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0주년과 메모리얼 공공미술
게시일
2010.07.11.
조회수
6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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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한국전쟁 60주년과 메모리얼 공공미술 - 필자 윤태건 이미지월드컵이 끝났다. 때론 가슴 벅차게, 때론 심장을 졸이며 지켜봤던 월드컵은 이제 끝났다.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잘 싸웠다. 대~한민국 짝짝 짝짝 짝. 물론 아직 4강, 그리고 결승전도 남았다. 그래도 남은 경기는 긴장을 늦추고 좀더 편안하게 볼 수 있다. 나이지라아전과 우루과이전은 내가 선수도 아닌데 힘을 ‘팍’주고 봐서인지 다음날 근육통에 쉰 목소리까지 여파가 남았다.

우리 경기와는 비교도 안 되지만 그래도 다른 나라 경기에 비해 일본과 북한 경기 때는 확실히 긴장감을 갖고 봤던 것 같다. 일본전은 같은 아시아 국가가 16강에 많이 올라가야 한다는 당위성과 ‘일제’에 대한 뿌리 깊은 민족감정이 뒤섞인 표리부동한 상태였다. 북한전은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한 대치가 격해진 와중에 열렸다. 코트디부아르전은 심지어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일이라는 묘한 시점에 열렸다. 북한이 포르투갈한테 7:0으로 일방적으로 ‘박살’나는 것을 보면서 전혀 신나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안타깝고, 우리가 ‘깨진’것 마냥 화가 나기도 했다. 내심 같이 16강에 올라가길 바랐던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월드컵의 흥분과 환호, 탄식과 한숨이 교차했던 6월은 공교롭게도 메모리얼의 시기였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동안 조금씩 변해왔다. 그것은 한마디로 ‘반공’에서 ‘반전’으로의 변화다. 1970년대 드라마 ‘전우’가 반공드라마였다면 2010년 리메이크되고 있는 ‘전우’는 반전드라마에 가깝다. 지금 개봉중인 영화 ‘포화속으로’도 그렇다.



베트남 전쟁 기념 조형물

베트남 전쟁 기념 조형물


전쟁을 바라보는 공공예술의 시각도 이 같은 변화를 보여준다. 메모리얼, 전쟁기념비로서의 공공예술은 ‘승리를 노래하는’ 형태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거나, 평화를 기원하는’ 형태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국제적인 흐름이다. 대표적인 공공예술이 마야 린의 <베트남전쟁기념조형물 Vietnam Veterans Memorial>이다. 이 전쟁기념조형물은 검정색 화강석 벽면에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했거나 실종된 5만8천200여명의 명단이 적혀있다.


그 뿐이다. 그저 그게 전부다. 이 조형물은 전쟁을 위한 어떤 미화도 과장도 없다. 높은 좌대 위에서 호령하는 영웅도 없고, 깃발을 세우거나, ‘돌격 앞으로’를 외치지도 않는다. 단지 검정 화강석으로 만든 기다란 직삼각형이 125도로 만나 옆으로 긴 부채꼴 형태의 단순한 조형물일 뿐이다. 양 끝 부분에서 중앙으로 내려올수록 지면으로부터 점점 낮아지고, 지면이 낮아질수록 결과적으로 검정 화강석 벽면은 점점 높아지는 형태에 거울처럼 광택을 낸 검정색 벽면에 음각의 회색 글씨로 이름을 담담히 새겨 놓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전사자와 실종자 명단이 고작인 이 <베트남참전기념조형물>에 와서 전우나, 형제, 아버지나 아들의 이름을 찾고, 이름의 알파벳을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입 맞춘다. 어떤 이들은 꽃을 가져다 놓기도 하고, 이름을 탁본하듯 베껴내기도 한다. 슬픔을 되새기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안타까움과 애절함 속에서 추억을 더듬고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이 조형물은 단순히 전사자와 실종자의 가족과 전우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 모두가 겪은 베트남전쟁의 힘겨웠던 역사를 반추하게끔 만든다. 나아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전쟁의 의미와 평화를 사색하게 해준다. 개인의 감동과 애도가 공공의 감동과 애도로 공유되고, 승화되면서 공공예술의 존재가치를 확고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기념조형물이다.(홈페이지 www.mayalin.com)



