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독서의 해, 작가를 만나다] 미세한 틈 사이를 관찰하는 유쾌한 남자, 소설가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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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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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독서의 해, 작가를 만나다

 

미세한 틈 사이를 관찰하는 유쾌한 남자 소설가 김중혁

 

뒷마당의 덤불이 괴수물체가 되어 날 잡아간다면? 앞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을 보여주는 시계가 생긴다면? 유리창이 갑자기 자살을 한다면? 생각만 해도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보통 때는 보이지 않던 작은 틈새, 어느 날 눈에 들어온 미지의 통로를 통해 만나게 되는 낯선 공간에는 낯선 공기가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익숙하게만 느껴오던 지루한 도시를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유쾌한 남자 김중혁! 소년 같은 감성을 지닌 김중혁 작가와의 즐거웠던 만남 속으로 출발합니다.

 

 

도시를 꼼꼼히 들여다보다 <1F/1B>

 

1F/1B 일층,지하 일층  김중혁 소설, 뭐라도 되겠지 김중혁 산문, 미스터 모노레일 김중혁 장편소설

 

책을 소개하는 일도 지겨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책 소개를 하지 않을게요. 독자 분들이 읽으시는 거니까요. 받아들이는 것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구요. 책 소개는 패스!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랄 뿐이에요.

 

이번 단편집 <1F/1B>는 도시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전에는 악기, 그전에는 물건. 테마로 단편집을 묶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티가 나게 묶어서 그렇지 대부분의 작가들이 한 시기에 관통하는 개인적인 주제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어차피 묶을 거면 태나게 묶자’ 한거죠. 전 제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들에 대해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을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글을 써요. 이 단편집 전에 엇박자들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그 이야기를 쓰다가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마침 런던에 있었거든요. 거기서 쓴 작품이 <세 개의 식탁, 세 개의 담배>인데 ‘아,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재밌겠다.’ 고 생각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진지하게 뭔가를 질문하고 싶을 땐 단편, 뻥치고 싶을 땐 장편, 수다 떨고 싶을 땐 산문, 웃기고 싶을 땐 만화를 그린다던데 이번엔 단편집에서는 도시에 관해 진지하게 말하고 싶었나요?

단편은 저한테 제일 진지한 질문들이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활동을 하면서 생각하는데 이 도시는 희한한 도시 같아요. 95년부터 서울에서 지냈는데 도시의 변화도 엄청 빠르고 사람들의 마음의 변화도 엄청 빨라요. 뭔가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서너 개의 도시가 얽혀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이런 도시가 어떻게 기능하고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보고 싶었고요. 그게 저한테는 공간에 대한 문제고, 빌딩 안에 사람들의 문제고, 자연의 문제예요. 또 지금 도시들이 남겨야 할 것들은 없애고 없애야 할 것들은 생기는 걸 보면서 그에 대한 가치판단이 안 되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에 대해서도 쓰고 싶었어요.

 

<바질>은 거의 SF같았어요. 덩굴이 괴수물체가 돼서 나오는데 책을 읽으면서 식물이 나중엔 우릴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환경에 대한 경각심 이런 것이었나요?

소설을 쓸 때 ‘주제를 말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아요. 이야기를 쓰다보면 주제가 나오는데 그 이야기라는 것은 계속 생각하고 확장시켜나가면서 만들어지죠. 마찬가지로 전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단순하게 “괴수식물이 인간을 덮친다면? “ 이라는 생각으로 시작을 한 거죠. 주변에 보면 정리되지 않는 자연들이 있는데 야산의 덤불이나 덩굴 같은 거죠. 이걸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어요. 저기 뭐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생각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이 된 거예요. 그게 환경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었다면 더욱 좋고요.

 

<바질>도, <시티는 스케이트보드다> 에서도 <일층/지하일층>에서도 어느 통로를 지나서 나가면 낯선 공터가 나와요. 낯선 공터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어떤 비밀의 통로 같은 것이 있고 그걸 통과하면 내가 달라져있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통로를 계속 만드는 것 같고요. <시티는 스케이트보드다>에서도 보면 낙서를 통해서 통로가 생기잖아요. 통로가 빈틈이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의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글을 쓸 때는 제가 이런 걸 왜 좋아하는 줄 모르고 쓰는데 나중에 보면 자신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오곤 하죠. 하지만 소설을 읽을 때는 어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보다는 기호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통로가 있구나. 저 통로는 뭘까?’ 고민하고 있는데 작가가 “저 통로는 과정이에요. 이런 의미예요.” 라고 말하는 순간 그 통로의 의미가 축소되잖아요. 발견하는 사람이 의미를 부여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에서는 소녀가 등장해요. 작가님 소설에 여자는 많이 나오지 않잖아요. 킬러랑 소녀라니, 딱 레옹이 떠올랐거든요. 18살의 어린 소녀를 등장시킨 이유가 있나요?

