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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 제 2027대 장관 도종환

연설문

새 정부 지역문화 정책 방향과 과제
연설일
2017.07.25.
게시일
2018.11.14.
붙임파일
유은혜 의원님, 진선미 의원님, 김광수 의원님을 비롯한 여러 의원님들, 발제와 토론에 참여하시는 현장 전문가들을 모시고 지역문화진흥과 문화분권을 토론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촛불 민심은 우리 사회의 낡은 질서와 관행을 바꾸고 ‘나라를 나라답게’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안겨주었습니다. 이 준엄한 국민적 요구 속에 문재인 정부는 출범했고 이제 2개월 남짓 지났습니다.

아시다시피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 중 하나가 지방분권입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역에 주어진 권한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지역간 격차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또한 우리 사회의 적폐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제 실질적인‘지방분권’을 이뤄내 자율과 자치로 생동하는 지역을 만들고, 지방이 소외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화정책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문화야말로 개인과 공동체의 상상력, 그리고 지역의 자율성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정치와 행정은, 국민들이 좀더 가깝게 문화를 향유하고 참여하게 함으로써 삶의 질을 개선하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를 보전하고, 지역에 맞는 다양한 상상력이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야합니다.

이제 문화분권은‘가치’를 체감하는‘실천’이 되어야 하고,‘관념’에서 벗어나‘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문화분권’실행의 중요한 단초를 찾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역문화’가 곧 ‘문화 그 자체’이다.


저는 장관이 되기 전부터 과연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해왔습니다.‘문화’는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미학적으로는 예술(art)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넓게는 개인과 집단의 생활양식(way of life)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문화는 곧 삶이고 일상입니다. 문화는 물과 공기처럼 일상적으로 마시고 또 나누는 것입니다. 문화는 마음에 전해지는 감동입니다. 문화가 있는 삶은 가난해도 행복합니다. 100일 넘도록 광화문 광장과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밝혀낸 현장 또한 문화입니다. 단순한 시위가 아닌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낸 것은 시대정신을 놓지 않은 우리 국민의 진일보한 정치의식과 문화 덕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미래세대는 이러한 문화적 자산을 역사로 기억하고 학습하며 공유할 것입니다.

문화는‘지역’과 일상을 빼고는 논할 수가 없습니다. ‘지역’은 중심과 주변부로 나뉘는 것이 아니며, 중앙과 지방으로 나뉘는 것도 아닙니다. 한 지역에서 태어나 관계를 맺는 우리 모두는 각자‘지역’을 기반으로 일상을 만들어갑니다. 자연과 언어뿐만 아니라 독특한 삶의 방식과 문화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지역입니다. 그 지역과 일상이 가진 고유한 환경과 개별성이 오랫동안 문화를 축적해왔고 또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낸다 할 것입니다.

문화는 일상적 삶과 분리할 수 없으며, 국민의 삶은 지역에 기초하므로, 우리 문화의 형성과 발전은‘지역’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지역문화’는‘문화’의 한 부분이 아니라‘문화 그 자체’입니다.

저는 지역문화를 진흥해야 하는 더욱 구체적인 이유를 오늘날 새롭게 시대정신이 된‘민주주의 구현’과‘다양성 보호’에서 찾고자 합니다.

지역의 문화여건을 개선해 국민 모두가 일상에서 문화적 권리를 보장받는 것, 즉 지역을 기반으로 한‘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지역문화진흥의 중요한 이유입니다.

한편 이미 일상적으로 느끼는 문화의 세계화는 국가와 지역의 고유문화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린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문화적 보편주의가 확산되고, 극단적으로는 패스트푸드처럼 획일화, 상업화되어 문화 본연의 가치가 훼손되기도 합니다. 또 소위‘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엄중한 사건도 이 다양성과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렇듯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간, 지역간 문화적 정체성과 다양성을 보호하는 것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무대에서도 당당한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입니다.


지역문화 정책의 흐름 : 성과와 반성


지역문화 진흥, 문화자치와 분권의 실현은 비단 문재인 정부만의 현안이 아닙니다. 정부 차원에서 문화정책이 추진된 이래 줄곧 강조되어왔고, 이와 관련된 정책이 나온 바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국가정책이 그러하듯이 반면교사로 삼을 것들이 꽤 많습니다.

6공화국 시절에‘문화복지’의 개념이 처음 등장했지만 주로 공보행정, 전통문화 및 문화유산의 보전을 통한 문화적 주체성 강조가 핵심이었습니다. 

문화정책이 지역으로 눈을 돌린 것은 지방자치제의 시행과 궤를 같이 하지만, 본격화된 것은‘국민의 정부’와‘참여정부’에 이르는 시기였습니다. 이 두 정부의 문화정책은‘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팔길이 원칙)과, 국민이 문화예술의 주체라는‘문화민주주의’의 가치를 토대로 추진되었습니다. 이전 정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전환기였고, 지역문화 정책 또한 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국민의 정부는‘문화입국(文化立國)’을 국정목표로 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2001년 지역문화의 해’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각계 전문가와 유관기관 관계자들로 구성된‘지역문화의 해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지역문화컨설팅, 지역특화형 문화프로그램 등과 같은‘지역문화의 해 10대 사업’도 선정했습니다. 

