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게시일
- 2009.07.03.
- 조회수
- 2614
- 담당부서
- 기획편성과(02)3450-2195)
- 담당자
- 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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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떠날 수 없는 4대강 사람들의 삶과 애환
KTV특별기획 다큐멘타리 4부작 <4대강 사람들>
- 7월 6일(월)~7월 9일(목) 오후 13:10 방송 -
□ KTV 한국정책방송(원장 손형기)은 4대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려, 낙동강ㆍ금강ㆍ영산강ㆍ한강과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2개월간의 현장취재를 통해 생생하게 담아낸 KTV특별기획 4부작 <4대강 사람들>을 7월 6일(월) 부터 4일간 연속 방송한다.
□ 제1부 <낙동강 사람들>(7.6 방송)에서는 한평생 뱃사공으로 살아온 낙동강 마지막
뱃사공 최보식씨 부부,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삼강주막의 주모 김국지씨,
낙동강 오염으로 어부 일을 그만 두었지만 강을 떠날 수 없어 매운탕 가게를 차린
김성옥씨등을 통해 낙동강과 함께 해온 삶과 애환을 만나보고, 2002년 물난리 이후
잦은 수해로 마을 전체가 이사를 가야만 하는 김해 시산마을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들어 본다. .
“여기 물만 가득하게 차 있으면 참말로 끝내줘요”(김국지, 71세, 경북 예천군, 삼 강주막 주모)
“집이 다 허물어져도 여기 안 떠나고 강물 바라보고 평생 죽을 때 까지 여기 살 거야” (낙동강 뱃사공 최보식, 68세, 김순득, 61세 씨 부부, 경북 달성군)
“이 밑에 내려가면서 마을이 있는데 배 다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다 없애버리 고.... 지금 강 살아난다고 하면 강에 돌아올 사람 많아요”(김성옥, 69세, 김해시 대동면)
□ 제2부 <금강 사람들>(7.7 방송)에서는 비단처럼 아름다운 강, 금강의 쇠락을 삶속에서 겪으며 지켜본 주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소망을 담았다. 어부였으나 물고기를 더 이상 잡지 못해 타 지역에서 물고기를 들여와 민물고기 도매상을 하는 표정문씨, 금강 물줄기로 농사를 짓는 함태우씨, 야채가게, 치킨집 등을 전전하면서도 아직 어부의 꿈을 접지 않은 이상훈씨, 금강 뱃사공을 자처하는 50년 경력의 송동현 선장의 금강이야기를 만나본다.
“강에서 고기만 잡던 사람이 어디가 크게 일할 줄 알겠어요... 힘들어요 먹고 살기가 너무”(표정문, 55세, 논산시 강경읍, 민물고기 도매상)
“옛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밑에 퇴적물이 없어져 좀 맑은 물이 되었으면 좋겠고....”(함태우, 53세, 충남 서천군, 농부)
“금강이 다시 살아나서 옛날처럼 된다면 나는 그날로 다시 배를 탈거야”(이상훈, 51세, 충남 부여군, 식당 운영)
“(강 깊이가) 얕은 데는 2미터 안되는데도 있고...얕은 데 걸려서 후진 전진하다보면 미션이 나가요 고치려면 돈도 많이 들고...”(송동현, 81세, 충남 부여군, 유람선 선장)
□ 제3부 <영산강 사람들>(7.8 방송)에서는 황포돛배를 운전하는 이동규씨, 영산강의 오염으로 타지 양식 장어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운 구진포 장어식당 주인 김상철씨, 마을 옆에 영산강이 흐르고 있어도 농업용수로 쓸 수가 없어 지하수를 퍼 올려 밭농사를 짓는 박지수씨, 그리고 십년 넘게 영산강 뱃길살리기운동을 해온 김창원씨와 영산강 350리 길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김경수씨도 만나본다.
“예전에는 전부 자연산만 했지. 그때는 양식할 필요가 없었으니까.”(김상철, 64세, 전남 나주시 구진포, 장어식당)
“물이 깨끗할 때는 영산강이 호남의 젖줄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젖줄이 아니고 핏줄이에요. 핏줄이 되었어요. 오염된 핏줄”(이계석, 62세, 전남 함평군, 영산강 어부)
“20년 전만해도 영산강 물이 깨끗해서 저희들이 목욕도 하고 했었는데 지금은 도저히 영산강 물 가지고는 농업용수로도 활용하기 힘들게 됐습니다. (박지수, 59세, 전남 영암군, 농부)
□ 제4부 <한강 사람들>(7.9 방송)에서는 인근에 충주댐이 있고 남한강에서도 가까운 충북 충주시 이류면 탑말에서 물 부족으로 관정공사를 하는 사연과 단양군 온달장군 동굴에 물 막이벽 공사를 하는 이유를 이해송 문화해설사에게 들어보고 가뭄과 홍수에 노출된 여주 등 남한강 유역 사람들의 애환을 소개한다.
“동네 하나있는 샘을 밤 세시되면 다 퍼가서 아침에 늦게 온 사람들은 먼저 퍼갔다고 욕하고”(이갑순, 70세, 충주시 이류면 수주리)
“거의 물이 없다시피 해요. 강이라고 볼 수 없는 거죠. 강이 강 역할을 못하는 거죠”(어주용, 59세, 수주리 이장)
“값은 둘째 쳐 놓고 물에 버리지만 않으면 괜찮을텐데 기껏 해놓으면 물이 쓸어가고 다 부역한거지 뭐...강이 끼어 있어서 뚝딱하면 (물이) 들어요”(신화송, 73세, 경기도 여주군, 농부)
“81년도에 가물치 양식을 시작했는데 잘 되었는데 물난리 때문 몽땅 떠 내려갔어요... 두 번씩이나... 처음에는 벙벙했는데 두 번째는 죽고 싶죠”(박경학, 89세, 경기도 양평군, 양식장 운영)
□
4대강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에겐
강은
생활이며 삶 그 자체였다. 홍수와 가뭄, 오염은
그들에겐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강의 소중함을 알기에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강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하는 4대강 사람들, 그들의 간절한
바람을 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