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
- 게시일
- 2010.05.17.
- 조회수
- 3682
-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02-3704-9048)
- 담당자
- 조수빈
이제 공공디자인을 빼놓고 정책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벤치나 간판 등 거리를 채운 각종 공공시설물로부터 건축물과 도시 기반시설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이 디자인의 영역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디자인이 그저 외양을 바꾸는 것이 아닌 우리의 생각과 정서, 인간관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인 까닭이다. 대한민국 정책포털 ‘공감코리아’는 연속기획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를 통해 디자인 시대를 살아가는 현 정부의 공공디자인 철학과 정책을 총 13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주>
우리나라 옛말에 건축이라는 말은 없다. 영어의 ‘Architecture’는 희랍어의 Archi(큰)Techne(지혜/기술)에서 온 말이라고 하지만 19세기말 일본인들이 영어를 번역할 때 단순히 ‘세우고 구축한다.’라는 뜻인 건축(建築)으로 번역해서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진정한 건축이라는 말에 합당한 우리의 옛말에는 아키테크네(Architechne)와 같은 뜻인 조영(造營)이 있다. 풀어 말하자면 ‘궁리해서 (지혜로)짓는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큰 지혜로 짓는다’는 대조영(大造營)이야말로 오늘날의 건축에 합당한 말이고 건축사(建築士)로 번역된 Architect는 대조영사(大造營師)로 번역되었어야 그 뜻에 맞는 짝을 이루었을 것이다.
우리 선인들, 큰 지혜와 궁리로 건물과 마을 지어
이름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선인들은 건물과 마을들을 큰 지혜와 궁리로 지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아무나 메마른 지식으로 건물을 만들어 세우고 쌓아올리고 있는 현상을 아무데서나 목격할 수 있다. 땅덩어리는 원래 나누어질 수 없는 연속된 한 몸체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토목공사로 길과 대지를 나누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놓았다. 자연과 길 그리고 건축이 한 몸 한 풍경을 이룬다는 큰 지혜를 잊어버린 채 말이다.
큰 기업의 건물이나 대로변의 건물을 예외로 하고 일반적인 사실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대지에서 건축을 할 때조차도 깊은 궁리를 해서 집을 짓지 않는다.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건폐율과 용적률을 모두 뽑아내서 건물을 지을 뿐이다. 그리고 건물을 짓지 못해 남겨진 땅은 조각조각 나눠진 자투리땅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남겨진 대지에는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의무조경면적을 채우느라 몇 그루의 볼품없는 나무, 실외기나 가스통 같은 것들을 방치해 놓고 있다. 배관들조차 건물 뒤편이나 옆면을 아무렇게나 뚫고 나와 들락거리고 있다. 그리고 전면거리에 노출된 곳에는 붙일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간판을 마구 붙여 놓고 있다. 외국인들 눈에는 이러한 한국의 도시 모습이 “온 국민이 간판에 의한 전위 예술을 하고 있는 도시”로 비친다. 세계의 도시를 소개하는 책자를 발행하는 유수한 프랑스 출판사 ‘오트레망(autrement)사’는 최근 ‘서울’이라는 제목의 도시 소개 책자 표지에 간판으로 뒤덮인 서울의 이면도로 사진을 크게 실어놓았다.
탐욕과 이기심으로만 만든 지금의 건축물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너무 지나치게 와버렸을까. 4천 년의 긴 역사 속에서 다듬어진 단순, 절제, 소박의 미학으로 전세계인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우리 한국인들이 말이다. 그것은 바로 지혜로, 큰 생각으로 건축과 도시를 만들지 않고 오직 탐욕과 이기심으로 건축과 도시를 세우고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나는 몇몇 지방자치단체장들께 건축허가 시 도면 작성을 최소화하는 간편 행정을 펼치더라도 좌우 옆집의 입면도를 같이 그려 넣든지 사진을 몽타주해서 제출하도록 조례로 정하면 건축주와 건축가들이 이웃한 건물과 더불어 조화롭게 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될 것이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건물이 대지와 떨어질 수 없듯이, 대지는 이웃 대지와 하나이고 이 대지들은 한 블록을 이루며, 가로에 면한 한 블록은 도로와 하나이고 도로와 블록은 하나의 가구(街區)를 형성하며, 가구들은 지역(地域)을 만들고 지역들은 이윽고 도시를 만든다.
