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V, 최불암 끝내 못 다 부른 사모곡
게시일
2009.03.25.
조회수
5216
담당부서
방송제작1과()
담당자
추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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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아버지 최불암, 끝내 못 다 부른 사모곡

 -휴먼토크 『내 마음의 고백』 3월 27일(금) 저녁 8시 40분 방송-

 

□  KTV 한국정책방송원(원장 손형기)은 이 시대, 희미해져가는 ‘정(情)’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민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휴먼토크내 마음의 고백』을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40분부터 50분 간 방영하고 있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 국민 배우 최불암

                                    아버지 보다 강했던 어머니의 이야기


□  이번 주에 방송되는 휴먼토크 『내 마음의 고백』에서는 그동안 국민 아버지로 불리며 42년 동안 흔들림 없는 연기 인생을 보여준 최불암이 출연한다. 정작 최불암씨 자신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외아들로 성장했는데, 그의 아버지 최철(48년 작고)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화 관계자들에게는 언론인이자 인천 영화 예술의 선구자로 기억되고 있다. 1948년 최철(당시 35세)씨는 영화 ‘수우’의 개봉 시사회를 하루 앞두고 서울 남산호텔에서 과로로 쓰러졌다. 당시 최불암이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어린 나이로 인천 신흥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휴먼토크『내 마음의 고백』에 출연한 최불암은 1950, 60년대 명동에서 막걸리집을 운영하시던 어머니의 추억을 떠올리며 생전 아들에게 보이셨던 특별한 교육관과 인생관에 대한 이야기를 밝힌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 ’은성’ 그리고 어머니의 외상 장부...


  최불암의 어머니, 이명숙 여사(86년 작고)는 남편(최 철)을 먼저 보내고 인천 동방극장 지하 ‘등대 뮤직홀’이라는 음악다방을 열었고, 이후에는 명동에서 ‘은성’이라는 막걸리집을 운영했다. 이곳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명동백작으로 불렸던 소설가 이봉구는 ‘은성’의 풍경화, 터줏대감으로 불릴 정도 였는데 이 밖에도 문인 변영로, 박인환, 김수영, 천상병, 박봉우, 화가 손응성, 이종우, 김환기 등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자주 찾았다. 이들은 ‘은성‘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시대를 고민하고 예술에 대해 논했다.

    은성의 안주인 이명숙 여사는 별다른 수입이 없었던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받지 못할 것이란 걸 알면서도 외상술을 주며 이들의 예술 활동을 지지해주었다.

    86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라면 상자 가득 외상장부가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돈을 다 받으면 금방 부자가 되겠구나” 생각했다는 최불암. 하지만 외상장부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실망하고 말았다. 외상 준 사람의 이름은 하나도 없고 ‘안경, 키다리. 놀부, 짱구...’ 등 어머니만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자 했던 어머니의 배려에 다시 한 번 큰 가르침을 얻었다. 살아 생전에도 어머니는 몸소 자신의 인생관과 교육을 실천해 보이시며 하나 뿐인 외아들을 기르셨다.


      “너는 남거라, 너의 목숨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 하나, 최불암은 어머니와의 잊지 못할 일화를 고백했다.

      1.4 후퇴 때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하는 상황. 어머니가 먼저 부산으로 떠나게 되셨는데 그 때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너는 남거라. 너를 데리고 가면 삼촌과 이모도 함께 가야한다. 너의 목숨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나 뿐인 외아들을 전쟁 통에 떼어놓고 돌아서는 어머니의 모진 모습에 원망이 컸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아들을 두고 가야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하며 이해를 하게 됐다는 최불암. 이 일화로 최불암은 아들의 목숨 뿐 아니라 ’가족’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어머니의 성품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체격이 크지도 목소리가 높지도 않으셨다. 하지만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사려 깊은 언행과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 모습은 평생 아들의 가슴에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 국민 배우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86년 돌아가시기 며칠 전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간 최불암. 어머니는 아들에게 전에 없는 존대를 하셨다. “녹화는 하셨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밖으로 나온 최불암은 담배를 피우며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괜히  존대를 하시고 그래. ” 그리고 며칠 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최불암은 “인생은 후회의 연속…” 이라며 어머니에 대한 진한 그리움과 후회가 담긴 고백을 토해냈다. 


최불암 시리즈는 ‘탁상 데몬스트레이션?’


      1980년대 전 국민에게 회자되며 웃음을 선사했던 ‘최불암 시리즈’.

      여기에 나타난 원리, 원칙을 지키는 최불암의 캐릭터는 단순한 웃음의 코드가 아니었다. 당시 억압된 시대에 분출할 길 없던 젊은 학생들에게 고지식할 정도로 기본을 지키는 최불암의 캐릭터는 그들이 필요로 하고 꿈꾸는 사람이었다.

      최불암 시리즈는 그야말로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트렌드 코드였던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탁상 데몬스트레이션(demonstration)’으로서의 역할이 숨어 있었다는 최불암의 해석도 소개된다.


   이 밖에도 <바보사랑, 더 사랑하겠습니다>에서는 태어난 지 3주 만에 폐동맥 폐쇄증과 팔로사징증(심실중격결손, 폐동맥협착, 대동맥기승, 우심실비대증 등 네 가지 증상을 함께 보이는 선천성 심장병. 수술하지 않으면 무조건 사망하는 질병) 판정을 받은 김미정양의 사연도 소개된다. 아버지 김응훈(39. 경기도 시흥시)씨가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1차 수술 시기를 놓쳐서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다행히 1차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미정이의 눈물겨운 백일 상. 수술 시기를 놓쳐 실패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딸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던 어머니 황순화(32세)씨와 아버지 김응훈씨의 가슴 아픈 고백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