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웅 개인전: 소품과 소품들

이지웅 개인전: 소품과 소품들

분야
전시
기간
2024.10.15.~2024.11.03.
시간
월~일요일 10~19시
장소
인천 | 코스모40
요금
무료
문의
contact@cosmo40.com
바로가기
https://archivist.kr/media.php?m=l&c=s&i=1729844164

전시소개

사람의 속


홍예지 미술비평가


누군가의 속내를 알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더욱이 그가 무덤덤한 타입이라면? 저 알 수 없는 표정 뒤에 가려진 맨 얼굴은 어떨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궁금해진다. 이지웅은 특별히 의뭉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그냥,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는 사람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데. 그래도 알고 싶다. 지금의 그를 형성해 온 지난날을.

그에겐 어둠이 있다. 내면의 깊숙한 어둠. 그 바닥의 깊이를 가늠해 본다. 그라는 사람을 이루는 지배적인 색깔은 검정이다. 정서가 검게 물든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고통을 많이 겪은 사람이다. 그는 기쁜 일이 생겨도 활짝 웃지 못한다. 해맑은 노랑이 되지 못한다. 가슴 밑바닥에 깔린 검정이 노랑에 섞여 들기 때문에. 열정이 불타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고통받은 사람의 열정은 검붉은 색이다. 진하고 어둡다. 거듭되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그. 아무렇지 않은 듯 삶은 계속된다.


마주 앉은 그의 눈을 살핀다. 검정으로도 가릴 수 없는 소년의 얼굴. 세상에 찌들지 않은 눈동자. 자신의 안과 밖을 계속 응시하는 두 눈. 나는 속으로 묻는다. 그의 삶에 검정이 자리하게 된 건 무엇 때문일까? 그는 필름에 갇혀 있던 어둑어둑한 기억을 꺼내 화폭에 늘어놓는다. 그의 몸을 둘러싼 사물들. 그리고 장면들. 어느새 그와 나는 2005년에 가 있다. 우리는 열 켤레가 넘는 신발들로 어질러진 현관을 지난다. 낡은 소파에 앉는다. 살짝 열린 화장실 문틈으로 눅눅한 습기가 들어온다. 부엌 타일은 오랜 세월 덧입혀진 기름때로 얼룩덜룩하다. 찬장에 쌓여 있는 잡동사니들. 한때 이 모든 광경을 눈에 담았던 소년은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기에 함께 있다. 고요히 바라보는 시선으로서. 카메라를 들고 집 안 구석구석을 담던 그때 그 마음은 흩어지지 않았다. 타임캡슐처럼, 이렇게 이미지 속에 간직되고 있었다. 그래서 십수 년이 지난 뒤에도 오늘처럼 과거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지웅의 그림에서 보게 되는 사람, 장소, 사물은 그때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 자신의 주관적 현실을 충실히 구성하기 위한 요소다. 더 나아가 그림은 당시에 작가가 느꼈을 감정을 복원하는 재생 장치다. 예를 들어, <음악이 틀어진 플레이어>는 이지웅이 즐겨 듣는 힙합이 흘러나오는 장치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통과한 어려운 시절의 경험이 풀려나오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화면 가득 칠해진 검정 속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며 돌아가는 플레이어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특정한 가사와 멜로디 없이도 분명히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그림으로 그려진 것은 시간의 흐름에서 임의로 떼어 낸 한 조각일 뿐이지만, 그 조각 하나로부터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감정적 맥락을 짐작할 수 있다.


각자의 삶에 가라앉은 찌꺼기와 어디서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수면 위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머뭇거리는 입술과 닫힌 가슴을 열 수 있는 치트 키가 있다면? 보다 본질적인 해결책이 있겠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는 우리가 손쉽게 사용하는 수단은 술이다. 나무 패널에 그린 <오늘 한껏 취하고 싶었어요 형>과 <대화의 예열이 필요할 때>는 피상적인 이야기 말고 진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갈망을 끄집어 낸다. 이 욕망은 부당하게도 너무 오랫동안 억눌려 왔다. 대형 걸개 그림 <평생 먹고 남을양>은 그런 억압이 지나친 나머지, 해방의 욕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서 흘러 넘치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사실, 깊은 속내는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꺼내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적절한 타이밍과 긴장이 완화될 수 있는 장소를 신중히 고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기울인 노력만큼 충분한 만족이 따라오면 좋을 텐데, 그런 순간을 맞이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만성적인 불만족과 초조함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 힘은 아마도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오픈하거나 술에 기대기 전에, 내가 나 자신한테 꼭 해 줘야 하는 작업이 있다. 바로 알아주기다. ‘내가 그때 그랬구나, 그런 감정을 느꼈구나, 무척 혼란스러웠구나’, 어떤 비난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기. 이런 식으로 이지웅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가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소년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 상황에 적응해 나갔고, 이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열망에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계산된 구도 없이, 어떤 예술적 야심도 없이, 그렇게 순간순간의 직감에 따라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지웅의 삶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에게 깊은 자기 이해를 촉구하며 위안을 약속했다. 그는 이 “우연한 발견”에 따르는 행운을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흡수해 그리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물들이 또 하나의 시공간을 이루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날마다 꼼꼼하게 바깥 세상을 스크랩하고 콜라주해 온 이지웅은, 이번 개인전에서 방향을 전환해 내 안의 나를 마주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2005년과 2024년 사이, 결코 작지 않은 시차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로 만들어 주는 일관적인 요소가 그림에 녹아 있다. 그 바탕이 된 근원적 이야기 – 즉, 온전히 소화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지금의 그에게 말을 건다. 일상의 물결에 스며들어 지속적으로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이야기다. 이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자기가 직접 경험한 일의 가치를 오롯이 느끼게 된 것 같다. 바로 그런 자기 신뢰의 기반 위에서 거침없는 붓질이 가능했을 것이다. 가슴 먹먹한 검정도 덤덤하게 쓰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의 속이 서서히 드러나는 순간. 어떤 과장도 없이, 담백하게 전해지는 감정들. 지금, 여기, 공기의 미묘한 흐름과 말없는 사물들과 함께 울고 웃던 사람들의 이미지가 모여 이지웅이라는 비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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