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단
- 게시일
-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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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자
- 정수림
빛나는 청춘시대
한국영상자료원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
“일찍이 이토록 한 사람에게 영화산업과 예술이 전적으로 의존했던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
신성일을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 영화사는 물론 한국 현대 문화사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
- 박찬욱 감독
[ ▲ 한국영상자료원 전경과 전시 홍보 포스터 Ⓒ박예림 ]
배우 신성일은 1960-1970년대에 청춘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수많은 이들의 청춘을 대변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소관 공공기관인 한국영상자료원은 전시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에서 신성일이 어떻게 영원한 청춘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1960년대 청춘 영화 장르와 함께 조명한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실 내에서 펼쳐진다.
[ ▲ 전시장 입구 Ⓒ박예림 ]
영화계의 큰 별, 배우 신성일
뉴스타(申星) 넘버원(一)
배우 신성일의 인생을 정리한 바이오그래피는 그가 생전에 영화를 얼마나 사랑했고, 열정적으로 임했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이어지는 통계 또한 배우 신성일의 가치를 증명해준다.
신성일의 배우 생활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는 1957년 3,085:1의 경쟁률을 뚫고 신필름의 전속 배우가 되었다. 그를 발탁한 신상옥 감독은 신성일에게 ‘뉴스타 넘버원’이란 뜻의 예명을 주었다. 그는 이름처럼 하나뿐인 스타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신성일은 전성기였던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1년간 총 한국 영화 제작 편수 1,592편 중 약 25퍼센트인 390편에 참여했으며, 데뷔 이후 50여 년 동안 총 51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전시장 한쪽에는 신성일을 유명하게 한 <아낌없이 주련다>(1962, 유현목)의 콘티와 대본이 자리하고 있다. 대본에는 신성일의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다. 옆에는 생전에 그가 가장 아꼈다는 특별한 트로피가 있다. 1967년 제1회 서울대학교 영화페스티벌에서 “무한정 스타덤을 차지해 신인 발굴에도 큰 차질을 가지게 했으며, 남자배우는 무조건 잘 생겨야 한다는 관념을 불러일으켜 분노를 사게 했으므로 상을 줄 수밖에 없다”라며 수여한 최악배우상이다.
은막의 황금 콤비 신성일 & 엄앵란
[ ▲(좌)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식 사진 (우) 소장 결혼 앨범 Ⓒ박예림 ]
그때 그 시절, 청춘 영화
청춘 영화
[ ▲ 신성일이 출연한 청춘 영화 포스터 35점 Ⓒ박예림 ]
대게 청춘 영화는 방황하는 청춘들이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내용을 다룬다. 전시에서는 신성일이 출연한 <떠날 때는 말없이>(1964, 김기덕), <잃어버린 태양>(1964, 고영남), <맨발로 뛰어라>(1964, 이용호), <하숙생>(1966, 정진우) 등 주요 청춘 영화의 포스터 35점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청춘 영화의 만개를 알린 영화는 <맨발의 청춘>(1964, 김기덕)이다. 이는 당시 서울 관객 25만 명을 동원한 당대 최고의 흥행작이었다.
[ ▲ 재현한 <맨발의 청춘> 두수의 방 Ⓒ박예림]
[▲ 재현한 <맨발의 청춘> 두수의 방 Ⓒ박예림]
전시에는 <맨발의 청춘>에서 신성일이 연기했던 인물 ‘서두수’의 방이 재현되었다. 두수의 방은 당시의 현실과 다르게 독특한 구조로 꾸며졌다. 침대, 신발장, 서랍이 벽 속에 숨겨졌고, 방 한쪽에 세면대가 있었다. 두수의 방은 지금 보아도 신기할 정도니 당시 젊은이들을 얼마나 놀라게 했을지 짐작이 간다.
휏션스타
[ ▲ 복원 제작된 <맨발의 청춘> 속 의상 Ⓒ박예림 ]
<맨발의 청춘>은 계급이 다른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청춘 영화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폭력배 서두수(신성일)와 외교관의 딸 요안나(엄앵란)의 환경 차이는 패션에서도 나타난다. 서두수가 입은 가죽점퍼와 청바지, 요안나가 입은 더블 단추 코트는 전시장에 복원되어 있다.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던 만큼 신성일의 패션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으로 번졌다. 서두수가 입었던 ‘보머 재킷’과 스포츠머리의 ‘반삭 헤어스타일’은 청춘의 상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공간은 전시장에서 가장 이색적이다. 청춘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던 댄스홀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처비 체커의 노래 ‘렛츠 트위스트 어게인’이 흘러나오고, 사이키 조명이 화려하게 반짝인다. 청춘 영화 속의 댄스홀, 대저택, 카바레 등 화려한 서구식 생활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환상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 ▲ 관람객이 남긴 전시 후기 글 Ⓒ박예림 ]
전시의 마지막 공간 ‘렛츠 트위스트 어게인’에는 전시 후기를 남길 수 있는 종이와 펜이 마련되어 있다. 벽면에 붙은 관람객들의 글에서 전시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느낄 수 있다.
향수를 느끼게 하는 전시
1960년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청춘 영화는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 장르다. 그들 또한 청춘 영화 속 주인공처럼 고민하고, 좌절하고, 꿈꾸며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글에는 그리움이 한껏 묻어난다.
어떤 이는 “하늘에 계신 어머니와 종로 아카데미 극장에서 영화 <하숙생>(1966, 정진우)을 보았는데, 아직도 그 영화 주제가인 최희준의 ‘하숙생’과 배우 신성일, 김지미의 얼굴과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라며 추억을 회상했다. 또 다른 이는 “어릴 때 뵙던 신영(신성일의 본명) 오빠 정말 보고 싶습니다.”라며 배우 신성일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한국 영화의 역사 읽기
현세대의 젊은이들에게 1960년대 청춘 영화는 낯설고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나 한 스타를 동경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았다. 그래서 청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전시다. 어떤 이는 “내가 지나온 시간도 아닌데, 그 옛날이 그리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라며 공감을 표했다. 또 다른 이는 “나의 엄마, 할머니가 이런 흑백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라며 사랑하는 가족의 젊은 시절을 상상했다.
기자는 전시 관람 후에 후기 글을 남겨 엽서 3종을 받았다. 서랍에 두었다가 나중에 발견하면 취재했던 기억이 떠오를 듯하다. 많은 사람에게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 전시가 또 하나의 추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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