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국립발레단 그리고 강수진
게시일
2018.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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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이성은
 

발레, 국립발레단 그리고 강수진


‘발레’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몸이 그려내는 심미적 유희를 연상해 경이를 느끼는 사람도, 어린 시절에 보았던 <호두까기 인형>의 아련한 향수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그런 기억들에 앞서 떠오를, ‘발레’라는 단어보다도 더 발레를 상징하는 이가 있다. 국립발레단 강수진 예술감독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발레’ 그 자체로 통용되는 강수진 예술감독은 독일에서도 더욱 크게 인정받았던 무용수다. 그녀가 2007년에 수여받은 캄머탠저린의 작위가 이를 방증하는데, ‘궁중무용가’를 뜻하는 이 작위는 독일 오스트리아 최고의 예술인에게 주어지는 훈장으로, 당사자에게 면책특권 주어질 정도의 큰 경의를 상징한다.

 

프로필 사진 

[▲ 프로필 사진 ⓒ국립발레단]


뛰어난 업적을 쌓은 예술인이 은퇴 후 지도자나 감독으로 분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평생동안 월급을 받고 무대에 언제든지 주역으로 설 수 있는 혜택을 저어하고 감독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은 흔치도, 쉽지도 않다. 강수진 예술감독은 국립발레단을 위해 위와 같은 특권을 보장하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종신단원’의 자리를 뒤로해야 했다. 전 세계를 누비던 강철나비는 이제 고국에 안착했다. 그녀가 세계에서 그려온 발레는 무엇이었으며, 한국에서 그려낼 발레는 무엇일까. 국립발레단 강수진 예술감독에게 직접 답을 구해보았다.


# 강수진과 ‘발레’

 

 

질문에 응하는 강수진 예술감독

[▲ 질문에 응하는 강수진 예술감독 ⓒ안정민]


Q. 2016년 무용수로서는 은퇴를 했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도 물어봤고 그에 거듭해서 대답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소회가 다르진 않은지. 예전에 부상으로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무대를 보면 뛰어올라가고 싶을까봐 머리를 단발로 잘라버렸던 일화가 있을 정도로 무대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들었기에 더욱 궁금하다.


강수진 예술감독 (이하 ‘강 감독’) : 한 치의 후회도 없다. 내가 발레를 50살까지 하지 않았는가. 발레를 하면서 계속 승승장구만 했던 것도 아니고 부침을 겪었던 순간도 분명 있었지만, 그런 객관적인 성과와 별개로 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쌓아올린 경력에 박수를 보내줬고, 나 또한 무용수로서의 경력에 만족한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작품으로 마지막 공연을 올렸고, 그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무용수가 되기 위해 그리고 올릴 수 있는 실력을 갖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후회도 없다.


Q. 내가 만약 세계 최정상의 위치에 있었다면, 무대에서 내려오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언론에서 “후회가 없다.”라 얘기를 해도 내심 미련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표정에 확신이 가득하다.


강 감독 : 내가 현역 무용수로 활동할 때에 있던 위치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대에 내려왔더라도 그게 나의 발레 인생의 하강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직을 수락하며 무용수로서의 은퇴를 결심한 것은 내 경력의 변곡점일 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은 내 후배들의 재능을 찾고 함양하는 작업에 한껏 매료돼 있다. 내 발레 인생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 강수진과 ‘국립발레단’

 

 

업무를 보는 강수진 예술감독

[▲ 업무를 보는 강수진 예술감독 ⓒ안정민]


Q. 현역 때 한국에서 공연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 활동무대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이었다. 나라마다 발레 스타일에도 일면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더욱이 이를 감독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한다. 국립발레단을 이끄는 데에 있어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무엇인가.


강 감독 : 국립발레단은 본디 국립무용단에 속해 있다가 창단됐다. 그렇기에 공식적인 활동 기간은 40년 남짓인데도 불과하고 눈부신 결과물들을 보이고 있다. 몇 년 전엔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자(2006년 김주원 발레리나)를 배출한 바 있는데다, 올해도 세 명의 무용수와 안무가(박슬기 발레리나, 이재우 발레리노, 강효형 안무가)를 후보에 올렸다. 단기간 내에 발레단이 굉장히 놀라운 성장을 보인 것이다. 예전부터 국립발레단을 갈고닦은 선배 감독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나는 이 과거의 노력과 미래의 결과를 잇는 현재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에 내보일 국립발레단 만의 색깔 찾기가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후배 무용수들을 성장시키는 일에 가장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에 내가 국내·외적으로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와 공연 감각이 꽤 큰 도움이 되더라.


