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단
- 게시일
- 2017.07.13.
- 조회수
- 3639
-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044-203-2050)
- 담당자
- 이성은
망국의 역사와 함께한 중명전, 다시 돌아오다
[ⓒ김묘정]
“…저들 일본의 요구가 이처럼 끝이 없다면 우리나라는 필경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중략)…
진실로 이처럼 회의석상에서 한두 신하의 의논을 거쳐 국사가 타결된다면
500년 종묘사직이 어떻게 되겠으며,
2000만 백성들은 누구의 손아귀에 들어가겠습니까.
길이 통곡을 하자니 천지가 아득하기만 합니다.”
제실회계심사국장(帝室會計審査局長) 박용화(朴鏞和)의 사직 상소 중에서
(『승정원일기』 고종 42년 을사(1905) 10월 24일)
1905년 11월 17일 밤, 일본군에 둘러싸인 수옥헌(漱玉軒)에서 한국과 일본의 이해공통주의를 공고히 한다는 명목으로 ‘한일협상조약(韓日協商條約)’ 즉 일본이 억지로 맺은 조약인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됐다. 이 회의에 참석한 대신 7명 중 박제순·이지용·이근택·이완용·권중현 5명이 조약에 찬성했고 이들을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 부른다.
대한제국의 비운과 함께한 중명전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인 수옥헌은 1901년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다. 이곳은 우리나라 궁궐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 중 하나다. 1904년 덕수궁에 큰 화재가 일어나면서 고종은 수옥헌을 편전, 즉 집무실로 사용했다. 그리고 1906년 경 명칭을 중명전(重明殿)으로 고쳤다.
[▲ 중명전 전경 ⓒ김묘정]
1907년 고종은 을사늑약이라는 치욕이 깃든 중명전에서 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 평화 회의에 사절단을 파견한다. 하지만 사절단은 회의에 참여할 자격을 얻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한국의 실정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후, 일본은 고종에게 특사 파견의 책임을 물어 강제로 폐위시킨다.
[▲ 아름다운 중명전 ⓒ김묘정]
망국의 역사가 서린 중명전은 혼란이 계속된다. 일본에 의해 덕수궁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외국인에게 임대돼 경성구락부(Seoul Union)로 쓰였고 해방 후에도 외국인의 사교클럽으로 사용됐다. 1963년에는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여사에게 소유권이 넘어갔으며, 1977년에는 개인에게 팔려 사무실로 쓰이는 등 한 때 황제의 편전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취급을 받는다. 이후 2003년에 당시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정동극장이 문화재로서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매입했고 2007년에 문화재청으로 소유권이 넘어가 덕수궁으로 편입됐다.
다시 돌아온 중명전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정동극장에 다다르면 왼편에 작은 골목길이 있다.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그 길로 들어가면 중명전이 조용하게 자리 잡고 있다. 2016년 8월부터 보수공사를 진행한 중명전은 2017년 7월 1일에 재개관했고 1층을 개방해 총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됐다.
[▲ 정동극장 옆으로 들어가면 중명전이 있다 ⓒ김묘정]
[▲ 중명전 입구 ⓒ김묘정]
제1전시실은 ‘덕수궁과 중명전’을 주제로 이들의 역사를 보여준다. 모형과 이를 설명하는 오디오로 구성돼있어 보다 쉽고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다.
[▲ 덕수궁의 역사 ⓒ김묘정]
제2전시실은 ‘을사늑약의 현장’이라는 주제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을사늑약문과 함께 을사늑약 현장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1905년 11월 17일 밤을 생생하게 되새길 수 있다.
[▲ 을사늑약문 ⓒ김묘정]
[▲ 을사늑약 체결 당시를 재현한 모습 ⓒ김묘정]
제3전시실은 ‘을사늑약 전후의 대한제국’을 주제로 일본의 국권침탈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설명문과 함께 디지털 화면으로 더욱 생동감 있게 역사를 전달한다. 또한 고종의 황제어새 모형과 친서에 어새를 찍을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마련돼 있다.
[▲ 황제어새 ⓒ김묘정]
[▲ 체험하는 시민 ⓒ김묘정]
제4전시실은 ‘대한제국의 특사들’이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늑약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 즉 헤이그 특사들에게 수여한 위임장과 특사들의 호소문을 볼 수 있다. 한쪽에는 어린이를 위한 역사문제와 관련 영상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 헤이그 특사 모습 ⓒ김묘정]
[▲ 어린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역사문제와 영상 ⓒ김묘정]
중명전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한제국을 덮은 칠흑 같은 어둠과 그것을 걷어내려는 처절한 노력을 지켜본 중명전. 갖은 수난의 시간을 지나 그 때처럼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명전(重明殿)은 ‘밝은 빛이 이어지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고종이 펼친 광무개혁 120주년인 2017년, 중명전의 바래지 않는 빛을 보며 지나간 역사와 살아갈 미래를 생각해본다.
[▲ 중명전 현판 ⓒ김묘정]
[▲ 중명전의 뜻은 ‘밝은 빛이 이어지는 전각’이다 ⓒ김묘정]
●덕수궁 중명전
- 관람시간 : 오전 9:30 ~ 오후 5:30 (입장마감 오후 5: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관람요금 : 무료
*원문 : 도란도란 문화놀이터(http://blog.naver.com/mcstkorea/221049565602)
문화체육관광부 "망국의 역사와 함께한 중명전, 다시 돌아오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2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