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인간

당분간 인간

저/역자
서유미
출판사
창비
출판일
2012.10.05
총페이지
244쪽
추천자
김미현(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교수)

도서안내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이미 사치다. 생각은 먹고 자는 일이 충족되고 난 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먹고 자는 일은 최소한 자본주의하에서는 수입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현대 사회에 사는 인간이라면 노동을 해야 수입이 있다. 서유미의 소설집 <당분간 인간>에 실린 총 8편의 단편소설들은 노동을 하고 싶지만 노동을 하지 못하거나 노동을 해도 수입이 보장되지 못하는 인간들의 비인간적 생태에 대한 보고서다. 그래서 그들은 ‘당분간’은 인간일 수 있지만 조만간 인간으로 살아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의 증명서이기도 하다. 사람 같지 않아야 사람으로 취급되는 아이러니에 대한 자조로 가득 차 있는 불온서인 것도 자명하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힘드니까 성인이라는 ‘힐링’의 말은, 이 작가에게는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킬링’ 중심의 인간학이 이 소설집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부당한 노동과 억압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젤리처럼 허물어지거나, 딱딱하게 굳어져서 부스러지는 인간들, 인간이 아닌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인간들, 인간성을 상실해야 겨우 존재할 수 있는 인간들을 작가는 변화구가 아닌 직구로 묘사한다.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고 인생에 여유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뼈아픈 전언은 자신이건 타인이건 차별이 없다. 인간에게 공평한 것은 고통뿐이다. 작가는 생활이 아닌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인간들을 문제 삼는 데에 있어서도 가차 없다. 때문에 이 소설집을 읽기 위해 윤리나 도덕의 잣대를 강요하거나, 가녀린 희망의 끈을 부여잡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학이란 위로가 아니라 반성을 촉구하는 불편한 예술장르임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힐링’이 아니라 ‘킬링을 중시하는 젊은 작가의 역설적 패기와 호기가 오히려 반갑게 느껴진다.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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