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의 변화를 이끄는 수장 손진책 예술감독을 만나다
게시일
201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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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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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좋은 연극이란 연극을 통해 관객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 국립극단의 변화를 이끄는 수장 손진책 예술감독을 만나다

국립극단이 용산에 새로이 둥지를 틀었다. 용산구 상계동에 위치한 국립극단의 벽은 눈부신 붉은 색. 강렬한 붉은 색 만큼 최근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오이디푸스>와 <3월의 눈>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세간의 주목이 다시 국립극단을 향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손진책 예술 감독을 만났다. 녹차를 따라주며 반갑게 맞이해준 손 감독은 자신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새로운 국립극단에 대하여


한국 연극계의 거장 백성희, 장민호가 출연하여 화제를 모은 연극 <3월의 눈>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앵콜 공연을 확정했다.

▲ 한국 연극계의 거장 백성희, 장민호가 출연하여 화제를 모은 연극 <3월의 눈>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앵콜 공연을 확정했다.


최근 막을 내린 <3월의 눈>이 앵콜 공연에 들어간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손진책 감독님의 10월 부임 후, 국립극단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국립극단 예술 감독직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어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국립극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 이왕이면 젊은 사람이 이 자리에서 국립극단의 변화를 주도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국립극단이 잘되면 한국연극이 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면 한국연극계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수락하게 됐습니다.


미추극단과 마당놀이 30년을 마감하고 떠나는 아쉬움이 컸을 텐데요.

마당놀이는 30년만 하고 후배들에게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었어요. 그런데 마침 국립극단 예술 감독직 제의가 들어온 것이 미추 창단 30년과 맞아 떨어지더군요.(웃음)지금 미추극단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었고 잘 꾸려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국립’극단만의 차별점은 무엇일까요?

국립인 만큼 대표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대표성은 최고의 연극을 지향하고 최고의 연극을 만들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국민의 연극이 되고 국민의 극단이 되어야 하죠. 사립극단은 그 극단 고유의 내향적인 가치를 중요시 할 수 있지만 국립극단은 관객을 향한 외향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국립극단은 한국 연극의 지표가 되어야 하고 새로운 물결을 주도해야 한다는 거시적 책무도 있습니다. ‘국립’은 책임이 큰 이름입니다.


재단법인화로 인한 재정적 부담감은 없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재단법인’은 국고에만 의존하던 재정안정성을 소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도전적인 작품이나 기획사업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립도를 놓여야겠지요.


미추극단을 운영하셨을 때에는 지금의 도움마저도 전혀 없으셨을 테니 그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미추 극단은 재정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예산이 없을 땐 투자를 받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융통성을 부릴 수 있지만 국립극단은 국가기관으로서 지켜야할 선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국립극단에서 ‘재정’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손진책 감독이 이끄는 변화의 바람


연극인은 연극을 통해서 예술가로서 생존해야지 출근 자체가 생존방법이 되어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월급을 받는 연극인’에 대해 비판을 하신 바 있습니다.

연극인이 월급을 받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안정이 연극인을 나태하게 하거나 안이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라면 그 시스템은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극인은 연극을 통해서 예술가로서 생존해야지 ‘출근’ 자체가 생존방법이 되어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연극인의 경제적 안정은 자유로운 예술 활동의 밑거름이 되지 않습니까? 이는 국립극단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인은 생존도 중요하지만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직업입니다. 저는 작품의 래퍼토리화를 천명한 바 있는데, 시즌 별로 단원을 선발하고 계약해서 단원들의 경제적 안정과 예술적 발전의 균형을 맞출 생각입니다. 몇 명의 한정된 배우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보단 전 연극인들에게 혜택이 열려 있기를 바라는 거죠. 예술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또 끊임없이 사회에 반응해야 합니다. 경제적 안정이라는 사탕으로 연극인의 장인정신과 사회적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은 퇴행적인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래퍼토리화는 어떤 의미입니까?

일회적인 작품이 아닌 관객으로부터 사랑을 꾸준히 받을 수 있는 연극을 만들어 몇 년 동안 한 자리에서 연극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좋은 연극을 만들고 좋은 배우가 있어야겠지요.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웃음)


국립극단의 역할로서 ‘교육기능’도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현재 각 대학마다 연극영화과와 같은 관련 학과가 많습니다. 하지만 현재 시스템으로는 전문적인 배우를 배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국립극단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해 전문 연극인 인재를 육성하고자 합니다.


저를 연극배우로 교육하신다면 어떤 교육을 하시겠습니까?

