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마다 숨은 옛 기억의 흔적들
게시일
2010.05.31.
조회수
5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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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조수빈

 이제 공공디자인을 빼놓고 정책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벤치나 간판 등 거리를 채운 각종 공공시설물로부터 건축물과 도시 기반시설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이 디자인의 영역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디자인이 그저 외양을 바꾸는 것이 아닌 우리의 생각과 정서, 인간관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인 까닭이다. 대한민국 정책포털 ‘공감코리아’는 연속기획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를 통해 디자인 시대를 살아가는 현 정부의 공공디자인 철학과 정책을 총 1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디자인의 옷’을 입고 새로 태어난 대구의 중심거리 동성로. 거리가 바뀐 이후로 평일 1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든다는 이곳엔 최근 무리 지어 다니는 관광객들의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건 깔끔하게 단장된 거리의 외양이 아니다. 거리 곳곳에 숨겨진 특별한 이야기가 이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주된 이유이다.


이 무리의 선두엔 항상 ‘문화유산해설사’가 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거리에서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끄집어내 이야기해주는 것이 이들의 임무이다.


실제로 대구 도심에는 문화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골목들이 많다. 진골목을 비롯해 약전골목, 남성로, 종로, 3·1만세운동길…여기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수십·수백 개의 골목들까지. 국채보상로와 약전골목으로 이어지는 동성로는 실핏줄처럼 뻗어있는 이런 골목들로 접어드는 일종의 문지기이자 큰 줄기인 셈이다.


한 세기 전 근대화의 기억 간직한 ‘대구 근대골목길’


동성로를 따라 쭉 걷다보면 한의원과 약재상이 즐비한 ‘약전골목’과 만나게 된다. 이 골목에서 가지처럼 뻗어나간 수십 개의 골목 가운데 ‘진골목’과 ‘종로골목’이 있다.



김원일의 소설 마당깊은집을 재현해놓은 종로골목 초입부

김원일의 소설 ‘마당깊은집’을 재현해놓은 ‘종로골목’ 초입부.


진골목은 달성 서씨들의 한옥집으로 유명하며, 종로골목은 김원일의 소설 ‘마당깊은집’의 주 무대가 된 장소이다. 대구 중구는 이곳에 한옥을 구해 체험공간과 도서관으로 꾸미고, 1950년대 대구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마당 깊은 집’의 느낌을 재현해 놓았다.


박동신 대구 중구청 도시관리과장은 “한국전쟁 직후의 생활상이 그대로 담긴 소설 ‘마당깊은집’은 대구 도심의 중요한 스토리 자산”이라며, “소설 속의 현장을 둘러보며 되살린 김원일 씨의 기억과 소설 속의 이야기들을 함께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고택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고택. 뽕나무길로 연결된다.


동성로 서쪽 구역인 계산동 일대는 가히 ‘대구 근대 문화의 보고’이다. 영남지방 최초 고딕양식 건물인 ‘계산성당’과 그 사이로 난 골목 가운데 뽕나무골목이 있다. 이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의 주역 서상돈 선생의 고택을 만날 수 있다.


이상화, 서상돈 고택 부근에는 근대 골목길을 형상화해 도로를 디자인하고, 당시 지적도를 바닥에 그리고 붉은 담장 등을 통해 골목 분위기를 재현했다. 또한 인근에 뽕 나무를 심어 당시의 이미지를 살렸다



이상화 고택으로 이어지는 근대골목길(좌), 길옆 벽면과 바닥도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우)

이상화 고택으로 이어지는 근대골목길(좌), 길옆 벽면과 바닥도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우)

 

이어지는 3·1 만세운동길 입구에는 대구의 3·1운동에 참여한 인물들을 조명하는 조형물이 설치됐다. 아울러 만세 운동길 90계단에는 거리 갤러리를 만들어 3·1 운동 당시의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1890년대 후반, 기독교와 서양의학이 최초로 전파된 동산이 하나 있다. 근대 건축물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산 일대는 대구 운동의 발상지로 새로 밝혀지면서 성지로도 불린다.



3·1만세운동길로 유명한 90계단

3·1만세운동길로 유명한 90계단


지난 9일 이곳을 찾은 황인창(37) 씨는 “거리와 건물 자체가 전부 역사적 사료”라며, “역사를 담은 장소라서 더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는 조영수 씨는 “평소 관광객들에게 설명해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이 대구 도심에 숨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들이 발굴돼 더 풍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라해도 있는 그대로…1000개 골목 연결해 관광자원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구 중구는 지난해 6월 대구 계산동 일대를 이처럼 역사와 문화가 살아숨쉬는 거리로 탈바꿈하는 ‘대구 근대문화골목 역사경관 조성사업’을 마무리했다.


사업은 계산동 일대를 중심으로 골목골목 이어지는 700m의 거리를 따라 전문가들의 참여 속에 역사 문화적인 얘깃거리에 맞춰 조형물 설치, 조경, 거리 디자인 개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일상장소를 문화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지난 2006년 8개 지자체 9개 사업, 2007년 14개 지자체 17개 사업을 지원해 왔다. 이 중 대구 중구의 ‘근대문화 공간디자인 개선’ 사업은 일상적인 장소를 관광 명소로 변모시킨 모범사례로 꼽힌다.


“중국 베이징 관광객이라면 과연 어디를 찾겠습니까. 새로 지은 빌딩일까요, 옛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소일까요. 초라해 보여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 사업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이정호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의 말이다. 인위적인 도시계획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골목에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되살리는 작업은 이런 철학이 바탕이 됐다.


대구 중구는 이 사업을 확장해 도심 곳곳에 실핏줄처럼 분포된 1,000여개의 골목을 연결, 제주도의 ‘올레’를 뛰어넘는 관광자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대도시마다 모두 재개발 열풍이 불고 있는데 지주나 건물주 몇 사람에게 단기적으로 이익을 줄 뿐 모든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며 “문화적으로 접근해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고 깨끗하게 만들면 관광객은 저절로 몰리고 도시 경쟁력도 함께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공감코리아(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