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센터 화이트블럭] 김범중 개인전 ≪Threshold≫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김범중 개인전 ≪Threshold≫

분야
전시
기간
2025.07.23.~2025.08.31.
시간
[주중] 오전 11시~오후 6시 [주말 및 공휴일] 오전 11시~오후 6시 30분
장소
경기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요금
무료
문의
031-992-4400
바로가기
https://www.whiteblock.org/%EC%A0%84%EC%8B%9C/view/5520912

전시소개

Threshold: 김범중의 회화적 공간 탐구에 대하여

김범중의 작품을 마주할 때 떠오르는 감정(단어) 중 하나는 ‘영속적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압도적인 감정에 가깝다. 그러나 영속적인 무언가에 대해 고찰하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영속성의 폭은 그리 넓지 않으니까- 쉽게는 비 내리는 바다의 광경 정도다. 바다는 영겁에 걸쳐 변화하지 않는 존재지만 바닷물이 증발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비를 내리는 영원한 사이클을 통해 조금씩 교체되어간다. 그렇다고 바다라는 총체가 변화하는 일은 없다. 바다는 늘 똑같은 바다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인 동시에, 하나의 순수하고 절대적인 관념이기도 하다. 바다에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느끼는 건 (아마도) 그런 종류의 엄숙함 일 것이다. 이쯤에서 영겁에 대해 생각하기를 단념하고 작품을 생각한다. 화면 위에 그려진 것. 아니 그려지기보다는 그어졌다는 표현이 적합할 만큼 정교하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짧은 스트로크만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는 그 선들. 한 선 한 선 더해지는 과정은 일정한 규칙을 따르지만 반복 너머 분명한 차이를 발생시킨다. 마치 자연의 순환에 의해 교체되어가는 바닷물처럼, 순환과 반복을 통해 차이를 가지는 그 지점. ‘임계점’을 의미하는 ‘Threshold’는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이 선들로 치환되어 나타나는 그 지점을 암시한다.


김범중의 작업은 완결된 형상이나 고정된 의미를 지시하지 않는다. 그의 화면은 어떤 대상을 재현하기보다는 끝임없이 자신을 유예하며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반복되는 선들의 축적을 통해 형상이 아닌 생성중인 감각의 장이 펼쳐진다. 반복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늘 어긋남을 내포하는 ‘차이의 반복’이며 반복 속에서 의미는 생성되지 않고 지연된다. 이 지연 자체가 곧 김범중 작업의 핵심이 된다.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차연(différance) 개념이 여기서 작동한다.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끝없이 미루어지며 차이를 생성하는 운동 속에서만 감지된다. 선 하나하나는 전과 다르고 또 이후 와도 다르다. 그 안에서 시간과 감각, 공간은 고정되지 않은 채 미세하게 진동한다.


화면 위에 쌓이는 선이 형태를 넘어 공간을 불러낼 수 있을까. 김범중의 작업은 이 문제에 응답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질문을 확장하며 평면에서의 공간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한다. 겹겹의 선들은 평면 위에 밀착해 있지만 동시에 그 너머의 시공을 구축한다. 멀리서 바라볼 때 화면은 단지 하나의 회화적 대상이 아니라 시선과 감각, 시간의 궤적들이 충돌하고 교차하는 어떤 ‘장소’로 보인다. 그것은 완결되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재구성되는 현장으로 보이는 것이다. 한껏 눈을 들이밀어 다가가면 표면의 질감과 물성은 또 다른 차원이다. 관람자는 그의 화면이 단순한 선의 중첩이 아닌 경험과 사유의 기록임을 인식하면서 작가가 만들어낸 회화적 경로를 대리 탐험하게 된다.


작가는 전통적인 회화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붓과 캔버스 대신 연필과 장지(Korean Paper)라는 미묘한 조합으로 기록과 흔적, 지움과 남김 사이의 경계를 재구성한다. 서사와 형상이 제거된 자리에서 매체에 대한 탐구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김범중의 작품은 재료와 지지체,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작업의 중심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에게 선은 표현의 방식이 아닌 전통적 기표체계로부터의 이탈을 도모하는 수단에 가깝다. 규칙적인 선들로 응축된 그리드는 예측하기 힘든 에너지를 내포하고 다층의 레이어는 일정한 리듬으로 반복되지만 중심없이 떠 있으며 의미는 계속 다른 층위로 미끄러진다.


단어 자체에 추상적 개념을 가지는 작품의 제목들 - Anodyne, Coaxial, Coherence, Ignition, Impedance - 은 특정한 이미지를 환기하는 대신 음향 및 여타 공학 등에서 의미망을 형성하는 기술적 어휘, 즉 신호의 흐름과 전달, 저항과 간섭 등의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신호의 간섭 없이 정렬된 상태(coherence), 흐름에 대한 저항(impedance), 중심과 외부를 잇는 구조(coaxial), 무감각(anodyne), 작동을 일으키는 계기(ignition) 등은 모두 감각과 의미가 전달되는 조건 혹은 그 조건의 불안정성과 연결되어 언어적 의미의 지시보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지연시키는 기호적 운동을 구성한다. 이 단어들은 전시 공간에 리듬과 압력, 방향성을 부여하며 김범중의 작업에서 반복과 차이, 흐름과 유예, 도달과 지연이라는 핵심 주제들과 정교하게 평행을 이룬다.


'Threshold'는 중심이 아닌, 흐름이 뒤틀리고 의미가 머뭇거리는 문턱 그 자체이며 김범중의 작업은 그 문턱 위에 놓인 상태로 존재한다. 때문에 ‘Threshold’는 그저 이미지를 드러내는 평면이 아니라 그의 화면이 구축하는 공간 깊숙한 곳에 자리한 고유한 특성과 맞닿아 있는 시각적 장치를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작가 본인만이 해석할 수 있는 암호처럼, 현재의 시점은 아닌, 그러나 언젠가 도래할 또 다른 층위에 대한 단서로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임계점’은 일종의 연막일지도 모르겠다. 이쯤이면 그의 화면이 매체의 실험이나 감각의 배치 차원이 아닌, 감정의 농도와 인식의 흐름이 교차하는 어느 장소(field)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의 경로에서 길을 잃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원채윤ㅣ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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