느낌이에요.(웃음)
한지장 이수자가 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내셨을 것 같아요. 힘들었던 점이나 바라는 점은 없으세요?
저는 보유자분들에 비해 젊은 세대잖아요. 연세 많으신 보유자분들을 우대하는 건 당연하지만 전통기술이나 예능을 너무 노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분들과 다르게 젊은 사람들에 대한 대우도 필요하거든요. 두 세대를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하게 만드느냐가 정책을 담당하는 분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어르신들은 부족한 환경에서 어렵게 배우셨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생활방식 자체가 달라져서 힘든 과정을 반기지 않아요. 기본적인 것은 충실히 배우게 하되 부가적인 교육 과정은 조금 부드러워도 좋을 것 같아요. 환경적인 것을 만들어 줘야 젊은 사람들도 접근하기 쉬우니까요. 이게 전통을 이어가는 방법이 아닐까 해요.
‘이기적으로 우리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삶이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 자연이야 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말씀하시는 장성우 선생님을 보며 ‘우리가 조금만 수고로움을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하고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전통을 후세에 그대로 전해주려 노력하는 선생님의 소박한 모습에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져 옵니다. 한지 체험을 통해 우리 고유문화의 우수성을 다시금 깨닫고 돌아갔답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선 한지 체험 외에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수시로 진행 중이니 지금 바로 [즐겨찾기] 추가하시고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에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