이른바‘백화제방·백가쟁명(百花齐放, 百家争鸣)’대토론회를 개최해 지역문화의 현안을 파악하고 실효적인 정책과제를 도출하고자 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 토론회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토론회는 숙의민주주의(熟議民主主義, deliberative democracy)에 입각해 정부의 정책 현안을 풀어내려 한 점에서 우리 문화정책사에 한 획을 그었고,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는 사회 전 부분에 걸쳐‘자율, 참여, 분권’에 입각한‘국가균형발전을 국정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지역문화 정책 또한 그간의 이벤트성을 띤 단기정책에서 벗어나 지역문화의 기반 구축을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비록 당시 국회통과는 좌절되었지만 「지역문화진흥법」제정이 참여정부 때 처음 제기되었고, 문화관광부 내 지역문화과의 신설, 광주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본격 추진, 지방문화원의 지역문화 거점화, 지역 문화산업 및 축제의 육성 등이 대표적인 정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 문화정책은 문화민주주의의 가치보다는 선택과 집중, 효율성이란 미명하에 문화예술인들 사이에 불필요한 경쟁심리를 부추겼습니다. 심지어 간섭하고 통제하고 정치색을 덧씌워‘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참담한 적폐(積弊)를 낳았습니다.

제가 의원시절 대표발의한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된 성과(2014년)가 있었지만, 여전히 지역 간 문화여건은 경제격차 못지않게 벌어져 있습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적은 액수라도 국고보조금이 절실하지만, 이마저도 확보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인구감소·고령화 등으로 인해 소실될 위기에 처한 지역문화를 보전해야 할 임무도 안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고치고 다듬고 극복해야 할 지역문화 현안이 많아서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효성 있는 문화정책, 지역과 국민의 생활 속으로


과거에 대한 성찰을 넘어 이제는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블랙리스트를 넘어 투명하고 공정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일상 속 생활문화 시대를 새롭게 만드는 것’,‘국민이 문화를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 이것이 현 정부 문화정책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그 해법을‘지역’과‘국민 삶의 현장’에서 찾겠습니다.

지역문화 진흥과 문화분권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방안은 전문가와 지역의 문화활동가, 지자체 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숙고해 정책에 반영하겠습니다. 다만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지방분권시대 지역문화 정책의 원칙과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지역의 문화) 첫째, 소중한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국민들이 일상에서 아주 쉽게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유·무형 문화유산이 훼손되어 왔습니다. 지역 내 문화적 자산을 보전하고 활용하는 것은 지역주민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서울특별시는 개발논리로 사라지는 유·무형 유산을 지키겠다는 취지로 2013년부터‘서울미래유산’을 지정·보전하고 그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매우 의미 있는 사업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재청, 지자체, 지방문화원, 시민단체들과 협업하여 지역의 전통적 문화자산을 발굴·기록하고 보전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지역 차원에서 지역학(地域學)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책을 강구하겠습니다.

국민들이 생활현장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생활문화정책’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지역 내 공공 유휴시설, 노후시설을 새단장(리모델링)해 생활문화센터, 작은도서관 조성을 확대하겠습니다. 서점, 북카페 등 민간 시설을 생활문화시설로 인증·지원해 문화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겠습니다. 무엇보다 문화부 조직내에 지역문화국을 신설하겠습니다.


(지역에 의한 문화) 둘째, 자율과 협치의 원칙으로 문화분권 기반을 조성하겠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부터 일하는 방식을 바꾸겠습니다.


지역에 군림하지 않고 지역 문화활동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겠습니다. 계획의 수립, 예산편성 및 집행, 사후 관리에 이르는 지역문화 정책 추진과정에서 지자체의 권한을 확대하고, 자율적인 지역역량을 강화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지역을 동등한 정책 동반자(파트너)로 모시겠습니다. 문체부와 지자체, 광역·기초 문화재단 등이 참여하는 권역별 지역문화협력 네트워크를 운영해 협치를 실현하겠습니다.

지역문화실태조사 강화, 문화균형지수 개발 등 지역문화와 관련된 시의적절한 정보를 생산·제공하여 지역이 스스로 문화활동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지역을 위한 문화) 셋째, 쇠퇴하는 지역을 회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문화가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강구하겠습니다.


대한민국 도시들은 쇠락해가고 있습니다. 2016년 국토부가 발표한 도시쇠퇴현황을 보면 전국 읍면동 중 65.9%가‘도시재생’의 대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원도심과 노후주거지를 되살리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발식 도시재생은 최대한 억제하고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문화로 연결되는‘문화적 도시재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를 통한 공간 재생과 함께 해체되어가는 지역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문화체육관광부의 전문성과 역량을 투입하겠습니다.

더불어 지역의 문화역량을 강화하고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 문화인재를 육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기관 5개소를 17개 광역 시·도 전체로 확대하여 역량있는 인력을 공공 및 민간 문화예술기관에 배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재교육과 맞춤형 컨설팅 확대 등을 통해 문화예술 전문기관 종사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장관 취임사를 통해 모든 지역의 문화가 고르게 발전해야 하며, 나라 곳곳이 특색 있는 지역문화를 가진, 문화의 고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문화를 생활 속에서 향유하는 사회가 되어야 진정한 문화분권이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존재 이유이자 장관에게 부여된 시대적 소명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치열하게 논쟁하겠습니다. 그리고 문화분권을 위한 우리 공동의 실천방안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어디에 피어 있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아름답게 피어 있느냐’입니다.

앞으로도 문체부에 대한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