남남대비를 좋아해서 그런 구도로 글을 많이 썼었는데 어느 순간 다른 대비를 좀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까 여자아이를 떠올리게 되었고요. 풍경 같은 경우는 이 소설을 런던에서 써서 외국의 이미지를 많이 보니까 그런 느낌이 많이 묻어났던 것 같아요.

 

소설에서도 보면 외국이 배경이에요.

외국은 아니에요. 등장인물들의 이름 때문에 외국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소설에서 보면 킬러가 죽이는 사람들 이름이 ‘토드’나 ‘노엘-42’ 이잖아요. 이게 뭐냐면 인터넷 이름이에요. 영국은 인터넷 환경이 안 좋아서 와이파이가 잘 안 잡혀요. 또 다 잠겨 있고. 그 잠겨있는 인터넷 이름인거죠. 인터넷은 하고 싶은데 잠겨있어서 못하니까 ‘다 죽여 버리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죠.

 

작가님 책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사물들의 이름이 굉장히 독특해요. 이름을 짓는 방법이 있나요?

방금 말한 것처럼 대충 그런 식으로 지어요. 바로바로 생각나는 것들, 보이는 것들로. 한국이름 같은 경우에는 생각을 좀 해요. 어감을 많이 생각하죠. 예를 들어 윤서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글 속에서 어떻게 어울릴까 생각을 하는 거예요.

 

앞으로 사는 시간을 알 수 있는 시계라니 궁금하면서도 섬뜩한데요. 만약 그런 시계가 발명이 된다면 살 의향이 있나요?

시계를 안 볼 것 같아요. 그런 걸 갖고 있으면 하루하루가 고단할 것 같아요. 그 시계가 만들어진 이유는 단순해요. 지구가 언제 없어질지 모르고 우주 안에서 지구, 그리고 인간이 굉장히 미미하게 느껴졌어요. 우리가 죽을 날을 안다는 건 더 끔찍한 일이죠. 하지만 우리가 미미한 존재라는 걸 깨닫고 나면 더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더 극단적인 대비를 해보고 싶었어요. 남은 시간을 알고 사느냐, 남은 시간을 모르고 행복하게 사느냐. 그런 것들.

 

소녀처럼 앞으로 살날이 99시간 남으면 무엇을 할 건가요?

99시간이면 4일정도 되네요. 일단은 제가 쓴 글들, 남겨놓은 낙서들을 다 불태워버릴 것 같고요.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리하기위해서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본다면 굉장히 창피할 것 같아요. 심지어 완성된 작품을 볼 때도 섬뜩할 때가 있어요. ‘아 내가 이걸 왜 썼지’ 하면서 창피해 하는 거죠. 저 혼자 죽는거면 큰 장소를 빌려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서 맥주를 마시고, 하루정도는 숙취로 고생을 하고 나머지 하루는 조용히 혼자 있을 것 같아요.

 

 

현실이 유쾌하고 발랄한 상상력을 만났을 때!

 

소설가 김중혁 - “어떤 비밀의 통로 같은 것이 있고 그걸 통과하면 내가 달라져있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통로를 계속 만드는 것 같고요. 통로가 빈틈이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의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쾌한 상상력으로 유명한대 영감을 얻기 위해서 특별히 하는 게 있나요?

상상력이 많다기보다는 뻔뻔함의 문제인거 같아요. 다른 작가들을 보면 자료 조사를 많이 해요. 저도 자료조사를 하긴 하는데 그보다는 ‘하나의 기호를 만들자’ 해서 이름이나 이야기나 아무렇게나 지어요. 지어놓고 정말 있는 것처럼 수습을 하는 거예요. 일을 저질러놓고 수습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더라고요. 그게 저한테는 또 중요하구요. 수천가지의 생각과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뽑아 살을 붙이는데 또 그 안의 사람들의 감정은 실제예요. 그런 걸 엮는 게 재미있어요. 상상력과 사실이 만났을 때 어떤 작용을 하는지 보는 거죠.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글을 쓴다.’는 건 뭘까요?

저희 어머님이 글을 잘 못 읽으시는데 제 책을 보는 걸 좋아하세요. 어머니한테는 제 책이 어렵겠죠 당연히. 이번에도 보여드렸는데 전화가 왔어요. “이렇게 하얀 종이에 이렇게 까만 글씨를 빽빽하게 많이 채워 넣으려면 얼마나 힘들었겠니. 정말 수고했다.” 라고. 글쓰기는 그것인거 같아요. 정말 하얀 종이에 정말 까만 글씨를 채워 넣는 것. 그게 기본이죠.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면서 보내나요?

글을 쓰지 않아요. 물론 마감이 있기 때문에 글을 아예 안 쓸 수는 없죠. 마감 전에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잡고 생각을 많이 하고 글을 써야 해요. 그렇다고 안 써지는데 앉아서 끙끙대지는 않고 계속 돌아다니면서 생각을 하는 편이예요. 글을 쓸 때만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생각을 하는 거죠. 머릿속에서 정리를 하고나서 책상에 앉으면 바로 쓰죠.

