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단
- 게시일
- 2010.07.30.
- 조회수
- 7566
-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02-3704-9544)
- 담당자
- 이유진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어떻게든 더 많이 팔려는 이와 어떻게든 잘 사려는 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광고는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수단이다. TV방송, 신문, 잡지와 같은 기본적인 미디어뿐만 아니라 핸드폰 등 우리의 일상 깊숙이까지 파고들어왔다. 그 자체로도 놀라운 제품, 단번에 시선을 잡아끄는 비주얼, 오감을 사로잡는 효과음까지 광고를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건 무엇보다 카피일 것이다. 단 15초 만에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사명으로 매일을 광고의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카피라이터. 예술을 일상 속으로 초대한 카피라이터 윤준호를 만나고 돌아 왔다.
profile
윤 준 호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교수, 카피라이터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오리콤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독립,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한국방송광고대상과 중앙광고대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서울시립대, 동국대, KOBACO 광고교육원 등에 출강했으며 2003년부터 서울 예대에 재직 중. 시인 ‘윤제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광고가 야구라면 카피라이터는 투수입니다."
처음 ‘카피라이터’란 직업을 꿈꾸게 된 건 언제인가?
맨 처음 ‘오리콤’이란 광고회사에 들어간 게 1983년이다. 내가 77학번인데 그 때 당시만 하더라도 광고 산업이 아주 미미했다. 우리나라에 광고 회사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지금처럼 “난 광고 회사에 갈 거야.”, “난 카피라이터가 될 거야.”라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나처럼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공부나 하던 사람이 뭘 알았겠나. 처음엔 ‘광고, 그게 뭐 하는 건데?’란 생각이 있었으니까.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선배의 호출이 있었다. 너처럼 글공부하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그게 내가 카피라이터로 일하게 된 계기였다. 특별히 어렸을 때부터 광고에 대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렇다면 ‘오리콤’이란 회사에 들어간 것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물론이다. ‘오리콤’이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광고 회사에 들어가서 광고를 접했고, 또 배웠다. 종종 사람들에게 “내 최종 학력은 ‘오리콤’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나에게 이 회사의 의미는 특별하다. 10년 간 ‘오리콤’을 다니면서 광고인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는데?
10년 간 회사를 다니고 프리랜서로 10년 간 활동했다. 현재는 대학 교수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카피라이터로서의 활동을 중단한 건 전혀 아니다. 내가 교수로 재직 중인 학교는 실무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 당연히 나 자신부터 카피라이터를 공부하고 실제로 직접 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현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여야 살아 움직이는 정보를 학생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다른 서울 강남풍경과는 달리 한 대학교 사거리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꽤나 평화로웠다. 종종 유리창 앞에 앉아 밖을 구경하기도 한다고, 작업실 내부는 여러가지 책으로 빽빽히 둘러싸여 있었다. ⓒ 차승학
“나의 생각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게 카피라이터의 매력이다.”
어찌 보면 우연한 계기로 광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럼 지금까지 오랫동안 카페라이터를 하게 한 원동력, 즉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광고의 보람은 바로 세상을 놀라게 해 주는 것이다. 내가 쓴 카페 하나에 수많은 사람이 백화점으로 지갑을 들고 달려가고, 내 아이디어에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즐거워할 때 느끼는 성취감이 주는 중독성이랄까? 나의 머리 속에서 끄집어낸 생각을 가지고 세상의 한 부분을 변화시키거나 바꾸어 가는 것. 그게 바로 카피라이터의 매력이다.
그런 광고의 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카피라이터 윤준호만의 카피철학 있다면 무엇일까?
소비자들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가족에게 팔듯이 하는 것, ‘소비자는 우리 가족이다.’란 생각이 필수적이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아저씨 아줌마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광고하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은 자기는 소비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자기본인도 바로 소비자 이다.
카피라이터로서 특별히 갖춰야할 자질이 있다면?
타인의 생각을 잘 훔쳐오는 것, 그게 필요하다. 한 사람의 생각과 주관은 너무 ‘리스크’가 많다. 많은 사람을 움직이려면 그만큼 보편타당한 생각이어야 하는데, 자기 혼자만의 판단과 지식과 정보에서 태어나진 않는다. 다양한 의미와 가치의 해석을 경험해야 한다. 영화를 보는 것, 책을 읽는 것, 이런 것들이 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치는 것이다.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해선 나 또한 감동 받아야 한다. 수많은 감동의 경험을 체험해야만 비로소 진짜 울고 웃어야 할 때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 가지고 예술 하지 말자.”
그렇다면 언제 가장 감동받는 편인가?