(* 브누아 드 라 당스 : 발레계의 오스카라 불리는 국제적인 영예로, 우리나라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강수진 발레리나, 국립발레단의 김주원 발레리나, 마린스키 발레단의 김기민 발레리노 세 사람 만이 수상한 바 있다.)


Q. 후배 무용수들을 성장시키는 일에 방점을 둔 까닭일까, 2014년부터 신인 안무가를 양성하고 한국 발레의 신기원을 소개하는 <케이엔비(KNB) 무브먼트>를 개최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프로그램을 차용해왔다 들었다는데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인지 전망은 어떨지에 대해 알고 싶다.


강 감독 : 맞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노베르 소사이어티>를 본 따 <케이엔비(KNB) 무브먼트>를 구상하게 다. <노베르 소사이어티>는 창작 안무를 소개되는 기회의 장이 되길 자처하며, 신진 안무가들의 등용문으로서 작동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전설적인 안무가 존 크랑코를 비롯해 존 뉴마이어, 지리 킬리안, 우베 숄츠 등과 같은 폭넓은 인재풀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국립발레단도 <노베르 소사이어티>와 같은 자생적인 안무가 양성 프로그램이 있길 바랐다. 거기서 나온 결과물이 2017년에 선보였던 국립발레단 창작 공연 <허난설헌-수월경화>다. 현재 국립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도 활약하고 있는 강효형 발레리나가 안무가로 분해 진두지휘한 작품으로 성황리에 막을 내렸었다. ‘강효형’이라는 안무가의 발굴은 <케이엔비(KNB) 무브먼트>가 지향하는 ‘신진 예술가 양성’의 좋은 표본이라 생각한다.


Q. 2014년에 이재우 발레리노가 무려 두 단계 승급이 거쳐 수석 무용수로 발탁 화제를 모았다 그것도 앞서 말씀해주신 ‘신진 예술가 양성’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강 감독 : 그렇다. 당시 공연을 보고 부정할 수 없는 실력과 더 크게 뻗어나갈 가능성이 보이더라. 실제로 작년 브누아 드 라 당스 후보로 지명될 만큼 두드러지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Q. 작년에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로 지명, 한 해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인이자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서 열렬한 활동을 해냈다. 꽤나 진부한 마무리인 건 아는데 (웃음),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평창올림픽에 대한 응원 한 마디 부탁드린다.


강 감독 : 우리나라를 보면 가끔 예체능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이들이 등장하곤 한다. 최근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정현 선수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전례가 없던 분야에서 그런 사람들이 나오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한국인 안에는 예체능에 대한 천부적 감각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선수들 모두 그 내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다면 모두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생각한다. 다가오는 올림픽이 선수들 모두가 오랫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원한다. 더불어 평화로운 평창올림픽과 함께 경기를 보는 관객들까지 모두 평화로운 2018년이 되었으면.


# 어제의 강수진, 오늘의 강수진 그리고 내일의 강수진

 

 

프로필 사진

[▲ 프로필 사진 ⓒ국립발레단]


기자가 이번 인터뷰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그녀에게 정말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지에 대해 묻고 싶어서였다. 과거에 대한 미련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 여긴 까닭에서다. 그러나 기자가 강수진 예술감독의 인터뷰에서 목격한 것은 사뭇 달랐다. 어제를 떠나 오늘을 사는 용기, 항상 오늘을 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일에 대한 확신이 생생히 느껴졌다.


‘강철나비’, 발레의 금자탑을 쌓은 강수진 발레리나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 단어는 그녀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다. 얇고 섬세하지만 오랫동안 단단히 비행할 수 있는 강철나비가 꼭 그녀에게 어울리는 까닭에서다. 치열했던 무용수로서의 어제부터, 감독으로서의 오늘 그리고 앞으로 정해지지 않은 내일까지도 강수진 예술감독의 활공은 멈추지 않을 듯 싶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온 강수진 예술감독을 품은 한국의 발레와 국립발레단의 성장을 기대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김정서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talephile@naver.com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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