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단
- 게시일
- 2011.07.12.
- 조회수
- 4947
-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02-3704-9044)
- 담당자
- 이유진
요즘에 어디를 가든지 온통 눈에 띄는 것은 외래어 아니면 외국어뿐입니다. 세계화 시대, 국제화 시대라서 그럴까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멀던 나라들과 교류가 잦아지고 외국 문물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니 그럴 수도 있겠지' 했지만 그래도 좀 지나친 것 같죠? 우리말에는 우리 민족의 오랜 정서와 얼이 담겨 있습니다. 제 나라 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곧 자기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이지요.
아름다운 우리 말 직접 가꾸어 봐요
국립국어원은 이렇게 분별 없이 쓰이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걸러 내고 우리말을 더 다듬어서 가꾸기 위한 <우리말 다듬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외래어, 외국어 사용으로 병들어가는 우리말을 다듬어 언어 순화 실천에 앞장서는 것이지요. 해당 사이트에서는 누구나 낯선 외래어나 외국어를 대신할 우리말을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직접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요? <우리말 다듬기>운동을 주관하는 국립국어원 김문오 박사님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Q. 누리꾼이 직접 제안하는 <우리말 다듬기>,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요?
누리꾼들이 일상 생활에서 ‘다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언어를 제안하면 국어원에서 대상어를 선정해 대안표현을 제시하고 투표를 통해 순화어를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보통 500개에서 많으면 1000개까지 제안이 들어오는데요. 정부나 전문가 집단 주도의 하향적, 일방적, 타율적인 방식보다 ‘일반 국민 참여의 상향적, 쌍방향적, 자율적인 방식이 더 좋다고 판단해 2004년부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순화 대상어를 선택할 때는 사회적 필요성이나 시기 적절성을 함께 고려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다듬어진 말은 언론 보도(연합뉴스·동아일보·KBS)나 순화자료집을 통해 홍보합니다. 올해부터는 순화 대상어 선정 기준을 더욱 강화했고 선정 과정에서 순화위원(약 20명)과 국어원 구성원의 참여를 확대했습니다.
Q. 참 좋은 취지를 갖고 있네요. 그럼 언제부터 진행되기 시작한 건가요?
<우리말 다듬기>는 1991년 1월 ‘국립국어연구원’이 개원한 이후로 국어 순화 운동의 일환으로 꾸준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처음에는 ‘언론’, ‘체육’, ‘건축’ 또는 ‘일반행정’ 등 분야별로 나누어 순화 운동을 해 왔습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국어원이 대상어를 선정해 순화하고 결과를 책자로 만들어 배포하는 식이었죠. 그 때문에 국민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일은 어려웠고 다듬은 말을 널리 쓰이게 하는 일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갖지는 못했어요. 이후 일반 국민 모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우리말 다듬기 방식에 대한 고민을 했고 지금과 같은 형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국어 순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Q. 우리나라 국어 순화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요?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권 시절 전국적으로 정부 중심의 국어 순화 운동 바람이 거세게 불었는데요. 그때는 여러모로 국민들이 국어 순화 정책을 주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려웠죠. 얼마 안 가서 시들해지고 말았어요. 일반 국민의 언어 의식과 맞지 않는 다듬은 말은 국민이 즐겨 쓰는 데에 한계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 뒤로는 국민의 국어 생활에 정부의 영향력은 약해졌고 언론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습니다.
Q. 북한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북한의 경우는 독재 정치를 하다보니 언어 순화를 위에서 밀어붙여 진행하는 편인데요. 우리나라에 비해서 성공률은 높지만 그렇다고 언어의 일방적 강요가 무조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 예로 북한에서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다듬은 적이 있는데요. 국가 차원에서는 순화어로 ‘얼음보숭이’를 선정했지만 북한 주민들은 아이스크림이라 하면 뭔지 알아도 ‘얼음보숭이’이라 하면 뭔지 잘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니 얼음보숭이는 실패한 순화어라고 볼 수 있지요. 북한 같은 체제에서도 국어 순화는 한계가 있는데 우리나라같이 열린 사회, 민주 사회에서는 어려운 점과 고려해야 할 점이 더욱 많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용어를 선택할 수 있는 국민 모두가, 언어 사용의 당당한 주체들이잖아요.
