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벗하며, 나가고 머물기

친하게 벗하며, 나가고 머물기

분야
전시
기간
2024.10.17.~2024.11.10.
시간
화~일요일 10:30~20:30
장소
서울 | 오온
요금
유료 3,500원
문의
info_ooo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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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hivist.kr/show/show_scroll.php?idx=1728439402

전시소개

오온 시리즈 2024

친하게 벗하고, 나가며 머물기


글 정민주

 

오온에서는 전시 《저-선생(楮先生)》(이하 저선생), 《저선생탐색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더라도》(이하 저선생탐색기)를 거치며 한지를 바탕재로 작업하는 작가들에 집중해 왔다. 저선생의 모티브였던 모영전을 되짚으며 친구들(붓, 먹, 벼루-전시에서는 종이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일컫는다.)을 불러 모았다. 《친하게 벗하고, 나가며 머물기》(이하 전시)에서는 참여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뿐 아니라 웹진의 필진으로도 참여하며 동양 재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살폈다. 재료의 제작 과정은 웹진에서, 작품의 제작 과정은 전시로 연결하여 다각적으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들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6개월간 2번의 리서치 트립과 4번의 워크숍을 진행하였고, 기존에 성립되어 있던 작업 방식을 재탐색하며 실험하는 기간을 가졌다. 동양 재료를 다루는 작가들의 세밀한 감각을 되살피기 위한 시도가 담겨 있다.


 

“모영(붓)은 강주 사람 진현(먹)과 홍농 사람 도홍(벼루)과 회계 사람 저선생과 친하게 벗하면서 서로 밀어주고 이끌어 주며, 나가고 머물기를 반드시 함께 하였다.” ─ 한유 모영전 중 발췌


얇은 한지는 뱉어내는 것이 아닌 담아내고 스며드는 마티에르matière를 갖는다. 그의 질감은 위로 울퉁불퉁한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울퉁불퉁하다. 그것은 한지의 결과 입자를 이해해야만 성립될 수 있다. 단순한 듯하지만 꽤나 다양한 채색 재료들이 ‘전통’의 안과 밖에 존재하고, 동시대에서는 많은 가짓수로 탈락한다. 작가들은 기간 중 ‘오온 실험실’(가칭)을 통해 자신의 방법론에 대한 실험을 시간의 흐름과 재료의 종류에 따라 기록하였고, 일종의 ‘일지’ 같은 것을 남겼다.

권태경 작가는 기존에 주로 사용하던 푸른 계열의 채색 재료를 중심으로 실험하였다. 그의 제안은 ‘계속해서 작업을 지속하는 방법’ 에 대한 것이었다. 적은 수요와 노화된 공급으로 사용하던 종이의 제한과, 높은 물가로 계속해서 올라가는 평범한 물감을 일상을 져버리지 않은 채 지속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작가는 두꺼운 장지(보통 3합)를 적시고, 물감을 스미며 작업한다. 물을 넣은 만큼 맑았던 물감은 마르면서 종이 위에 안착하여 시각적인 효과를 낸다. 작가는 이 행위를 반복하며 보이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모유진 작가는 얇은 순지를 덧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다. 이 작업 방식은 현재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일반적인 밀가루 풀을 사용하면 세월이 지나 노랗게 변색될 가능성이 있다. 작가는 이번 계기를 통해 전통 방식의 수침풀에 대한 실험을 하였다. 더하여 평소 사용하던 중국산 순지와 국산 순지의 차이점을 비교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도에는 품질과 가격 사이의 망설임이 담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돌탑을 관찰하며 시간에 따라 쌓이는 마음의 무게, 비워짐과 채워짐의 과정에 대한 고민을 시각적으로 기록하였다.


최아란 작가는 평소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활용하여 작업한다. 그 중 하나는 모사하고, 복원하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정을 그리는 과정에서 느꼈던 감각을 재해석하여 힘과 권위에 대한 의미를 뼈와 리본으로 표현하였고, 비단과 금속 안료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였다. 전시장 안에서 비단 위에 그려진 뼈의 잔해들이 영정의 유리 위에 비칠 때면, 두 작품의 가진 시간이 중첩되며 마치 영정의 X-ray를 보는 듯하다. 앞서 한지의 마티에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비단은 이와는 좀 다르다. 비단을 이루고 있는 실이 수직과 수평으로 직조되어 있고, 섬유의 특수성으로 인해 스미거나 번지는 작업엔 유리하지 않다. 대신 아교포수와 배채 작업을 통해 비단의 결을 정돈하면 안료를 올릴 수 있는 탄탄한 배경이 된다.


현승의 작가는 먹을 주로 사용하여 검정의 화면을 만들며 우리를 둘러싼 생태 환경과 그 파괴를 다룬다. 작가는 먹 뿐만 아니라 파스텔과 같은 건식재료를 더하여 검정의 화면을 극대화하여 표현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동양 재료만 사용하여 회화작업을 하는 것을 목표로 먹과 호분을 실험하였다. 사실 먹은 동양 재료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재료 중 하나이다. 허나 현대에서 전통먹은 찾아보기 힘들고, 현대먹으로 불리는 계량된 먹들이 대부분이다. 작가는 국내 유일의 전통먹인 한상묵 송연먹을 중심으로 평소 사용하던 먹물을 비교하였고, 이와 더불어 호분의 여러 성질을 탐구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했다.


동양 재료를 계속 살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전시의 뒷이야기와 여러 과정들은 작가별 노션 페이지(기록)와 오온의 웹진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전통 먹은 재료 자체가 없어요. 재료가 어디 있냐, 뜬구름 속에 있어. 먹 만드는 일은 뜬구름 잡는 일이라 그래.” ─ 한상묵 전통먹 장인


지금 우리의 세상은 편의성에 의해 탈락하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붙잡고, 잘 티가 나지 않더라도 다시 묶어 매는, 그런 것들로 때론 세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니 그을음을 모으듯 미세하고 꾸준하게, 우리만의 속도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동양, 그리고 전통 재료를 바탕으로 지난 6개월여간 작가들의 여정을 전시장에서 감상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전시장에 놓인 패드를 통해 전시의 뒷이야기를 살피실 수 있습니다.

❋ 다음 링크로 접속하시면 오온의 웹진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URL: https://www.ooooon.sit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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