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순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

말순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

저/역자
최정원 글, 유별남 그림
출판사
베프북스
출판일
2015.08.31.
총페이지
304쪽
추천자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출판부장)

도서안내

부엌에서 어머니 수돗물이 되어 흐른다/ 설거지를 하는지 거품 처럼 톡톡 켜졌다가 터지는 울음소리를 튼다/ 한평생 궂은 일로 맥 빠진 눈두덩에 몇 방울의 미지근한 물밑 온도를 맞춘다/ 어머 니의 손은 늘 젖어 있었다/ 며느리라도 얻을까 하여 늙은 아들 잔주름에 기름진 밭 갈던 눈동자 속/ 오늘따라 수돗물 소리 괄괄 흐르고 / 아들은 아들대로 골방에 들어앉아 고장 난 보일러 소리를 낸다 - 이동호의 <어머니와 아들> 중에서 이 책을 잡는 순간 딱 이 시가 떠올랐다. 이동호의 시를 최정원이 산문으로 각색한 느낌이랄까. 70대 어머니와 40대 아들이 사는 집의 풍경이다. 서울의 네 집 가운데 하나가 1인 가구라는데, 그래도 2인 가구이니 사람 사는 소리가 조금은 북적이려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3년, 모자는 이제 부부처럼 티격태격하면서도 살뜰히 서로를 챙긴다. ‘담배 피우지 마라’하면 ‘짠 젓갈 더 이상 먹지 마’하고, ‘술 좀 작작’하면 ‘콜라 좀 제발’로 대거리한다. 출근하는 아들을 배웅하고, 어머니를 위해 꽃을 산다. 이처럼 이 책은 어머니를 보듬는 아들과 그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아름다운 동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읽는 내내 가슴에 이슬이 내린다.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이 재미도 있지만 그 재미는 아픔을 딛고 일어선 페이소스를 담고 있다. ‘아내도, 아이도, 싸가지도, 그 흔한 머리카락도 갖지 못한’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풍성한 밥상과 술상을 차린다. 툭하면 고장 난 보일러처럼 퉁퉁거리는 아들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견디어 내고, 사십대는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커튼 가게를 운영했던 어머니 말순 씨는 똑똑하다. ‘왈순 아지매’처럼 억척스럽다. 춥고 비좁은 빌라를 팔고, 그 길로 아파트를 샀다며 아들 앞에 등기권리증을 흔드는 말순 씨, 이유는 ‘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란다. 몇 번의 사표를 쓰고 프리랜서 글 노동자가 된 아들은 비로소 책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서재다운 서재를 갖추고, 가장이 된 어머니는 규모에 맞추어 식단을 짜고 공과금 날짜를 맞춘다. 어떤가, 이 그림의 구도는? 이 땅의 말순 씨들이 아들들의 등대가 되어 주고 있지만, 그 말순 씨들이 언제까지? 아들들이 좀 더 든든한 동력을 갖춘 배에 올라타야 하지 않을까?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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