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의 예술 뒤집어 보기 ‘성냥팔이 소녀는 왜 죽었지?’
게시일
2011.03.21.
조회수
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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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이유진

이어령 교수

지난 3월 14일,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 교수가 대학로를 찾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하는 ‘우리 시대 예술가의 명강의’의 첫 번째 강연자로 등장한 이어령 교수는 ‘성냥팔이 소녀는 왜 죽었지?’란 흥미진진한 질문을 던졌다. 단순히 생각하면 ‘얼어 죽었다’는 답이 나오는 이 질문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뒤집어 보기’를 통해 진짜 숨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령 교수가 말하는 ‘뒤집어 보기’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일까?


뒤집어봐야만 구조가 보인다


이어령 교수는 “모든 예술 작품을 있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겉에 드러난 그대로 본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맘에 드는 양말이나, 스웨터를 보고 그냥 착용하는 것과 그것을 뒤집어서 살펴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 뒤집어서 봤을 때 비로소 그 양말, 스웨터가 어떻게 짜여져 있는지 ‘구조’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구조는 겉으로 들어난 모든 의미의 본질이 되는 것으로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어령 교수는 “문학도 마찬가지로 구조는 안에 숨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뒤집어 봐야만 진짜 숨은 의미를 알 수 있는 것” 이라며 뒤집어 보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이어령 교수는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를 뒤집어 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시를 어떻게 뒤집는다는 것일까?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강의에 집중하는 모두에게 이어령 교수는 “이 시를 뒤집어 봄으로써 그 전에는 몰랐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운을 띄웠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먼저 엄마와 누나를 뒤집기 시작한 이어령 교수는 “왜 아이는 아빠와 형이 아닌 엄마와 누나를 부른 것일까요? 여기서 ‘젠더 공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젠더공간은 사회 ? 문화적으로 구분되는 성으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선이 그어진 공간을 뜻한다. “남성 공간은 언제나 투쟁하고 노동하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여성 공간에서는 생명을 가지고 키울 수 있습니다. 오직 여성 공간에서만 가능한 생명에 대한 따뜻함을 아이는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라며 ‘엄마야 누나야’ 속에 숨어있는 젠더 공간의 의미를 찾아냈다. “그런데 부른다는 것은 현재 없기 때문에 부를 수 있는 것이죠. 여성 공간이 현재 아이에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부르고 있다는 점을 통해 현재 아이는 여성 공간이 부재하고 있고 그 공간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뒤집어 보기를 통해 ‘엄마야 누나야’ 라는 짧은 글자 속에 숨어있는 많은 의미를 찾아낸 것이다.

 

사인을 해주고 있는 이어령 교수


이러한 뒤집어 보기를 통해 ‘강변 살자’도 숨어있는 많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이가 강변에 살자고 하는 것을 통해 ‘현재 아이는 강변에 살고 있지 않다. 강변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강변은 시인의 기억 속에 있는 강변이다. 시인이 강변에 살고 싶은 마음을 아이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 ‘살자’라고 하면서 앞에서 말한 엄마와 누나의 여성 공간, 생명 공간 그리고 강변이라는 그리움의 공간 등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라는 짧은 문장 속에서 많은 의미를 찾아낸 이어령 교수는 “뒤집어 보기를 통해서 참고서에 나오는 내용,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알려주는 내용 말고도 스스로 수많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구절도 계속 뒤집어 보면서 앞과 뒤의 공간, 시각과 청각, 노란색과 초록색 마지막으로 배산임수까지 그 숨은 의미를 찾아냈다. 그러면서 “이 짧은 시 속에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상상력이고 예술입니다”라고 말했다.


“시 속에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상상력이고 예술입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이어령 교수의 뒤집어 읽기는 계속됐다. 이번엔 ‘엄마야 누나야’에 이은 ‘진달래 꽃’.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달래 꽃을 이별가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는 이별가도 사랑가도 아닙니다. 지금 사랑의 기쁨을 이별의 슬픔으로 나타냈다고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라고 하며 문학 속의 아이러니, 패러독스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를 보면 ‘가실 때에는’ 하고 조건을 걸어 놓는다. 현재는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신 때에는’과 ‘가실 때에는’은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아직 떠난 게 아닌 겁니다. 현재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릴 상태가 아니고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이렇게 문학 속에 존재하는 상상과 현실의 갭이 바로 아이러니고 패러독스인 것입니다.”라며 문학에서 아이러니, 패러독스가 주는 긴장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떠나는 상황을 상상하며 현재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꽃이라도 꽃밭에 핀 꽃을 말하는 것보다 공장지대에 핀 꽃을 말할 때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는 왜 죽었지?


이제 우리도 ‘성냥팔이 소녀는 왜 죽었지? 란 질문에 대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왜 집이 있는데 돌아가지 않고 성냥으로 몸을 녹이고 있었을까? 얼어 죽으면서도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까? 와 같은 뒤집어 보기를 통해서 그 이유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성냥팔이 소녀는 ’엄마야 누나야‘에서처럼 엄마, 할머니로 나타나는 여성 공간을 상상하고 꿈꾼다. 현재 성냥팔이 소녀가 여성 공간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상상하고 꿈꾸는 것이다. ’성냥을 못 팔고 돌아가면 때린다.‘는 내용을 통해 소녀는 현재 아버지의 공간인 남성 공간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투쟁, 노동의 거친 남성 공간에서 생명을 만들고 키우는 따뜻한 여성 공간(아이러니, 패러독스)을 상상하고 꿈꾸다보니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로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House는 있어도 Home이 없었기 때문에 소녀는 돌아가지 못하고 성냥으로 몸을 녹이다가 미소를 지으면서 죽은 것이다.


삶도 뒤집어 보아라


이어령 교수는 “오늘 예술을 뒤집어 봄으로써 구조를 분석해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도 예술처럼 뒤집어 봄으로써 그 속에 숨어있는 진정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라고 하며 강연을 마쳤다. 삶도 뒤집어 보기를 통해 진정한 의미를 찾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Q & A

이어령 교수 Q&A

 

1시간 반 동안 단 한번도 자리에 앉지 않고 열정적인 강연을 한 이어령 교수는 질의응답시간이 돼서야 자리에 앉았다. 이어령 교수는 ‘교수님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라는 질문에 “한국 언어가 내 사상의 원천입니다. 언어를 수단이 아닌 연구 대상으로 생각했을 때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라고 답해주었다. “스스로 생각한다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며 스스로 생각해볼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새의 날개를 보고 비를 막아주는 덮게, 알을 품는 품게까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Q & A 시간까지 끝나고 추첨을 통해 이어령 교수의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책을 나눠주는 행사도 진행되었다. 이어령 교수가 직접 뽑은 10개의 번호표에 해당되는 사람에게 친필이 담긴 책을 선물하였다. 2시간에 걸친 강연을 마치고 나오면서도 이어령 교수는 질문 하나하나에 답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사인도 해주었다. 이번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앞으로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뒤집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왜 죽었지?’에 대해서 또 다른 답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남경동 대학생기자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dong24t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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