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물을 마음에 담다 ①] 세계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경주에 가다
게시일
2011.04.11.
조회수
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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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담당관(02-3704-9044)
담당자
이유진

한국의 보물 마음에 담다 2011 World Heritage Visiting Program 2011 세계유산 연계체험 프로그램


여러분은 요즘 제주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한창 진행 중인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가 생각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에 들어간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이처럼 우리나라에 있는 세계 유산과 전통문화 자원을 통해 관광산업을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2011 세계유산 연계 체험 프로그램”을 주최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도 이번 첫 프로그램인 ‘한국의 보물을 마음에 담다’에 초대받아 참가하게 되었는데요. 다른 어떤 여행보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4월부터 올 11월까지 총 30번에 걸쳐 실시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문화소외계층, 외국인들 역시 참여가 가능하다고 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다른 체험 프로그램 정보도 알고 싶다면?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공식 홈페이지 http://www.chf.or.kr/



‘엄친아’를 키우고 싶다면 양동마을로 가라?


이번 프로그램은 한국관광공사의 트레블리더와 트레블러거분들이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아침 7시 10분이라는 이른 시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미리 도착해서 기다렸는데요. 트레블리더 중 한 분은 버스 안에서 이뤄진 자기소개 시간에서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왔습니다.”라며 이번 여행에 대해 기대감을 한껏 보였습니다. 이렇게 설레는 마음을 담뿍 안고 도착한 첫 목적지는 경주의 양동(良洞)마을이었습니다.

 

양동마을


아무래도 경주를 생각하면 불국사나 석굴암이 떠올리기 십상이죠. 그래서 처음 양동마을을 들었을 땐 ‘이런 곳도 있나?’라는 호기심이 먼저 생겼습니다. 도착해보니 잘 꾸며진 전통 시골마을처럼 보이더군요. 하지만 알고 봤더니 이 마을은 언덕 앞쪽으로만 마을이 있는 게 아니라 언덕 뒤쪽으로도 이어져 군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전에 오랑캐들이 이 마을에 다다르면 마을이 작아 얻을 것이 없다고 여겨 그냥 지나치곤 했다고 합니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양반이 살던 기와집은 언덕 위쪽에 위치하고 반대로 초가집들은 언덕 아래쪽에 위치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달동네와 같은 높은 지형에 모여 사는 형태를 띠는데 말이죠. 저희를 안내해주신 문화 해설사분께서 명쾌한 해답을 알려주셨는데요. 옛날에는 강이 자주 범람했기 때문에 높은 지형에 사는 것이 훨씬 유리했고 더구나 산 중턱이 여름에 더 시원하고 겨울에 덜 춥다고 합니다.


양동마을


양동마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반촌으로 특이하게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종가가 함께 500년 역사를 지켜온 마을입니다. 중요민속자료 제 23호로 지정된 서백당은 월성 손씨 종택으로 “참을 인을 백번 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풍수지리에 따르면 ‘명당 중의 명당’으로 손꼽히는 이 곳은 옛날에 풍수지리학자가 3명의 유명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는데요. 첫 인물이 우재(愚齋) 손중돈, 두 번째가 그의 외손 회재(晦齋) 이언적이며 아직 세 번째 인물은 태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인물이 이 집에서 태어나 사회에 큰 도움이 될 지 기대가 됩니다.


문화 해설사분의 재미난 설명이 끝나고 1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 때 마침 저희에게 다가온 한 남자분이 계셨는데요. 알고 보니 포항 항도중학교에 재직 중인 이영률 선생님이셨습니다. 어릴 적 옆 마을에서 나고 자라 이 마을에 대해 빠삭하다고 자부하신 뒤 저희에게 “이 마을을 알려면 마을 맞은편에 있는 성주봉에 올라가봐.”라 권하십니다. 20여 분정도 걸려 도착한 성주봉 정상은 양동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양동마을


말 물자를 이루고 있는 양동마을은 세 줄기 물이 모이는 곳인데 마을 입구에 보이는 개천, 서백당 뒤편으로 흐르는 줄기 그리고 마을로 달려오는 형산강 줄기가 합쳐지는 형상입니다. 마을 정면으로 물줄기가 들어오면 그 마을은 재물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더구나 양동마을은 교수가 60명, 판·검사가 30명에 이르는 등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는 마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이게 풍수 지리적으로 좋아서 그런 것이다.“라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여러분의 자유에 맡기겠습니다.