Q. 요즘 사람들이 낯선 외래어나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요,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어린 시절부터 우리말을 사랑하는 의식이 뚜렷하게 확립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우리말만 쓰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낯선 외래어나 외국어를 쓰는 경우도 있고요. 때로 특정 분야 전문가들은 ‘다른 분야 사람들은 좀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해당 직업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쉬운 우리말은 외면하고 어려운 용어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법률이 너무 쉬우면 변호사가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처럼요.
Q. <우리말 다듬기>를 진행하며 개인적으로 느끼신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나 북한에서 온 새터민들은 언론 매체에서 보도되거나 일상에서 흔히 쓰는 용어도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없으니 은행도 잘 안 가게 되고 관공서에서 업무 보는 것도 꺼리게 되죠.
일상적인 말은 알지만 구체적인 행정 서식에 적힌 용어나 표현을 모르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더 소심해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첨단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에서도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고요. 요즘은 뉴스 보도에서도 ‘소셜 커머스’(→공동 할인 구매), ‘클라우드 컴퓨팅’(→하드웨어·소프트웨어 등의 자원을 인터넷상의 서버를 통해 자신이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이에 대한 사용 요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컴퓨팅 서비스) 같은 단어가 자주 들리는데요. 그런 용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나 새터민뿐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많이 다니지 못한 사람, 정보 통신 분야의 특별한 교육 기회가 없었던 이들 모두가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입니다.
첨단 기술과 문화를 잘 흡수해서 따라가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좋은 직업을 얻고 잘살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는 데 반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뒤처지게 되고 사회적 격차는 더욱 심해질 수 있죠.
Q. 말씀해주신 것처럼 그대로 두면 사태의 심각성이 더해질 것 같습니다. 어떤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누구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는 우리말 용어를 덧붙여 설명해 주기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다양한 시청자가 보고 듣는 뉴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외국어나 낯선 외래어를 사용한다면 누군가는 ‘내가 정말 뒤떨어지나?’, ‘너무 모르고 사나?’ 하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대중 매체에 거부 반응을 보일 수도 있고 사회적 소통 상황은 점점 나빠질 소지가 있습니다.
Q.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정부의 우리말에 대한 애정과 배려도 아쉽습니다. 중앙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에서는 창업 지원과 육아 지원 같은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정작 해당 용어가 어려워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려운 외국어로 정책명을 정한 경우에 이용하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그게 뭐지? 아마 나와는 상관없는 정책이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언어적인 복지가 우선되어야 문화 복지도 올바른 틀을 갖출 수 있을 텐데, 정작 가장 기본적인 언어 복지는 미흡한 점이 많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작년에 서울시가 많은 돈을 들여 진행한 <맘프러너>(→엄마의 Mom과 기업가의 Entrepreneur를 합친 단어로 경쟁력을 갖춘 주부사업가를 의미함)란 제도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여성창업지원제도>라고 하면 창업을 생각 중인 전업주부들이 ‘서울시에서 이런 복지 제도를 펼치네, 나도 한번 신청해 봐야겠다’ 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데 <맘프러너>라고 하니 본인과 상관없는 제도인 줄 알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소통이 어려운 용어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테지요.
Q.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해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문화부부터 앞장서서 예를 들어 <문화 바우처 제도> 같은 제도명을 ‘복지 상품권 제도’, ‘복지 이용권 제도’, 문화생활 지원 제도 등의 쉬운 말로 바꿔 보면 어떨까요? 국어 정책의 주무 부처인 문화부가 앞장서서 우리말로 정책이나 제도를 펼치면 다른 부처에 모범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우리말 다듬기>(좌) 사이트 & (http://www.malteo.net)우리말의 역사와 화법,
시사 정보를 알 수 있는 <우리말 배움터>(우) (http://urimal.cs.pusan.ac.kr)
네티즌은 누리꾼, 리플은 댓글, QR코드는 정보무늬!