 

그냥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건가요?

가끔씩 서울을 보면 외국 같을 때가 있어요. 이 서울을 외국이라고 생각을 하고 여행을 다니다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일들이 많거든요. 비슷한 느낌으로 관찰을 하는 거죠. 지하철에서는 책이나 영상을 보거나 하지 않고요. 사람들을 봐요. 찬찬하게 관찰하고 변형해보고 생각도 해보고 하죠. 그 사람의 인생과 몸짓, 태도들을 알 수 있죠. 그걸 계속 쌓아놨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써요. 많은 표본채집을 하듯이 저장을 하는 거예요.

 

 

손으로 쓰는 게 좋아요, 고친흔적들이 남으니까

 

소설가 김중혁 - “가끔씩 서울을 보면 외국 같을 때가 있어요. 이 서울을 외국이라고 생각을 하고 여행을 다니다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일들이 많거든요. 비슷한 느낌으로 관찰을 하는 거죠. 그걸 계속 쌓아놨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써요.많은 표본채집을 하듯이 저장을 하는 거예요.”

 

그림도 잘 그리세요. 책속에 삽화도 직접 그리고 웹툰도 연재중이고요.

잘 그리는 건 아니에요. 이것도 뻔뻔해서 그런 거죠. 남들은 이정도 그리면 ‘아 더 잘 그리면 남들에게 보여줘야지’ 하는데 저는 그냥 사람들에게 보여줘요. 정말 뻔뻔한 거죠. 종이에 낙서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낙서가 좋은 건 생각을 퍼져나가게 하거든요. 글을 쓰면서는 생각을 퍼지게 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손으로 쓰는 게 좋아요. 낙서도 할 수 있고 흔적도 남고하니까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직업을 거쳤어요. 가장 힘들었던 직업은 무엇인가요?

한겨레에서 6개월 동안 칼럼을 쓴 적이 있어요. 칼럼이랑 에세이는 굉장히 다른 거거든요. 어떤 사안을 이야기하고 싶으면 2주 동안 공부를 해야 되요. 근데 그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원고지도 7매정도 밖에 안 되는 데 그걸 위해 2주 동안 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정리도 되고 쓸 때 만족감도 좋은데 전 좀 힘들더라고요.

 

사람들과의 만남은 즐겁다?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기는 하는데 사실 글 쓰는 데는 방해가 돼요. 형식적인 인사나 대화만 해도 그 관계를 생각하느라 에너지 소비가 되거든요. 작가가 좋은 이유는 그 사람들을 안 만나고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안 써도 된다는 거죠. 그 에너지를 자기한테, 소설속의 사람들에게 쓰는 거죠. 반대로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은 건 관계라는 건 혼자서 만들 수는 없는 거잖아요. 실제로 배우는 게 있어야하니까요.

 

영화대꾸 에세이 <대책 없이 해피엔딩>에서 봤어요. 정말 좀비영화를 좋아하나요?

좀비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좀비를 좋아할 즈음에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데 너무 무거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좀비를 데리고 와서 가볍게 써보자 했죠. 가벼워지지 않았지만. 좀비라는 것은 상징적인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그리고 보니 좀비도 어느 사이에 끼인 사람들 인 것 같은데요. 사실 제 스스로만의 색을 찾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찾는 게 있었는데 어느 시점이 지나고 보니까 제가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미세한 틈 사이를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

 

작가들에게는 모두 서재가 있어요. 작가님의 서재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 작업실에 책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에요. 책장 세 개 사서 딱 필요한 책만 꽂고 나머지는 처리하고 싶어요. 제가 또 책 먼지 알레르기가 있어요. 도서관가서 책 넘기면 손이 진무르고 따갑고 해요. 그래서 헌 책을 잘 못 봐서 골무까지 샀어요. 좋긴 한대 너무 더워요. 저는 글을 작업실에 앉아서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카페나 여러 곳에서 써요. 그래서 다 서재죠. 어디든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 그곳이 서재가 되는 거예요. 또 사람도 책이고 서재고. 하지만 난 날 대여해주진 않을 거예요. 비밀문서인데 지금은 목차만 보여주는 거예요.

 

무덤에 갈 때 책 한권을 갖고 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갖고 가실건가요?

여백이 많은 책. 내가 들어가서 빈곳에다가 쓰게요. 책이면서 노트인 것이죠. 그런 책을 가져갈 것 같아요. 그림책도 좋네요.

 

 

김중혁 작가와 함께한 90분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어떤 책을 쓰고 있느냐고 묻자 김중혁 작가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고 살짝 귀띔해주었는데요. 벌써부터 그의 책이 나올 날이 기다려집니다. 책에는 낙서를 하고 지저분하게 봐야 진짜 내 책인 것 같다고 말하는 김중혁 작가, 유쾌한 소년감성을 고스란히 담은 그의 책과 함께라면 오늘 하루도 꽤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홍다솜 대학생기자 홍익대학교 경영학과 forcheckmat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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