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흉악범죄가 뚝 떨어진 까닭은?
게시일
2010.05.17.
조회수
6139
담당부서
홍보담당관(02-3704-9048)
담당자
조수빈

 이제 공공디자인을 빼놓고 정책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벤치나 간판 등 거리를 채운 각종 공공시설물로부터 건축물과 도시 기반시설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이 디자인의 영역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디자인이 그저 외양을 바꾸는 것이 아닌 우리의 생각과 정서, 인간관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인 까닭이다. 대한민국 정책포털 ‘공감코리아’는 연속기획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를 통해 디자인 시대를 살아가는 현 정부의 공공디자인 철학과 정책을 총 1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1980년대 뉴욕은 연간 60만 건 이상의 중범죄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당시 여행객들 사이에서 ‘뉴욕의 지하철은 절대 타지 마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다. 그러던 뉴욕의 범죄율이 1990년대 들어 갑자기 절반으로 뚝 떨어지는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뉴욕지하철 홍보이미지


지하철 흉악 범죄를 줄이기 위해 뉴욕시가 내놓은 방안은 다름 아닌 ‘낙서 지우기’. 지하철 곳곳에 그려진 흉물스런 낙서들이 범죄의 원흉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당시로선 터무니 없는 제안처럼 비쳐졌지만 뉴욕시는 무려 5년이라는 기간을 투자해 ‘지하철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를 완수해낸다.


범죄 단속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는 데 주력한 뉴욕.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후 뉴욕시의 흉악 범죄 발생률은 완만히 감소하기 시작했고, 94년에는 절반 가까이 감소해 결과적으로 뉴욕의 지하철 중범죄 사건은 75%나 급감하는 결과를 낳았다.


“동네에 깨진 유리창을 한두 장 방치하면 사람들이 ‘그래도 되는가보다’라고 느끼며 거칠게 행동하기 시작하고, 깨진 유리창이 늘어나 결국 동네가 슬럼으로 전락한다.” 미국의 라토가스 대학의 겔링 교수가 제안한 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적용된 뉴욕시의 사례는 공공디자인의 중요성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를 잘 대변해준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 ‘디자인’을 빼놓고는 경쟁력을 논하기 어렵게 됐다. 고급 디자인 브랜드가 제품의 값과 선호도를 결정하듯이 공공영역에서도 디자인은 생활공간의 질, 도시 이미지, 국민의 문화적 감수성,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일례로 석탄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쇠락해가던 강원도 영월군은 거리를 정비하고 특색 있는 간판을 다는 등 거리를 새롭게 꾸미자 도시가 다시금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20퍼센트나 늘어난 것은 물론 주민들의 삶의 질도 높아졌다. 공공디자인이 가져다준 변화다.


공공디자인의 효과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들에서도 이미 입증됐다. 미국 뉴욕 첼시, 프랑스 파리, 영국 게이츠헤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일본 요코하마 등은 도시를 새롭게 디자인함으로써 세계인들이 찾는 대표적인 관광도시가 됐다.


이들 도시가 노린 효과는 단지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공간에 활기를 불어넣어 사람들의 정서와 행동, 관계맺음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디자인공간문화과 한민호 과장은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 근거해 뉴욕이 ‘범죄와의 전쟁’ 대신 ‘낙서와의 전쟁’에 더 주력했듯이 공공디자인을 개선하는 것은 단지 생활환경의 외관을 정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인격과 심성을 바꾸고 사회 분위기까지 환기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문화공간’ 에서 ‘공간문화’로


정부의 공공디자인 정책 역시 이런 철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경제논리와 효율성에 매몰된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의 공간 환경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심성까지 황폐화하고 각박하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발단이 됐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장·미술관 등의 문화 공간 확대에 주력해왔던 그동안의 문화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 일상의 생활공간 자체를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일에 돌입했다. 국민으로 하여금 삶 속에서 문화를 즐기고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목표. 이른바 ‘문화공간’에서 ‘공간문화’로 용어를 바꿔 부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문화부는 ▲부산 광복로 간판문화개선사업 ▲대구 동성로 공공디자인 개선사업을 벌여 거리를 ‘사람 중심’으로 새롭게 재정비했고, ▲안양 공공디자인 시범도시 조성사업 ▲양평 한강아트로드 조성 등 수변공간에 디자인을 입히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정부가 핵심 사업으로 추진 중인 4대강 살리기 사업에서도 공공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 최종 보고회’에서 “공사공법도 똑같이 하지 말고, 지역에 따라 그 지역 수종과 꽃을 심는 등 다르게 하라”고 강조했다.



청계천 다리 사진

시민들이 서울 청계천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청계천에 1년에 수백만 명이 다녀가는데도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좋은 환경이 사람들의 심성을 그렇게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라며, “청계천 다리 22개가 모두 디자인이 다른 것처럼 4대강의 모든 보도 창의적으로 만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4대강 유역의 수변 친수공간을 좀 더 아름답게 디자인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계층, 지역, 세대에 따라 갈라진 5천만 국민의 정서를 바꾸어가자는 것이 이 사업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이 대통령이 공공디자인을 그토록 강조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낡은 것 부수는 게 디자인 아냐


디자인이라고 해서 낡고 오래된 것들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에서도 자연과 전통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산업유산을 그대로 활용하거나 공간의 전통미를 살리는 디자인은 세계적인 공공디자인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미술의 메카로 유명한 런던의 ‘테이트모던’은 옛 화력발전소의 외형을 그대로 놔두고 내부를 갤러리로 바꾼 예로, 건물 자체가 유명 전시물에 못지않게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일본 최초로 개항한 항구 도시 요코하마는 도심을 재개발하면서 근대에 세워진 부둣가 창고 등의 역사 유물과 차이나타운의 이국적 풍광을 도시 재생의 중요 고리로 삼아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훗카이도 사진

홋카이도를 방문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오타루. 운하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양옆으로 고전적인 건물과 상점들이 몰려 있다. 건물들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서 1900년대 초기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송주철 공공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 특히 대도시의 공공디자인은 더하기보다 빼야할 때”며, “그럴수록 건축물을 완전히 새롭게 뜯어 고치기보다는 기존의 건축물이 지닌 전통적 가치와 원형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문화부는 창고, 공장 등 산업시대 유산을 문화적 재창조를 통해 문화예술 창작벨트로 조성하고, ▲아산 장항선 폐철도 ▲대구 문화창작발전소 ▲포천 폐채석장 ▲군산 내항부두 ▲신안 폐염전 등을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선정해 ‘지역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예술창작벨트’로 조성하는 일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근현대사의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큰 구 서울역사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작업도 2011년 상반기 개관을 목표로 리모델링 공사를 한창 진행 중이다.


‘인간이 도시를 만들지만 도시가 다시 사람을 만든다.’ 정부의 공공디자인 정책의 지표를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삶의 질을 높이는 공공디자인’은 우리와 우리 후손이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할 삶의 공간을 보다 쾌적하고 활력 있게 만드는 일”이라며, “공공디자인 정책이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공감코리아(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