여행을 좋아한다. 대학시절부터 공부는 뒷전이었고 차비만 있으면 여행을 다녔다.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어디를 가든 대학생이면 밥 먹고 가라던 인심이 있었다. 그야말로 무전여행이 가능한 시절이었지. 난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남들 다 하는데 안 하면 불안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취업난의 부담이 점점 커지는 탓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때 일수록 특별한 것을 해야 한다. 똑같은 사람이 널려 있는데 스스로를 차별화시키지 않고 취직시켜달라고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정말 눈에 불이 켜 질만큼 탐나는 물건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꿔서 산다. 왜냐면 저런 물건을 다시는 못 살 것 같으니까. 사람을 뽑는 기업체도 마찬가지이다. 모집계획이 없다 가다도 이 사람을 꼭 뽑아야겠다 싶으면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뽑는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생도 틈새시장이 있다. 세상이 꽉 차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생각보다 빈틈투성이이다. 광고보다 더 멋진 것들도 많다. 나는 광고계에 인력을 공급하는 선생이 되고 싶지만은 않다. 그것보다는 광고라는 것이 인생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좋은 공부니까 여기서 많은 것을 깨닫고 더 좋은 일을 찾는데 도움이 되고 싶은 거다.
그만큼 광고라는 것이 미치는 영향력은 정말 큰 것 같다. 감탄사를 외칠 정도로 기억에 남는 광고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봤던 외국 광고 중에 하이네켄 CF가 있었다. 카피 하나 없이 컵에 맥주를 따르는 단순한 비주얼뿐임에도 불구하고 맥주가 마시고 싶더라. 결국 광고는 누군가를 움직이고, 지갑을 열게 해야만 진짜 ‘크리에이티브’인 것이다. 단순히 예술이라는 말로만 끝나면 곤란하다. ‘와, 저 광고 멋있다!’가 아니라 ‘와, 저 맥주 먹고 싶다!’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광고는 예술이 아니다. 광고는 예술이란 도구를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과학이다. 목표가 분명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목표가 분명치 않고 움직이는 힘이 없다면 예술적 도구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예술을 하지 왜 광고를 하는가? 한 기업의 사활이 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걸린 돈을 가지고 취미 활동을 하면 안 된다. 깐느에서 상 받으면 뭐 하는가 그 회사 물건 안 팔린다면, 그것은 큰 범죄다. 광고 가지고 예술 하면 안 된다. 그런 기능적인 역할을 하면서 예술을 하면 위대한 광고가 되지만 본연의 역할을 무시해버리는 건 곤란하다.
역시나 만만치 않은 작업일 것 같다. 그렇다면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뭐든지 일로 생각하는 순간 힘들어진다. 특히 광고처럼 창작을 하는 일은 즐기지 못하면 스스로 질리고 힘들어서 못 견딘다. 그냥 삶 자체로 받아들여야 해야 할까? 사실 ‘카피라이터’는 직업의 특성상 일과 휴식이 분리가 안 된다.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카피를 쓰고 그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능적 차원의 기술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 잠을 안 자도 안 졸리는 일을 찾고 선택해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대학에서의 가장 중요한 숙제는 무엇을 즐기고 빠질 수 있는지 찾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서 방황하게 된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야한다.”
시인 윤제림의 시 '재춘이 엄마'를 모티프로 만든 SK기업이미지 광고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나는 작가가 되길 희망했던 사람이다. 우연히 광고 회사에 들어가서 글을 쓰다 보니 ‘어 이거 내가 하려던 글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1887년도에 동아일보에서 나오는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을 했다.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면서 시는 쓸 틈이 있었나?
등단할 때 작품이 총 열 편이었는데 그건 대학시절에 썼던 것들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등단을 목표로 몇 달 동안 틈틈이 쓴 작품들이었다.
카피라이터에서 시인, 그리고 현재는 대학교수로 활동 중이다. 특히 회사와 학교는 성격이 많이 다른데, 이직의 고민은 없었나?
많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지만 얻은 만큼 돌려준다는 생각을 했다. 광고는 젊다. 젊음의 평행감각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광고를 계속하기 어렵다. 그런데 학교에 있으면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공부하면서 그 감각을 유지하게 된다. 학교와 광고 현장을 오가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겠단 확신이 들었다.
선배이자 선생으로서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신입생들의 절반은 카피라이터와 CF감독을 꿈 꾸며 입학한다. 하지만 졸업할 때 보면 그렇지 않다. 많은 젊은이들이 꿈들만 높고 이상만 높지 노력들을 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대들어야 한다. 광고는 어찌 보면 마인드 게임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내고 광고주의 마음을 읽어내고 동료의 마음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호기심이 부족하고, 자기 것이 아니면 관심이 없다.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야 한다. 그걸 명심했으면 한다.
e p i l o g u e
앞면에 심플하게 카피라이터 윤준호라고 적혀진 그의 명함을 보니, 카피라이터, 시인, 교수님 중 어떤 직업이 가장 애착이 가느냐는 유치한 질문은 쏙 들어가 버렸다. 시인은 명함이 필요 없는 직업이라는 이야기 또한 공감이 갔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교수님과 학생사이에서 내내 줄타기 하듯 이루어진 인터뷰는 카피라이터에게 가졌던 호기심과 궁금증의 해결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가진 고민거리들에 대한 정성어린 조언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명 카피라이터답게, 질문 하나하나의 답변 또한 정말 죽여주는 카피로 채워주셨다. 이러한 점들이 아마 광고인, 특히 카피라이터를 젊은이들이 꿈꾸는 이유 아닐까?
글/사진 차승학(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