꾸리치바의 선언 ‘하나의 지구’
온 세계의 도시가 벤치마킹하는 브라질 꾸리치바의 선언 ‘하나의 지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다.
“작은 물 한 방울이 커지고 커져 물의 근원이 되고
그 물의 근원은 커지고 커져 강이 되고
아름다운 강이 흘러 대지 전체를 풍요롭게 하고
강물은 아름다운 바다로 변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목표가 있고,
같은 행성에서 살고 있다.
이 행성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여기서 물방울을 하나의 건축물로,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로 바꾸어본다면 우리의 도시가 하나의 몸체라는 것, 자연과 도시 역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건폐율을 적용받지 못하고 남는 땅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방치된 채 버려지는 자투리 공간이 아니라 이웃을 더욱 밀착시켜 한 몸을 이루게 하는 공용의 공간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건물 앞의 거리 또한 너와 내가 함께 쓰고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함께 가꾸어야 할 나의 땅이자 우리의 공공의 공간임을 자각할 때 사람들은 내 집 앞을 다시 보는 지혜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너와 나의 땅이자 우리의 공간, 그리고…
공공의 시설이나 공간 가꾸기에 이 시대 최고의 건축가와 조경가, 예술가들이 참여해야 하고 반드시 이들을 초대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공공시설과 옥외공간과 광장, 도로와 다리들은 너와 나의 땅이자 우리의 공간이며 우리 자식들과 후손들이 사용할 바탕과 그릇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행정가와 지자체의 장들 또한 현행 법규와 예산 사용 지침을 위배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이 시대 최고의 작가들을 공공공간의 탄생 과정에 참여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울 동대문운동장 부지 위에 시행된 국제 지명 경쟁 설계 경기 또는 서울 송파구청 리노베이션 인테리어 설계경기와 같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이 시대 최고의 작가들을 공공의 장에 초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절차가 다소 복잡하고 시행절차에 예산이 조금 더 들더라도 공무원의 강력한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시장(市場)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정상에 오른 건축가와 공공 디자이너들도 늘 공공의 공간 창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마치 가족의 일에 소홀했던 작가가 마음의 빚을 갚는 것처럼 공공시설 설계와 디자인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공공의 부름이 있을 때면 언제든지 달려가 숙련된 손과 안목을 빌려 주는 일을 서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자연과 역사 앞에서 보다 겸손한 자세로 임하여야 할 것입니다. 즉 도시계획을 포함해서 건축과 디자인의 한계를 깨닫고 디자인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가이드라인의 맨 첫 장에 내 세워야 할 금과옥조일 것이다.
최고의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참여할 수 있게
국가의 건축정책을 기획하고 법과 제도를 만드는 민간위원들이나 공무원들도 어떻게 하면 제도적으로 공공의 공간 창조에 이 시대 최고의 디자인 능력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복잡한 절차 없이 간편한 제도에 힘입어 ‘대조영사’의 기능을 할 수 있게끔 만들 것인가를 궁리해내야 한다. 그것도 정상적으로 합당한 대가를 받고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지혜로운 제도를 생각해 내야 하는 것이다.
건축가와 공공디자이너가 지속가능한 도시와 주변의 공간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함에 있어서 ‘환경친화적 개발과 총체적 공간환경디자인’을 어떻게 무슨 절차와 방법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프로세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구체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 가운데 먼저 선택해야 될 논의와 초점은 어떻게 총체적인 (도시와 농어촌의) 풍경을 만들 것인가이다.
우선 가능한 방법으로, 한시적으로 지자체에서 주요 간선도로변이나 공공의 공간에 짓는 건물과 도로, 가로시설물과 공공시설 등을 디자인하고 감리·감독하는 공공 디자이너, 공공건축사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 한다. 저명하고 수상작을 많이 낸 유명 건축가들과 공공 디자이너들(nobles)에게 뜻있는 의무(oblige)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을 먼저 착수해 보면 어떨 지 한번 제안해본다.
<글: 김영섭 성균관대 건축과 교수, 출처: 공감코리아(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