베트남 전쟁 기념 조형물

베트남 전쟁 기념 조형물


공공예술은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그 중에서 도심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형태 중 하나가 기념조형물이다. 위대한 영웅이나 순국선열을 기념하고 추모하거나 특정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지금 광화문광장을 지키고 있는 이순신장군 동상이나 세종대왕 동상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수직적으로 높은 좌대 위에서 놓여져 있다. 기념조형물은 으레 그러해야 한다는 듯이 거대한 규모, 특히 수직으로 높이 솟아 멀리서도 잘 보여야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 보아야만 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우리나라 기념조형물만 그렇지는 않다. 영국의 트라팔카 광장에는 51미터의 엄청난 높이의 탑위에 넬슨제독 동상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조형적인 언어로 ‘무엇인가’를 기념한다는 것은 나름의 필요성이 있겠지만 어쩌면 창작자나 감상자 모두에게 피곤한 일일 수도 있다. 기념조형물은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경외심, 숭고화되고 미화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혹자는 그래서 기념조형물이 갖는 수직성을 남근주의적 속성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더 이상 공공미술은 말탄 영웅이 아니다”(알렌느 라방)며 공공예술을 통한 이데올로기적 홍보를 비판하기도 한다. 용산의 전쟁기념관 초입에 있는 <한국전쟁50주년기념조형물>도 비슷한 처지다. 청동검을 모티브로 했다는 중앙부위의 기둥 형태는 말 그대로 고대의 칼(刀) 형상으로 멀리서 보면 마치 총알 같기도, 남근 같기도 해서 그야말로 전쟁기념관 조형물답다. 대단히 마초적이고 위압적인 중앙 조형물 양쪽으로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군인, 유격대 등 4미터 높이의 인체 형상의 조형물은 기념조형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오지마의 해병들

이오지마의 해병들


<베트남전쟁기념조형물>를 공모했을 때 들어온 1천400여점의 제안들 또한 거의가 이전까지의 전쟁 관련 조형물, 영웅이나 순국선열을 기리는 기념조형물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 전형적인 모습이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오지마의 해병들>처럼 승리를 향한 불굴의 의지와 강하고 확신에 찬 그런 사실적인 형태의 기념조형물 같은 것이었다. <이오지마의 해병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아버지의 깃발’이란 영화를 보신 분들은 기억나실 수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깃발을 세우는 미해병대의 모습이 그것이다. 종군사진작가 조 로젠탈이 1945년 2차 세계대전 말, 이오지마 전투에서 성조기를 꽂는 해병대원들의 사진을 찍어서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물론 지금 와서 이 사진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져 곤혹스럽게 하고 있으나 이 사진을 토대로 만들어진 조형물은 지금도 전쟁기념조형물의 전형이 되고 있다.


1천400여점의 제안에서 당선된 <베트남전쟁기념조형물>은 당시 20살의 약관의 나이로 그것도 백인이 아닌 중국계 여성인 마야 린(Maya Lin)으로 알려지자 커다란 논쟁에 휩싸였다. 이 기념조형물을 공격하는 주된 내용은 “왜 땅속으로 기어들어가는가? 너무 여성적이다. 남성적으로 우뚝 솟게 만들지 않은 것은 베트남전쟁의 패배를 자인하는 것 아닌가? 부메랑 모양의 조형물은 미국으로 날아와 발등을 찍는다는 상징인가?“ 등등 성조기나 영웅적으로 묘사된 군인들, 전쟁의 미화된 장면들 같은 전쟁기념조형물의 일반적 요소들이 배제된 것에 대해 반대여론이 심했다. 게다가 ”검정색은 슬픔과 수치를 나타내고, 묘비같으며, 반 영웅적이고, 패배를 상징하고, 참전용사를 모독했다“는 등의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재향군인회처럼 가장 보수적이고 영향력 있는 단체를 선두로 사회전반적으로 국론분열까지 일으킬 정도로 심각했던 논란은 결국 주변에 일반적인 전쟁기념조형물을 추가로 세우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한국전쟁 50주년 기념 조형물

한국전쟁 50주년 기념 조형물


1981-82년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이후 마야 린의 기념조형물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오히려 공공미술의 모범으로 자리잡게 됐다. 이 전쟁기념조형물 때문에 열렸던 청문회에서 마야 린이 한 말은 참 인상적이다.


“전쟁의 실상, 사람들의 죽음, 그리고 참전자들과 특히 전사자들에 대한 기억에 대하여 정직해야한다.… 전쟁을 찬양하거나 관련된 희생자들을 잊고 전쟁을 미화하고 싶지 않았다. 생명의 소중함은 항상 명확하게 기억되어야 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실감을 극복하는 첫 단계라는 것을 기억했다.… 기념조형물에 있어서, 근본적인 목표는 죽음에 대하여 정직해지는 것이다.”


※ 윤태건은?

윤태건(42)은 공공미술 분야에서 대표적인 젊은 기획자다. 신문로의 ‘망치질 하는 사람’ 등 많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삼성문화재단 환경미술팀 연구원과 카이스갤러리 디렉터를 거쳐 지금은 공공미술 컨설팅회사인 ‘THE TON’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미술이 필요 없는 도시, 삶 자체가 예술인 도시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글/윤태건 The Ton 대표

출처/공감코리아