여러분께 드리는 알짜배기 Tip!

전통마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집에 들어설 때 함부로 창문을 열거나 안으로 들어가는 등의 행동은 삼가야겠죠? 선진관광의식을 갖춘 여행객이 됩시다!



여러분은 능, 총, 원, 묘를 구분할 수 있나요?


이후 옥산서원까지 방문하고 나니 경주에 짙은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세계 어디를 여행을 가더라도 밤은 하루의 여행을 마무리하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죠. 하지만 경주의 밤은 또 다른 볼거리를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벌써부터 봄기운이 만연한 경주에는 매화들이 환하게 밤길을 밝혀주는 듯 했습니다.


매화나무


대릉원, 계림, 반월성, 첨성대, 그리고 임해전지 순으로 야간 경관 답사가 이루어졌는데요. 사실 저희 같은 경우 천마총만 둘러보고 바로 다음 코스인 계림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대릉원 후문으로 들어왔지만, 시간만 된다면 정문에서부터 걸어오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왜냐하면 대릉원은 경주에 산재해 있는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릉원 전체가 공원으로 조성이 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밤중에 무덤사이를 걷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약간은 오싹하기도 합니다.(웃음) 천마총을 구경하고 나오면서 문화 해설사분께서 능, 총, 원, 묘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는데요. ‘능’은 왕이나 왕비의 무덤을 일컫는 말이고, ‘총’은 무덤의 주인이 확실하지 않지만 유물이 발견되었을 경우 무덤에 붙이는데 ‘천마총’이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지요. ‘원’은 왕세자와 세자비의 무덤이고 그 외의 무덤들은 보통 ‘묘’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첨성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 더욱 친숙한 첨성대입니다. 동양 최고의 천문관측대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고 하네요. 신라시대에는 지진이 잦았다고 전해지는데, 첨성대는 기단(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 안과 아래쪽이 돌과 자갈로 촘촘히 채워져 있기 때문에 잘 버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미 신라시대 때부터 과학적인 내진 설계가 이뤄진 거죠. 첨성대와 계림, 월성은 이어져 있는데요. 많은 경주 시민들이 여기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더군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에서 운동을 하는 시민들이 부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김현정 문화 해설사가 말해주는 석빙고의 모든 것

석빙고의 Q&A

 

"석빙고는 월성 내에 있는 조선 시대 얼음냉장고입니다. 특히 경주의 석빙고는 다른 지역의 석빙고들과 비교했을 때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석빙고이기도 하지요. "


Q. 출입구 쪽의 튀어나온 돌벽은 어떤 기능을 하나요?

ㄱ자 구조로 생긴 이 석빙고는 돌벽이 바람을 모으는 바람받이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석빙고 내부의 온도가 낮게 유지될 수 있던 거죠.

Q. 석빙고의 얼음은 여름에 더위를 식히기 위한 용도로 쓰인 건가요?

물론 더위를 식히는 용도도 있었지만 가장 많이 쓰인 건 치료 목적이었습니다. 열병이 났을 때 얼음의 효과가 크죠. 또 얼음은 음식을 보관하는 데에도 사용되고, 시체를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얼음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조선 시대이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얼음의 양이 달랐다고 전해집니다.

 

 


서울에 경회루가 있다면 경주엔 안압지가 있다


안압지


첫째 날 마지막 코스는 안압지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임해전지입니다. 예전에 낮에 왔을 때는 몰랐는데 밤에 와서 보니 수면에 비치는 임해전의 모습은 가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날씨라 물결이 거의 일지 않아서 마치 거대한 거울로 건물들을 비추는 것 같았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임해전지는 조선시대 때 이미 폐허가 되어버려 ‘기러기와 오리만이 이 곳에 남아 있었다.’ 하여 안압지(雁鴨池)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14면 주사위 ‘주령구’의 모습. 잔치 때 흥을 돋우기 위한 놀이기구였다고 합니다. 당시 발굴 과정의 실수로 진품은 없고 복원품만 있습니다.


▲ 안압지에서 출토된 14면 주사위 ‘주령구’의 모습. 잔치 때 흥을 돋우기 위한 놀이기구였다고 합니다. 당시 발굴 과정의 실수로 진품은 없고 복원품만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박미래 대학생기자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mira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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