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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 제 2053대 장관 도종환

연설문

2018 하반기 문화체육관광부 퇴임식
연설일
2018.12.28.
게시일
2019.03.12.
붙임파일
존경하는 문체부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리고 오늘 퇴임하시는 여러분들의 가족분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은 ‘낙화’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바 있습니다.

여러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지금
이별의 이 순간이 허전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또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분들도 계십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앞에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30년 이상의 시간이 아마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인생을 향해서 걸어가는 첫 발걸음의 시작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에 행복과 희망이 가득하기를
마음속 깊이 기원합니다.

이제 공직자의 자리, 국민의 봉사자라는 짐을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상에 여러분이 하고 싶었던 소망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브라질 시인 마샤 메데이로스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라는 시에서
여행을 다니지 않는 사람,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자기 인생의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
자기 내면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발견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여러분은 남은 시간, 벌써 많은 계획들을
세우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여행도 다니시고 그동안 못 읽었던 책도 읽으시고,
자기 인생의 깊은 울림을 주었던 음악도 찾아 들으시고,
그리고 그러는 시간 속에 여러분 안에 있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는 그런 시간으로
남은 시간들이 채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문체부 가족 모두는
언제나 여러분의 제2의 삶을 뜨겁게 응원할 것입니다.

권영섭 부장님, 금기형 국장님, 김진택 주무관님,
송경희 과장님, 윤문원 부장님, 이원구 주무관님,
이형호 부장님, 조연갑 단장님, 조평길 주무관님,
최병익 사무관님, 최영규 과장님, 한영흡 과장님

국민들이 문화로 행복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하고 아름답고 여유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노력해주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노고를
우리 모두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장 빛나던 시절, 가장 소중한 이야기들을
우리 모두가 추억하고, 간직하겠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지금 몇 시를 지나고 있을까요?
오후 5시 정도에 와 있을까요?
계절로 비유한다면 여러분은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요?
봄, 여름은 지났구요. 가을도 지났구요. 늦가을쯤 와있을까요?
그러면 다 끝나는 걸까요?

가을쯤에 단풍이 가장 고와서,
나무의 생애서 가장 주목받는 시간이 늦가을이죠.
물론 겨울도 남았죠.

인생의 오후 5시이면, 6시, 7시, 8시면 어두워지지요.
어두워지기 전 6시쯤이면 해가 질 때, 노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황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가을쯤에 와 있다고 해도 남아있는 계절이 있고,
오후 5시쯤을 지나고 있다고 해도
아직 황홀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일을 다 마무리하고
우리 주어진 역할이 다 끝날 때,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뭐가 남을까요?

우리가 준 것이 남습니다.
사랑을 주면 사랑이 남고, 상처를 주면 상처가 남죠.
베푼 것이 남습니다. 그 중에 가장 남는 것이 사랑입니다.

남은 시간 사랑도 베풀고, 시간이 남았으면 시간도 베풀고,
능력이 남았으면 능력도 베풀고,
그리고 마음이 있으면 마음을 베풀면
그것들이 남습니다.

제가 쓴 시 중에 가을 날, 저녁 무렵 빨갛게 물든
참 벚나무를 보면서 내 인생의 시간이 몇 시쯤 지나가고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쓴 시가 있습니다.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시 입니다.
그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여러분이 여러분의 일을 다 끝내고,
지상에서의 역할까지 다 끝내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여러분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손을 들고 하늘을 향해서
“저 분 참 좋은 분이었어요. 저 분 우리가 정말 사랑하던 분이었어요.”
라는 말씀을 듣게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