Q. 현재까지 <우리말 다듬기>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우리말의 수는 얼마나 되나요?
2004년부터 제안된 순화 대상어를 정리해 보니 엑셀로 250쪽 가량이 나왔습니다. 약 2만 5천개에서 3만개 가량이지요. ‘네티즌’을 ‘누리꾼’으로, ‘리플’을 ‘댓글’로, ‘무빙워크’를 ‘자동길’, 스크린도어를 ‘안전문’으로 다듬은 경우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들인데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www.malteo.net)’를 통해 2004년부터 다듬어진 말은 현재 288개인데 이렇게 다듬어진 말 중에서 ‘누리꾼’, ‘댓글’, ‘자동길’은 지금 국립국어원의 누리집(www.korean.go.kr)에서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Q. 또 다른 사례는 없나요?
정보통신 쪽 용어도 많이 순화가 됐습니다. ‘QR코드’는 ‘정보무늬’, ‘와이파이’는 ‘근거리 무선망’ 등과 같이 다듬은 말을 통해 바로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는데요. 정확한 의미를 담으면서도 멋있게 다듬을 수 있도록 누리꾼들과 지혜를 공유하고 그들의 다양한 제안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Q. 우리말이 지금보다 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말이 우리 문화 창조의 도구로써 제대로 사용되려면 학문의 세계에서도 영어만 우선시하고 우리말은 뒷전으로 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학자들은 외국어로 된 어떤 학술 용어를 접하면, 그 개념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우리말이 무엇인지 한번이라도 곰곰이 생각해 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교육의 장인 학교에서부터 뚜렷한 국어 의식을 갖추게 하는 국어 교육이 필요하고요. 국민 모두가 우리말 사랑의 주체로서 우리말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우리말 다듬기를 실천할 때 고유어로 다듬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꼭 고유어가 아니어도 좋고 한자어가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의무 교육만 받은 사람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단어로 순화나 번역을 하여야겠지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로 순화나 번역을 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차별을 만드는 셈일테니까요.
학문의 세계에서도 외래어와 외국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나라의 학문은 늘 종속된 학문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말로 연구하고 강의하고 저술하는 일은 선진국에서 유입된 학문에 한국인만의 창의성과 지적인 부가 가치를 더해 우리 학문을 더욱 주체적이고 풍요로운 길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Q.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외에도 국립국어원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조금만 소개해 주세요.
국립국어원은 국민의 국어 생활을 편하게 하고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국어 정책의 합리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조사와 연구, 디지털한글박물관을 비롯한 국어 정보?언어 정보 자원의 구축과 서비스, 공공 기관의 언어 감수, 올바른 국어 보급과 국어 순화, 국어 생활 전반에 관한 대국민 상담, 국어?한국어 관련 교육?연수, 한국어 교육 전문가 양성, 한국어 교육 과정?교재의 개발 보급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표준국어대사전을 편찬?정비하는 일과 국민들이 많이 알고 있는 지식을 설명과 함께 실을 개방형 사전(위키피디아식)으로 만드는 일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통일을 대비해 북한말도 연구하고 있고요.
▲ '국어생활 종합상담실'을 운영하고 '표준국어대사전' 등
다양한 국어사랑 실천을 지원하는 국립국어원홈페이지
현재 제가 담당하고 있는 우리말 다듬기 사업은 특정 직업이나 한정된 계층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국민을 위한 일이기에 보람을 갖고 열심히 임하고 있습니다.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는 주시경 선생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정부와 대중 매체의 관계자들이 지금보다 더 우리말 사랑의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 하겠지만,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과 이 땅의 청년들도 우리말에 조금만 더 관심과 사랑을 가진다면 우리말은 더 밝은 미래를 열어 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