우선, 사회교육을 먼저 시키고자 합니다. 인간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기를 하려면 연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과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회가 어떤 구조와 모순이 있는지, 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지를 알아야겠죠. 그리고 그런 인간을 사랑할 때 좋은 연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 기자를 교육하기위해 빈민촌이나 재판장 등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이끄는 데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100%에 가까운 숫자의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꿈꾸고 있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입니다. 연극의 길은 성직의 길을 가듯 선택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젊은 배우지망생들이 성형수술부터 생각하는 것도 연극을 단순히 엔터테인먼트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얼굴은 삶의 결과입니다. 성형수술로 그 삶의 결과를 은폐하는 것은 ‘가면’을 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연극인이라면 인간의 솔직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연극배우에서 영화배우와 같은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배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야할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어떤 목적으로 하는 지가 문제겠지요. 단순히 연극을 자신의 발판으로 삼느냐, 연극 자체를 자신의 본령으로 삼느냐는 차이가 있겠지요. 그저 연예인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연극을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손진책 감독에게 ‘연극’을 묻다


재단법인 국립극단의 첫 번째 작품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오이디푸스>는 한태숙 연출의 지휘 아래 호평을 받으며 관객 몰이에 성공했다.

▲ 재단법인 국립극단의 첫 번째 작품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오이디푸스>는 한태숙 연출의 지휘 아래 호평을 받으며 관객 몰이에 성공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좋은 연극이란 무엇입니까?

연출가마다 좋은 연극에 대한 기준은 다르겠지만 저는 사회적 효용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연극은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지기만 하는 연극이 아닌 무대에서 관객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들고 싶습니다. 좋은 연극이란 연극을 통해 관객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입니다.


관객이 연극을 어떻게 봐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까?

왕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용이나 형식, 극문학, 배우의 연기, 미장센 등 다양한 기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을 수소 2개와 산소1개라고 인식하지 않듯 연극도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평론가나 평론지가 있습니까?

직접 언급하기는 곤란하죠(웃음). 하지만 가끔 일반 관객들의 블로그를 통해 남긴 공연 후기를 보게 되는데 종종 정확한 지적과 감상이 많더군요.


예술성만을 추구하다보면 관객이 연극에 등 돌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예술성은 현실성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 만들어진 연극은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연극의 위기’는 감동을 못 만든 연극이 위기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연극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돈을 벌겠다는 목적으로만 연극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연극에의 기준은 연극을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연극계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은 기록되는 순간 연극이 아닙니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사람이 연기하는 것을 직접 봐야 비로소 연극입니다. 이것은 매체가 날이 갈수록 발달해가는 이 사회에서 상당히 불리한 특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이 자생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연극만이 특별히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최근 뮤지컬의 인기가 높습니다. 국립극단에서도 뮤지컬을 할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불가능했습니다. 그 이유는 뮤지컬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젠 뮤지컬에 적합한 배우를 새로 선발하면 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저는 뮤지컬과 연극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춤과 음악이 들어갔다고 해서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대사보다 노래가 전달력이 있다면 그 선택을 할 뿐입니다. 다만, 국립극단이 상업적으로 뮤지컬을 제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용산으로 이사 온 국립극단



용산에 새롭게 자리한 (재)국립극단 건물 모습

▲ 용산에 새롭게 자리한 (재)국립극단 건물 모습


용산구 서계동에 위치한 새빨간 국립극단 건물이 인상적입니다. 이 색깔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새로 시작하면서 도전과 열정의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동의할지에 대해 조심스러웠습니다. 다행히 ‘붉은악마’ 이후 국내의 레드컴플렉스가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웃음) 지금은 오히려 좋은 반응을 많이 보여주십니다.


국립극단이 연극을 통해 정부 비판도 할 수 있을까요?

‘국립’이라는 이유 때문에 정부의 입맛에 맞는 연극만 올릴 생각은 없죠. 하지만 연극은 분쟁을 유발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좋은 연극은 해독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연출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우선 5월에 <3월의 눈> 재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그리고 취임 전 약속했던 국립극장의 <화선, 김홍도>를 계획하고 있구요. 국립극장은 현재 진행 중인 「봄 마당 2011」을 잘 마무리 해야죠.


성황리에 진행 중인 봄 마당 2011 프로그램

▲ 성황리에 진행 중인 봄 마당 2011 프로그램


마지막으로 3년의 임기동안 앞으로의 행보를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취임하면서 국민에게 연극을 돌려드리겠다는 것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국민이 연극을 가까이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좋은 연극을 만들어야 할 테고 연극을 또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연극의 문제를 우리가 진단하고 우리가 처방하기도 해야 합니다. 공연, 교육, 문화정책 등등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국립극단의 건물을 나왔을 때 국립극단의 붉은 벽은 전보다 더 붉게 보였다. 분명 손진책 감독을 비롯한 단원들의 뜨거운 열정 때문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 조병휘 대학생기자 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kurenaib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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