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단
- 게시일
- 2012.02.15.
- 조회수
- 4572
-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02-3704-9044)
- 담당자
- 이유진
2012년, 새해가 찾아왔다. 한해를 시작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한 살 더 먹는 슬픔일 수도 있고 수능을 본 학생들에게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학기를 앞둔 나에게는 고생과 환희의 해가 아닐까 싶다. 취업에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나는 걱정 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것을 위해 오늘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그 꿈을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낸 위인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부끄럽게도 그 기간은 채 1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염원이 강하다. 내 꿈의 시작은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단이라는 소중한 만남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픔을 논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세요.
2010년 12월,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 김난도)’가 출간되어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취업, 연애, 학업 등의 아픔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이 시대 청춘들의 어깨를 감싸주며 말 못 할 아픔을 치유해줬다. 나도 출간되자마자 이 책을 사 읽었다. 소감이 궁금할 것이다. 난 거짓말은 못하겠다. 내가 읽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그냥 그랬다. 왜냐면 나는 별로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고? 아픔은 무엇을 절실히 노력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전유물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매일 편지를 쓰고도 냉랭한 거절의 말을 들은 남자. 학점, 토익 성적 등 소위 스펙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공부해왔건만 취업이 되지 않아 슬퍼하는 이들의 것이다. 애석하지만 나는 둘 다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사는 대학생이었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공무원을 하면 되겠지.’의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솔직히 아파할 자격조차 없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어리석음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무언가에 미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러던 중 내게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를 알게 되었고 아무것도 없는 나였지만 과감하게 도전했다.
문화부 대학생 기자가 되고 싶다는 내 목표가 생기자 나는 열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 문화부와 관련된 신문기사부터 정책분석까지 모두 조사했다. 생각보다 문화부는 많은 일을 하고 있었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공부를 거듭할수록 나의 관심은 <관광>에 쏠렸다. 평소 여행과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던 나와는 찰떡궁합이었다. 관심은 곧, 나를 몰입하게 했고 합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지극히 평범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맛보게 해줬고 비로소 내게는 아파할 자격이 생겼다.
문화, 체육, 관광. 대학생 기자. 그리고 소중한 인연들
대학생 기자로서의 첫걸음. 낯설었지만 매력적이었다. 특히, 20대 청춘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어 하는 분야가 문화, 체육, 관광 아니겠는가. 이를 두루 경험할 좋은 기회였다. 나는 관광에 관심이 있었지만 하나에만 치중하려 하지 않았다. 융·복합 시대, 가능하면 다양한 것을 경험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부딪쳐 봤다. 수많은 현장에 함께 했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한 가지, 한국을 사랑하고 알리기 위한 삶을 꿈꾸는 내 목표는 잊지 않으려 했다.
한글. 세계의 디자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이상봉 디자이너(좌측 상단)와 그의 작품 Ⓒ정병화
내 첫 번째 인터뷰이자 잊지 못할 분은 이상봉 디자이너였다. 내가 굳이 서술하지 않아도 너무나 유명한 분이다. 한글을 옷이라는 캔버스에 그린 세계적인 분이다. 매일 읽고 쓰는 한글이지만, 공기처럼 너무 흔해 자칫,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상봉 디자이너는 이를 세계적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의 한글 사랑은 대단함을 넘어 경이로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은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한국적인 요소를 애써 찾아내려 하지 마라. 늘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는 것부터 관심을 두어라.’ 내 시야는 더 넓고 우리 문화에 대한 내 사랑을 깊어졌다.
2012 런던 올림픽. 한국의 위상을 드높여라.
2008년 아테네 올림픽. 이용대, 이효정 선수의 배드민턴 혼합복식 경기를 보았다. 모두가 염원하던 금메달을 획득했다. 뛸 듯이 기뻤다. 단상 위의 태극기와 함께 울려 퍼지는 애국가는 내 마음에 진한 감동을 줬다. 이들은 배드민턴이란 스포츠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했다. 나는 이들을 꼭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용대 선수를 만났다. 코트 위 멋진 스매싱을 하던 청년은 생각보다 수줍었다. 자신은 유명인이 아니라며 그냥 평범한 운동선수라며 해맑게 웃었다. 정점에 올라섰던 그였기에 자칫 거만할 거로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정상의 자리에 서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그의 노력, 열정이라면 2012년 런던올림픽도 문제없어 보였다. 이용대 선수는 내게 끊임없는 열정을 가르쳐줬다.
이제는 천만 관광의 시대가 열렸다.
▲경주에서 열린 <2011 UNWTO>현장은 관광전문가를 꿈꾸는 제게 잊지못할 경험을 선물해 줬습니다. Ⓒ정병화
2011년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 수가 약 천만여 명이다. 물론 미국의 뉴욕이나 그리스 아테네에 비하면 아직은 작은 숫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장률만 비교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제 한국은 관광에서 주변국이 아니다. 세계관광을 주도하는 국가로서 자리 잡았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천년고도 경주에서 열린 <2011 UNWTO 총회>였다. 영광스럽게도 대학생 기자의 자격으로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각국 관광장관을 비롯해 많은 취재진이 함께했다. 이런 국제적 행사가 한국에서 열리다니 왠지 뿌듯했다. 모두 다른 얼굴색,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었지만 관광에 대한 생각은 하나였다. ‘관광은 친환경적인 경제 성장의 동력이고 즐거움을 주는 산업’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자리에 함께 했다는 것 자체로도 내 가슴은 벅찼다. 훗날, 이곳에 함께 하고 싶다는 들었다. 대학생 기자가 아닌 관광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합니다.
지난해, K-팝 덕분에 한국을 찾는 관광객 수가 급증했다. 올해는 한국(KOREA)의 ‘K'와 문학을 뜻하는 영어 줄임말 'Lit(literature의 줄임말)의 합성어인 ‘K-릿’ 열풍이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이 떠오르는 한류의 동력원이다. 하지만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 속 5궁(경복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비롯해 각지에 있는 문화유산이다. 우리의 문화를 소중히 하고 외국인에게 알리려는 본질적 노력 없이는 지금의 한류는 한낮 유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공존과 협업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한국은 세계 속에 우뚝 설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미비하나 노력할 것이다. 그 와중에 아픈 순간이 올 것이다. 이제 나는 아파할 자격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픔마저 사랑할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문화체육관광부 기자단이 중심에 있었다. 아픈 청춘들이여 문화체육관광부 기자단으로 아픔을 이겨나가라고 감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