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공연
명료한 서술을 지우니 또 다른 지도가 드러났다 Part 2
- 분야
- 전시
- 기간
- 2024.12.05.~2025.01.25.
- 시간
- 화~일 10:30 - 18:30
- 장소
- 서울 | 갤러리 조선
- 요금
- 무료
- 문의
- 02-723-7133
- 바로가기
- https://www.gallerychosun.com/
전시소개
전시는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영토 사이에서 지도 그리기를 시도한다. 프랑스의 비영리 단체 Le Wonder와 협력한 이번 전시는 2024년 상반기에 이어 진행하는 두 번째 교류다. 총 3회로 구성된 교류전에서 첫 번째 전시는 ‘일상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개별 작가들의 서로 다른 ‘명료한’ 세계관을 지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편 두 번째 교류전은 ‘가상성’을 주제로 개별 작가들이 공동의 지도를 그려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먼저 영토와 지도의 관계를 짚어보자. 영토는 한 국가의 통제권이 미치는 땅의 영역이다. 다시 말해 영토가 힘의 구역을 나누는 경계를 나타낸다면, 지도는 그 힘의 영역을 표상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지도를 그리는가? 현실을 재현한 풍경 사진이나 그림과 달리, 지도는 서로 합의된 언어로 기호화 되며 표기된 위치 사이에 놓인 미확인 된 장소를 짚어낸다. 지도는 세계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환원시키는 지배적 욕망이 서려 있는 이미지인 한편, 그 사이 틈으로부터 알 수 없는 장소에 관한 낭만적 상상력을 추동하는 것이다. 전시는 각기 다른 지형 위에 놓인 10인의 작가들이 하나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시화 한다. 이때 지도는 명료하게 구획되는 이미지를 구현하지 않는다. 외려 애초에 구분된 땅과 땅을 펼쳐놓고 그 사이 미세하게 균열난 공간을 발굴하며, 빈틈을 찾기 위한 새로운 경로를 그려낸다. 말하자면 전시는 통합할 수 없는 각자의 영토 위에서 우리가 공동으로 딛을 수 있는 땅이 어디인지 확인하려는 시도이며, 지금의 세계로부터 또 다른 지형을 상상하기 위한 모험이 된다.
Le Wonder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중심으로 설립된 예술가 단체로서 작가가 직접 공간을 자생적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다. 이 작가 컬렉티브는 파리 교외의 한 폐공장 건물을 주요 거점 삼아 다양한 실험을 개진한다. 다만, 일반적인 대안공간 운영 시스템과는 달리 개별 작가들은 각자 흩어진 상태로 활동하면서 조직된다. 약 60여 명이 활동하는 느슨한 공동체는 점차 그 규모를 확장해 현재는 전문 행정가를 대표로 두는 등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진 일종의 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갤러리조선은 대안공간도, 단순한 작가 컬렉티브도 아닌 이들을 한국으로 초대하고 또 프랑스로 건너가길 준비하는가?
갤러리조선은 상업갤러리로서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을 소개해온 한편, 대형 화랑들 사이에서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들을 다루며 예술의 상품성과 갤러리의 기능에 관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해왔다. 바꿔 말해 갤러리라는 공간의 정체성을 실험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해온 것이다. 이번 협력전은 위와 같은 공간의 성격으로부터 Le Wonder라는 단일 이름으로 규명할 수 없는 플랫폼과 접촉하기를 시도한다. 특히 작품의 유통 주체로서 갤러리의 역할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하나의 커뮤니티로 확장해보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상품화를 지향하지 않으면서 자생적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형, 말하자면 지금에 없는 지도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이들은 흩어진 채로 뭉쳐 있는 몸집을 드러내고, 한 국가의 영토를 너머 새로운 지정학적 위치로부터 정치적인 실천들을 도모한다.
참여 작가는 한국작가 요한한, 정정주, 최수련 3인을 포함하여 중국과 노르웨이의 엑셀러(Axl Le), 프랑스의 마샤-마리아 르 바(Martha-Maria Le Bars), 살림 산타 루치아(Salim Santa Lucia), 안토닌 하코(Antonin Hako), 엘리아스 가마(Elias Gama), 프랑소와 뒤페(Francois Dufeil), 피에르 게너(Pierre Gaignard)까지 총 10인의 작가다. 이들은 서두에 밝힌 것처럼 ‘가상성’을 중심 주제로 한데 모였다. 지도가 힘의 구역을 경계 짓는 이미지인 동시에 가보지 못한 세계를 잠재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매개물이라고 할 때, 9인의 작가는 지도가 갖는 ‘가상성’에 집중해본다. ‘가상’(virtual)이라는 단어는 중세 라틴어 ‘virtualos’에서 유래했다. 중세 철학에 있어 가상(virtus)은 ‘힘 혹은 힘 안에 있는 것’이란 의미를 가리키며, 이는 특정 현상이 실행 상태가 아니라 잠재된 힘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하진 않지만 현실에 위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전시의 작가들은 특정한 영역을 구분짓는 안전한 경계 안에서 생산과 효율의 이름으로 조건지어진 보편과 규범성을 관찰한다. 그리고 비록 선명하지 않지만 현실에 분명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총 10인의 작가들은 서울과 프랑스의 경계를 오가며 서로 다른 힘의 지형을 그려내며, 미지의 장소를 발굴하기 위한 상상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